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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철) 붓과 시편 : 秋 / 추 / 가을. 결실. 성숙한 때
  • 김유철
  • 등록 2016-05-24 09:47:31
  • 수정 2016-05-27 11:5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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秋 / 추 / 가을. 결실. 성숙한 때



그 어른은 치악산을 모월산이라 부르며 지학순주교와 함께 원주를 결실의 땅으로 만들었다. 어른은 스스로 ‘조 한알’이라 자신을 불렀지만 그 분은 있는 그대로 행함이 없는 가을그림자였다. 우리 곁에 잠시 머물다 그리 멀지 않은 곳으로 가신 무위당 장일순 22주기를 맞는다. 우리는 과연 가을처럼 성숙한가?



모월당에 새겨진 무위당 잠언



이보게, 아무개

하느님 만나게 해줄까

자네가 학교 선생이면 학생이 하느님이여

자네가 공무원이면 지역주민이

자네가 신부나 목사면 신도가

자네가 대통령이면 국민이 하느님이여

아니, 아니 바로 자네가 하느님이여

하느님 만나기 참 쉽지


이보게, 아무개

잠에서 깨어 일어나

그렇지 않으면 고향에 못가

앞에 나서지 마

앞에서는 안 보이는 법

한발 물러서면 잘 보일걸세

옆 사람 글씨 보지 말고 지극정성으로 써보시게

어린아이처럼 티끌 없이 말이야

그래 그렇지 자네 명필이구먼


이보게, 아무개

그저 감사하고 살아

모두가 한 몸이야

모두가 한 뿌리며 

모두가 한울님이야


이보게, 아무개

밑으로 기어가

그저 따뜻하게 보듬어

그것이 모두가 사는 길이야

그것이 생명이야

그것이 평화야

그것이 동학이야

그것이 서학이야

그것이 살림이야

그것이 혁명인 것을


이보게, 아무개

그래 자네가 나였구만



* 무위당 장일순(1928-1994) : 70-80년대 반독재 민주화운동의 정신적 좌표. 시민운동가. 생명평화사상가.






[필진정보]
김유철 (스테파노) : 한국작가회의 시인. '삶·예술연구소' 대표이며 천주교 마산교구 민족화해위원회 집행위원장이다. 저서로는 시집 <천개의 바람> <그대였나요>, 포토포엠에세이 <그림자숨소리>, 연구서 <깨물지 못한 혀> <한 권으로 엮은 예수의 말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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