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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이병두] ‘한국 종교’, 환골탈태하지 않으면 …
  • 이병두
  • 등록 2016-05-27 10:59:27
  • 수정 2016-05-30 14: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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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2016년 5월 26일) 아침 가까운 벗이 카카오 톡으로 보내준 3분이 채 안 되는 짧은 동영상을 보면서 충격을 받았다. 이 영상이 우화(寓話)를 바탕으로 만든 ‘솔개 이야기’인데, 실제와 거리가 먼 꾸며낸 내용이라고는 하지만 그것이 내 개인은 물론이고 한국 불교와 종교계에 주는 메시지가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이야기의 대강 줄거리는 이렇다.


솔개는 가장 장수하는 조류로 알려져 있는데 최고 70살까지 살기도 한다. 그런데 70살까지 장수하려면 솔개가 40살이 되었을 때 중대한 결심을 해야 한다고 한다.


솔개가 40살이 되면 발톱이 노화하여 안으로 굽어져서 더 이상 먹이를 사냥할 수 없게 된다. 게다가 부리도 길게 자라 가슴 쪽으로 구부러져 버리고, 깃털 또한 두꺼워져 날개는 무거워진다. 그래서 하늘로 날아오르기가 점점 더 힘들어진다. 발톱과 부리는 안으로 굽어지고 날개는 무거워지니 이제 하늘을 날아다니기도 먹이를 낚아채기도 힘들어지는 것이다.


이때 솔개 앞에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먹이를 사냥할 수 없는 상태 그대로 죽을 날만 기다리거나 혹은 고통스러운 혁신의 과정을 거쳐서 새로 태어나는 것, 이 두 가지 중에 한 가지를 선택해야 한다.


만약 새로 태어나는 길을 택한 솔개라면 산 정상부근에 둥지를 틀고 한동안 자지 않고 먹지도 않으며 자신의 부리를 바위에 계속 쪼아댄다. 자신의 낡은 부리가 깨지고 빠질 때까지 계속해서 바위에 대고 친다. 노화되어 안으로 굽은 부리가 빠지게 되면 비로소 새로운 부리가 서서히 돋아나는 것이다.


그 다음에는 새로 나온 부리로 굽은 발톱을 하나하나 스스로 뽑아내 새로운 깃털이 돋아나게 한다. 이렇게 고통스러운 환골탈태의 기간을 보내고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변신하게 되면 솔개는 비로소 다시 힘차게 하늘로 날아올라 새로운 30년의 삶을 맞이한다고 한다.



한국 불교와 종교도 이런 처절한 자기 점검과 환골탈태(換骨奪胎)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왜 그래야 하는지 알아보자.


지난 5월 23일 영국 일간지 《가디언》이 트윅커넘 세인트메리대의 스테픈 벌리반트 교수의 조사 결과를 인용하여 보도한 데에 따르면, “영국에서 종교를 갖지 않은 무종교 인구가 기독교 인구를 압도했다”고 한다. 이 조사에 따르면 “잉글랜드·웨일스 지역의 무교 인구는 전체 48.5%(2014년 기준)에 달해 영국 성공회와 가톨릭 등을 합한 기독교 신자 비율(43.8%)을 넘어섰다”고 하는데, 이 “비율은 2011년(25%)과 비교해 2배가량 늘어난 수치로, 전통 기독교 국가인 영국으로서는 매우 이례적인 상황”이고 특히 유출 속도가 빠른 영국 국교인 성공회에서는 “새로운 신자 한 명이 유입될 때마다 12명의 기존 신도가 다른 종파나 무교로 선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하여 그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영국 성공회 인구가 급감(急減)하는 것이 한국 불교와는 아무 관계도 없는 ‘강 건너 불’일까.


하긴 10여 년 전 영국의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가 「만들어진 신 (The God Delusion)」(직역하면 「신이 있다는 망상」이 맞다)을 세상에 내놓아 온 세계를 강타하자, 한국 불교계 일부에서는 “봐라, 기독교의 본고장 유럽에서도 드디어 쇠퇴하고 이제 불교의 세기가 왔다!”며 기쁨에 겨워하고 어떤 이들은 이런 내용을 글로 쓰기도 했다. 그런데 이렇게 기뻐할 일이기만 할까.


