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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얘, 엄마 보고싶어도 평화통일 될 때까지 좀 참자!”
  • 전순란
  • 등록 2016-06-01 09:5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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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5월 31일 화요일, 맑음


보스코가 번역하여 최근에 출간한 책 두 권, 아우구스티누스의 「삼위일체론」과 「고백록」 두 질을 로마로 보내야 하는데 너무 무겁다. 한 질은 그의 출신대학 살레시안대학교 라틴어문학부 도서관에, 다른 한 질은 한국 성직자들이 교부학을 공부하면서 혹시 이 책을 필요로 할 로마「아우구스티니아눔」 도서관에 증정하려는 참인데 마음착한 살레시오 백신부님이 선선히 이 달 로마 가는 길에 들고가시겠단다.


이왕 염치가 없는 길에, 빵고 신부 입을 생활한복까지 챙겨 보내느라 아침 일찍 동대문시장엘 들렀다. 이 시장에 오면 전국적으로 ‘부지런한 사람’은 다 모여들었는지 생기가 넘친다. 그중에도 관광길에 이색적인 아침식사를 하는 중국 사람들의 목소리가 유난히 크다. 빈대떡, 군만두, 생선구이, 눌른 돼지머리, 비빔밥, 잔치국수, 비빔국수, 칼국수, 꽁보리밥, 생선회, 모든 메뉴를 지근의 거리에서 위장이 허락하는 한 다 맛볼 수 있는 곳이 시장이다.



우리도 여행 중이면 이국의 시장에서 모든 속박과 체면에서 벗어나서 무슨 일을 해도 허용되는 일탈의 해방감을 맛본다. 여기서는 튀김기름을 두 번만 써도 큰일 날 듯 유난을 떨지만 인도에서는 콜타르 가까운 색깔의 기름에 튀긴 온갖 음식을 다 먹고도 배탈 한번 안 났으니 여행의 긴장감으로 내장도 현지적응을 했던가 보다. 각종 의복에서 풍겨나오는 화공약품 냄새가 너무 지독하여 생활한복만 사고 얼른 시장을 빠져 나왔다.


12시 광화문에서 ‘목우회’ 친구들을 만나는 날. 오늘은 이번 선거에서 멋진 승리를 거머쥔 우리 인재근 의원이 우리들의 성원에 감사하여 한 턱 냈다. 보스코도 함께 나가서 축하해 줬다. 여자들은 언어의 마술사다. 만나면 주제별로 할 이야기가 끝이 없다.



어떤 친구는 남매가 결혼 전에는 퍽으나 친했는데 오빠가 올케에게 잘해주고 올케를 싸고돌자 “엄마, 내가 엄마 아들 하나 잘 키워서 엄마 며느리에게 바쳤다!”고 하더란다. “네 남편은 어쩌고?”라고 물으니 “그이는 우리집 마당쇠고!”라고 하더라나.


인 의원 이야기. 남편 김근태 ‘민청연’ 의장이 감옥에 있을 때, 매일 남편 면회와 남편 구명운동을 위해 나돌아 다니자 초딩 1학년짜리가 어디서 들었는지 “엄마! 엄마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말이나 알아?” 하기에 “나, 무식해서 그런 말 몰라. 느이 아빠 나오시면 너희들이랑 함께 있을 께”라고 얼버무렸는데, 남편 출소 후에도 여전히 민주화 투쟁으로 엄마가 바쁘자 엄마 보고 싶다며 울먹이던 다섯 살 여동생을 따독이며 초딩 1학년 오빠가 하던 말. “얘, 엄마가 암만 해도 바쁘신가 보다. 평화통일 될 때까지 우리가 좀 참자!”라고 하더라나.



겉으로 보기에도 동네아줌마 같은 외모의 그니가 선거운동을 나가면 할매들이 “얼굴은 알 것 같은데...”라며 고개를 갸우뚱한단다. “나 김근태 각시 아닌감요”라면 “맞아, 맞아, 힘 내! 나도 영감 먼저 간지 15년인데 아직도 보고자퍼. 젊은 게...그래도 힘내야 해!”라며 꼭들 안아주신단다. 그녀가 이 나라 역사를 살아온 고된 사연, 눈물겹게 목메이는 사연을 듣자면 서너 시간도 훌쩍 가버린다.


영등포 신도림동 살레시오 관구관에 4시에 도착. 빵고신부에게 가는 물건을 백신부님께 전해주러 간 길. 아들이 없어도 내 아들처럼 살갑게 해주는 회원들로 우리들은 외로움을 잠시 잊는다. 얼마 전 회의차 로마에 가서 빵고 신부를 만나고 온 동기 이정은 신부한테서 아들 냄새도 맡고 우리아들이 보낸 선물도 받았다.


아들 잘 키워 며느리에게 바치든, 자진해서 사돈집 마당쇠가 되든, 역시 자식은 떠나보낼 때만 독립된 한 사람이 된다. 오늘이 마리아가 사촌 언니 엘리사벳을 방문한 축일이지만, 두 여인 다 자기 할 일 찾아 떠나는 자식들을 뒤에서 지켜 볼 따름, 엘리사벳 아들도 마리아의 아들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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