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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현이동훈] 여성과 젊은이들에게 보내는 반성문
  • 현이동훈
  • 등록 2016-06-08 15:30:19
  • 수정 2016-06-08 15:5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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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남역 10번 출구에 붙은 피해자를 추모하는 포스트잇 (사진출처=대한민국효자연합)


최근 서울 지하철역에서 두 젊은이가 목숨을 잃었다. 한 명은 강남역, 다른 한 명은 구의역에서 살해당했다. 이 죽음은 우리 사회에 분노를 일으켰지만, 어느 누구도 책임을 지려 하지 않는다. 강남역 사건에서 치안에 책임이 있는 경찰은 정신장애인들을 희생양으로 삼아 책임을 피하고 있고, 구의역 사건에서는 자본과 정부가 서로 책임을 떠넘기고 돈으로 해결을 하려고 한다.


이 두 사건은 젊다는 이유로 젊은이들에게 가해진 폭력을 잘 드러내 준다. 세부적으로 들어가 보면 강남역 사건은 젊은 여성을 바라보는 한국남성들의 시각을 잘 보여준다. 이 사건은 여성혐오사건으로, 한국남성들이 여성에게 바라는 욕망을 극단적으로 드러냈다. 이 욕망은 한국남성들이 여성을 보상의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으며, 여성은 보호받아야 한다는 시각을 드러낸다. 뿐만 아니라 열등감마저 드러난 사건이기도 했다.


구의역 사건은 기성세대의 노동착취가 극단적으로 드러난 사건이다. 10대 청소년 노동자에게 임금을 적게 주고 경험을 쌓게한다는 명분으로 위험한 곳으로 보내는 폭력이 바로 그것이다. 최근 언론은 서울도시철도가 청소년 노동자들을 착취했다고 보도했다. 또한 구의역 사건은 이명박이 서울시장으로 재임했을 당시 지하철 일부를 자본에 넘겨줌으로써 벌어진 결과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는 이 두 사건을 추모하고 있다. 그런데 어떤 이들에겐 이 추모가 달갑지 않은 것 같다. 지난 5월 대구 중앙로역에 마련된 강남역 살인사건 추모공간을 철거하던 시간에 커터칼을 소지한 남성이 나타나 주변을 배회해 시민이 신고하기도 했다. 그리고 서울 구의역에선 세월호 희생자들을 모독했던 파시스트들이 나타나 추모를 방해했다.


▲ 구의역에 마련된 추모공간 (사진출처=대한민국효자연합)


이 두 사건에 대한 문화폭력에서 국가와 남성에게 대드는 행위는 반역임을 드러내며 “가만히 있어라”고 강요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세월호 참사 당시 “가만히 있어라”는 소리가 강남역과 구의역 사건에서 다시 드러났다. 세월호 참사 이전에도 청춘에 대한 폭력은 있어왔다. 


하지만 젊다는 이유로, 여성이란 이유로, 어리다는 이유로 이들을 막아서며 참으라고 강요하는 문화가 우리 사회에 너무 만연한 것은 아닐까?


미셸 푸코와 이반 일리치 같은 사상가들은 ‘보호와 지배의 양면성’을 지적한다. 한편에선 젊은이와 여성들은 우리의 미래이며 보호받아야 할 대상으로 보는 반면, 다른 한편에선 이들을 금지하고 착취하며 지배하고 있다. 이러한 양면성이 현재 대한민국에서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대한민국 기성세대와 남성우월주의자들은 다른 이들을 지배하는 것을 즐기고 있을 뿐, 평등하고 인격적인 대우에는 관심이 없는 듯하다. 사회적 희생자들이 받아야 할 정당한 것들에 대해 그들은 냉소를 보내며 심지어 방해까지 하고, 오히려 자신들도 피해자라며 아우성이다. 사실 그들도 사회시스템이 만들어낸 피해자인 것은 맞다. 그러나 그 피해의식을 사회적 소수자와 희생자들에게 해를 끼치는 것으로 드러내는 것은 비판받아야 한다. 


88만원 세대라는 말이 있다. 기성세대들이 젊은세대들을 착취한다는 내용인데, 현재 2016년에도 젊은세대를 착취하는 것은 여전하다. 노동문제를 왜 세대문제로 환원하느냐고 비난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남성과 기성세대가 ‘지배’와 ‘보호’란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88만원 세대’는 계속 유효할 수밖에 없다.


경찰은 이번 강남역 살인사건을 계기로 정신장애인들을 희생양으로 삼아 치안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강신명 서울경찰청장은 범죄가능성이 있는 정신질환자들의 강제행정입원을 추진하려고 한다. 그러나 정신장애인들이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이러한 서울경찰청장의 발언은 정신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강화시킬 뿐이며, 장애인들에 대한 차별을 불러올 수도 있다. 


교회 안에서도 젊다는 이유로, 여성이라는 이유로, 평신도라는 이유로, 가난하다는 이유로, 장애인이란 이유로 차별을 받는 사람들이 많다. 대표적으로 본당에서 여성이라는 이유로 ‘사무원’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있다. 본당에서 사무 관련 일을 하는 여성 대부분을 사무원이라고 부르는데, 사무직 평신도 여성을 사무장이라고 부르는 본당은 드물다. 엄연히 사무장 역할을 하는데도 사무장이라고 하지 않고 사무원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 또한 여성 수도회는 ‘수녀회’와 ‘수녀원’이라고 부르면서, 남성 수도원은 ‘수도회’와 ‘수도원’이라고 부르는 경우도 많다.


교회가 자원봉사라는 이유로 젊은 교리교사들에게, 교회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정당한 대가를 주지 않는 현상도 문제다. 젊은 보좌사제들을 지배하려고 하며 존중하지 않는 본당주임사제들, 인사권으로 젊은 사제들을 억압하는 교구장 주교들의 모습은 교회 안에서도 88만원 세대를 만들어낸다.


노동운동이 비정규직문제나 세대문제를 더 이상 외면하지 않기를 바란다. 남성들은 페미니즘을 알지 못하면서 자신들도 여성들에게 피해를 보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기를 바란다. 여성가족부를 페미니즘이라고 착각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곳은 페미니즘과 아무 상관이 없다.


여성에 대한 살인과 폭력사건을 접하면 남성으로 태어난 것이 끔찍하게 느껴진다. 동시에 여성을 바라보는 잘못된 시각이 폭력이 될 수도 있다는 무서움이 필자의 내면에도 있음을 성찰하고 고백해본다. 구의역 사건처럼 청소년 노동 착취와 국제적으로 만연한 아동강제노역을 접하면 기성세대로서 부끄럽고 죄책감이 든다.


아프니까 청춘이라고 하지 말자. 여성을 보상으로 바라보는 시각을 이젠 끝내도록 하자.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말은 사회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보도록 강요하는 폭력이다. 여성과 10대들과 장애인들에게 또다시 가만히 있으라고 강요하는 이 사회에 예수는 외친다.


젊은이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



[필진정보]
현이동훈 (안토니오) : 가톨릭 아나키스트로 아나키즘과 해방신학의 조화를 고민하며 실천하고 있다. 장애인 인권과 생태주의에도 관심을 가지고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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