미국에서 140년 된 가톨릭 시카고 교구의 주교좌 성당이 부동산 시장에 매물로 나오고 호주에서도 고색창연한 교회 건물이 한인교회에 팔린 일이나, 영국 성공회의 오래 된 성당들이 맥주 집 등으로 바뀌고, 유럽의 수백 년씩 된 수도원들이 숙박 위락 시설로 바뀌는 일이 비일비재(非一非再)한데 이게 그냥 남의 일로 넘겨버려도 되는 일이 아니다. 그 흐름은 멀지 않아 우리나라에도 그대로 전해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제 젊은 세대들은 절이나 교회(성당 포함)에 가서 무릎 꿇고 기도하고, 부처님이나 예수님의 말씀을 스님과 신부‧목사님에게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젊은 세대의 종교성(宗敎性) 자체도 빠른 속도로 낮아지고 있지만, 혹 종교에 관심이 있더라도 책을 통하거나 인터넷에서 필요한 가르침을 찾아서 읽고 듣는 편을 선호한다 (심지어 ‘네이버Naver가 전지전능한 신神이다’는 말까지 있다). 이것은 ‘옳고 그름’의 차원이 아니라 현실이다. 이 현실을 무시한 채 거대한 종교 시설을 짓는 일에만 몰두하고 있는 것이 한국 종교계가 두루 펼치고 있는 사업이니, 이런 점에서만 보면 한국의 종교들은 사이가 좋다고 해도 될 것 같다.


천주교에서는 대구대교구 주교좌 성당을 새로 짓는데 400억 원이 넘는 예산이 투입되었다고 하며, 개신교에서도 경쟁적으로 수십 층 높이의 성전(聖殿)을 세우는 열풍이 멈출 줄 모른다. 불교계에서는 아직도 ‘동양 최대’와 ‘세계 최대’ 불상 조성의 꿈을 버리지 못하고 있고, 누더기 가사 장삼으로 대표되던 어느 선사의 기념관은 성채(城砦)를 방불케 한다. 심지어 부처님 혈흔(血痕) 사리를 모시는 108m 높이의 미얀마 식 탑을 세우겠다는 이가 있는가하면 대한불교조계종의 원로의원이라는 이가 이 불사에 증명법사로 등장하기까지 한다.


▲ 대구대교구 계산주교좌성당과 함께 공동 주교좌성당이 된 범어대성당 (사진출처=천주교 대구대교구)


이 거대한 시설들이 부처님과 예수님의 가르침을 세상에 전하고 그 가르침 덕분에 세상 사람들이 안락(安樂)과 평화를 누리게 하는 데에 기여할 것이 별로 없을 것이다.


포탄 한 방에 무너져 내린 세계 최대의 바미얀 대불(大佛)이 보여준 ‘무상(無常)’의 가르침까지 거론하지 않겠다. 그 안에 들어가 성스러운 말씀을 듣고 기도할 사람들이 줄어드는데 웅장한 건물을 지었다가 그것을 어떻게 유지‧보수하려고 하는가. 이건 매우 현실적인 걱정이다. 신도가 줄어들어 보시금이나 헌금으로 이 시설을 지켜낼 수 없게 되면, 유럽이나 미국에서처럼 부동산 시장에 내다 팔아버리려는가, 아니면 정치권과 타협해 그것들을 문화재로 지정받고 정부에서 그 유지 보수비를 타낼 수 있다고 믿는가?


위 우화에 등장하는 ‘솔개’처럼 ‘부리를 새로 나오게 하기 위해 바위를 쪼아대고, 자신의 발톱을 뽑아 새 발톱을 나오게 하려는 처절한 성찰(省察)과 고통의 감내(堪耐)’가 없이 한국 종교들이 현재와 같은 호황을 누릴 것이라고 기대한다면 그것은 각 종교의 지도자들이 ‘매우 어리석거나 아니면 잘 알면서도 신도들을 속이는 파렴치(破廉恥)한 양심 불량자들’일 가능성이 높다. 어리석어서 그렇다고 해도 문제이지만, 신도들을 속이는 양심 불량이 그 배경이라면 이건 그냥 봐줄 수 없는 매우 심각한 문제이다.





[필진정보]
이병두 : 종교 칼럼니스트이며 종교평화연구원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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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에 1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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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omem2016-05-30 22:03:38

    글 잘 보았습니다.
    어떤 신자 입장에서, 나가는 것이(헌금) 들어오는 것(복음)보다 많으니 당연히 섭섭한 면이 있죠. 결국 교회가 헌금을 줄이고 복음의 기쁨을 헌금에 상회하게 줄 수 있다면 신자가 늘것 같은데요.
    둘 다 어렵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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