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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떠나기도 전에 벌써 기다려지는 아들
  • 전순란
  • 등록 2016-06-08 10: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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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6월 7일 화요일, 흐림 


이젠 정리할 때, 참새들과! 더워서 테라스 문을 열면 새똥 위에 과자가루까지 섞여 고약한 냄새가 집안으로 확 밀려들고 새똥 위에 파리 떼까지 출연에 다시 놀란다. 보스코는 몇몇 회동이 있어 아침 일찍 나갔으니 집안 대청소를 할 절호의 찬스!


대야, 수세미, 솔, 빗자루, 걸레! 물을 골고루 테라스에 뿌려 새똥을 불리고, 그 위에 세제 섞은 물을 끼얹고 수세미로 박박 문지른다. 난간에 앉아 변을 본 참새들은 소화가 덜된 버찌들로 보라색 그림을 그려놓았다. 요양병원 할머니들이 벽에 그리는 벽화와 달리 새들이 저렇게 싸놓는 똥이 숲에 떨어졌다면 연두색 어린잎이 지천으로 솟고 먼 훗날 큰 산 비탈에 버짐처럼 산벚으로 피워올랐으리라.




마당의 담쟁이와 인동의 지저분하게 늘어진 줄기도 가위질해주고, 부엌 앞의 산수유 가지도 허룩하게 가지치기를 하고, 뒤꼍에서 흙먼지와 엉겨 부서지던 낙엽도 모아 삼태기로 담아 뒷산에 버리고, 한길에 우리 담 밑으로 버려져 쌓인 쓰레기도 종량제 봉투에 분리수거하여 치우니 사방이 말끔해졌다. 우선은 속이 시원하고 기분이 좋았다.


2시경 조카 에스텔수녀가 왔다. 종신서원 후 서울 수색본당으로 파견 받고나서 처음 본다. ‘작은 수녀’여서 그동안 복사단 애들과, 자모회와의 알콩달콩한 재미로 행복해 하는 모습이라니! 특히 본당신부(인도여행을 함께 해서 우리가 잘 아는 분)를 두고 본당수녀에게서 입에 침 마를 새 없는 칭찬을 듣는 일은 참 흐뭇하다.


본당교우들이 신부님을 너무너무 좋아해서 올가을 예상되는 인사이동을 두고 걱정이 태산 같단다! (어떤 본당에선 자기네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셔서 ‘하느님이 그 신부 쪼까보냈다!’며 교우들이 어깨춤을 추던데...) 모든 사제가 강남의 부촌으로 부임하고 싶어 하는데 유독 그 신부님은 강북으로만 보내주시면 어디든 상관없다던 분이다. 가는 곳마다 임지 본당에서 받는 생활비는 모두 모아 익명으로 본당에 고스란히 내놓고 떠나신다는 소문이 났단다.



주일이면 본당수녀들 밥 지을 시간이 없다며 본당사무원들과 함께 사제관에서 점심을 함께 하시고, 떠날 때가 가까워 오니 교우들이 앞 다투어 식사대접을 나서자 일주일에 한번 방문으로 횟수를 줄이시고, 기도생활과 일상생활에서 교구사제가 수도자 수녀들에게 귀감이 되신다니... 교우들이 간간이 성깔 사나운 신부들을 보긴 하지만 그것은 ‘백미 속의 뉘’ 같고 역시 훌륭한 사제들이 훨씬 많다며 늘 신부님들을 감싸는 보스코의 말이 맞는 것 같다.


보스코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 기억 재단’ 발족준비 마지막 회의에 갔다. 그동안 지은희 교수와 그 단체의 발족을 준비하는 상임공동대표 명의로 준비를 해 왔는데 낼모레 9일 아침에 창립총회를 하고 ‘고문’으로 자리매김하면 자기 할 일은 끝이 난단다.



오후에는 보스코가 혜화동으로 도올선생을 방문하여 환담을 나누고 저녁식사까지 함께하고서 돌아왔다. 보스코가 번역한 「고백록」과 「신국론」을 읽고 그분이 전화를 해 온 것이 인연이 되었다. 처음 만남이지만 두 사람은 학문적으로 의기투합한 공감대가 만들어졌는지 다섯 시간 가까이 대화를 나누다 그분이 논어를 번역하고 해설한 세 권 짜리 전집을 증정 받아 들고 왔다. 나도 JTBC에서 방영된 그분의 강연을 청취한 팬이어서 두 사람의 만남을 반긴다.


저녁에는 블란디나씨가 빵기 좋아하더라면서 떠나기 전에 먹고 가라며 4.19탑까지 가서 만두를 사갖고 들렀다. 나와 에스텔수녀, 블란디나 셋이 먹는 해산물 파스타야 제네바에 가서 자기가 해먹겠다며 그 왕만두를 얼마나 맛있게 먹는지... 


밤늦도록 큰아들 가방 싸는 모습을 지켜보고, 카폰으로 작은아들과 통화를 하고, 침실에서는 보스코가 곤히 잠들어 있으니 오늘밤 내 행복지수는 최고조다. 내일이면 큰아들이 떠나고 조용한 일상이 돌아오겠지만, 빵기가 떠나기도 전인데 10월이면 다시 온다는 큰아들이 벌써 기다려진다.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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