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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우리의 삶이 모두 거저 받은 ‘덤’임을...
  • 전순란
  • 등록 2016-05-25 10:4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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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5월 24일 아침에 비 오후에 갬


늦은밤 아이가 현관 자물통을 거듭 확인한다

가져갈 게 없으니 우리집엔 도둑이 오지 않는다고 말해주자

아이는 눈 동그래지며, 엄마가 계시잖아요 한다

그래 그렇구나... 하는데까지 삼 초 뒤 아이엄마를 보니

얼굴에 붉은 꽃, 소리 없이 지나가는 중이다. 


-이면우, ‘봄밤’


5월은 계절의 여왕으로 ‘성모님의 달’이다. 가톨릭교회 그 지독한 남성우월 분위기에 그나마 여성을 인정하는 게 ‘어머니로서의 여인’ 마리아 딱 한 분이다. ‘어머니’, 그 한 마디는 내 존재의 근간을 이루는 든든한 대지이기에 저녁 기도 때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을 불러 놓고 나면 세상만사가 형통할 안도감이 온다.



중 1학년 때 혼자서 어머니의 임종을 지킨 보스코에게 진짜 어머니가 되셔서 그의 가슴앓이를 쓸어주신 분이기에, 개신교에서 막 건너온 내게도 ‘천주의 성모 마리아’라는 거창한 호칭도 별다른 저항감이 없었다. 여인에게, 더구나 어머니에게 바쳐지는 호칭이야 아무리 거창하고 터무니없더라도 아무렴 어떤가! 남성들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노래와 시와 소설에 그렇게 쓰여 있는걸! 또한 여성학을 하며 한 독립된 여성으로서의 마리아는 아주 매력덩이였다. 보스코는 지금도 이면우 시인의 짧은 노래처럼, ‘신자들의 도움이신 마리아’(오늘의 그 축일이다)를 떠받든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네 형제의 삶을 돌봐 주신 까닭이다.


엄마를 뵈러 ‘유무상통’에 왔는데 밤 7시에 ‘성모의 밤’ 행사와 미사를 드리러 성당에 간다니 엄마도 따라나선다. 가톨릭 성가는 모르셔도 안내판을 보고 내게 성가를 찾아 주시고 성모님께 붉은 장미와 초를 바치는 긴 행렬에도 비틀거리며 따라 나섰다. 사위가 ‘장로님’을 부축했다. 




성모님께서 이 집 노인들이 ‘가난한 마지막’을 맞으며 어쩔 줄 몰라 하는 그 순간에 손잡고 영원한 안식의 다리를 건너 주시리라 믿는다. 플롯과 합창, 송시 낭송을 듣는 엄마의 눈은 감겨 있었지만 영혼은 깨어 우리와 함께였다. “이제와 우리 죽을 때 우리 죄인을 위하여 빌으소서”라는 성모송 끝자락이 감미로웠다.



새벽부터 비가 내렸다. 창문을 열어 푸른 대지위에 쏟아지는 생명의 입맞춤 소리를 들었다. 앞산 옆산 뒷산 먼 산이 함께 노래하는 소리를 들었다. 지리산의 온 생명이 내는 고마움의 환호 소리다. 


어제가 ‘노통’을 사랑하는 모든 국민에게는 가슴 에이는 하루였다. 우리가 사랑한 오직 한명의 자랑스런 대통령, 오늘 새벽의 봄비는 그를 사랑하는 국민의 아픈 가슴을 쓰다듬어 주는 그의 손길이다. 기득권 패거리가 모든 증오를 10여년 동안 부추기고, 야당내의 야합세력도 모든 투쟁을 ‘친노패권’ 한 마디에다 쏟아내는 광기를 보면, 국민 속에 살아있는 그에 대한 사랑을 두려워함이 보인다.


12시 ‘샤브향’에서 친구 부부를 만났다. 농장일로 그토록 분주하던 남편이 지난 해 말에 유난히 기운 없어 하더니 위암말기라는 기막힌 판정을 받았다. 남은 시간이 세 달이라는 의사의 소견에도 그 부부는 절대 안 그럴 것 같더란다. 아내는 농사짓던 일손을 멈추고(지난 주 주인 없는 농장에 들러보니 전지 작업을 미처 못한 사과나무, 배나무가 버림받은 숲을 이루고 있었다) 남편에게 좋다는것은 모두 챙겨 먹였고 둘이서 손잡고 함양 둘레의 들길과 산길을 걷고 또 걸었다. 덤으로 받은 축복의 시간이었기에 한 없이 고맙고 행복했다.


남편은 “저렇게 사랑스런 사람을 두고 가야 한다는 게 제일 아깝더라”는 아쉬움, 아내는 “나를 그렇게 사랑하는데 혼자 남겨 두고 가지는 않으리라”는 믿음이 있어서, 자식들이 곁에서 그리 슬피 우는데도 둘은 아무렇지도 않더란다. 누굴 사랑함은 “당신은 결코 죽지 않아요”라는 불멸의 선언임을 입증해주는 부부다.



수술후 2주마다 치료를 받으러 갔는데 그때마다 병세는 호전되어 의사가 더 놀라고, 수술한지 8개월째인데 술 담배를 안 하니 얼굴이 더 좋다. 우리에게 점심을 대접하며 담소할 정도니 기적 같은 일이다. 


인생에 무엇이 중요하고 그것을 위해 뭘 해야 하는지 서로 깨들음을 얻는 과정이었기에 고속도로를 달리는 빗속에서도 나는 환호했다, 사랑의 승리를 향하여! 이 부부가 ‘덤으로 받았다’는 인생에 행복하기만을 빌면서.... 사실 지상의 모든 생명이 거저 받은 ‘덤’임을 새삼 감사드리면서....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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