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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우리 할매들의 닳아진 놋숟가락
  • 전순란
  • 등록 2016-05-18 10:3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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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5월 16일 월요일, 새벽엔 비 낮엔 맑음


여행 갔다 오면 가방에 가득한 게 선물이었으면 좋으련만... 섭섭하게도 빨래가 전부다. 게다가 옷이 흔한 세상이라선지 미처 다 입지도 않길 왜 그리 많이 가져갔고, 되가져온 옷을 그냥 입자니, 여행길에 묻은 먼지라도 털어내야 될 것 같아 빨래바구니가 방방하다. 흰옷은 골라 빨래 삶는 냄비에다 부글부글 끓여 뽀얗게 빨아 널고 유색 옷은 맑갛게 빨아 옷걸이에 걸어서 반듯하게 펴 말린다. 1박 여행치고는 옷이 참 많다.


언젠가 본, 미국으로 이민 간 아일랜드인 얘기. 한겨울에 걸칠 변변한 옷 한 벌 없어 추위에 떨다 구호물자 보급소에서 외투 하나를 얻어 입었다. 어디 없는 게 옷 뿐이랴? 먹을 것도 직장도 없다. 어쩌다 일자리 하나가 생기면 수십 명이 나선다. 그날도 그는 그 외투를 걸치고 일자리를 찾아 나선다. 물론 앞뒤로 기다란 줄을 섰는데 의외로 합격자 명단에 자기 이름이!


얼마 후 신수가 핀 이 젊은이, 회사 복도에서 자기를 면접했던 임원을 만난다. 반갑고 고마워 꾸뻑 절하며, “그런데 왜 별로 특출 나지도 못한 저를 뽑으셨습니까?”라고 묻는다. “아직도 입고 있구만! 지금 자네가 입고 있는 그 옷이 내가 입다 구호 단체에 내놓은 옷이라네”



우리가 화전 살 때 중학교 교장월급에 다섯 아이들 먹이고 공부시키랴 고생하던 엄마의 행색은 이모들이 보기에도 참 가여웠다. 셋째 이모에게 어디서 일제 ‘빠이로(?)’ 오버감이 넉넉히 생기자 네 자매가 한감씩 나눠 옷을 해 입었다. 가난한 울 엄마는 옷 삯마저 이모에게 받았을 게다. 겨울이면 엄마 손수 짠 털 세타가 전부이던 시절, 검은자주색 ‘빠이로코트’를 걸친 엄마는 샤넬밍크 롱코트라도 걸친 귀부인마냥 멋있고 의젓하셨다.


그러던 어느 겨울 집에 도둑이 들었는데 아무리 뒤져도 돈은커녕 그럴듯한 패물 한 점 없던 가난한 교장선생 댁에서 그래도 들고 나갈 만한 거라고는 그것밖에 없었던지 엄마의 코트가 사라졌고, 겨울만 되면 그 자리엔 엄마의 ‘가난한 원망’만 쌓이곤 했다, 겨우내. 언제까지 그 얘기를 들을 줄 알았는데 이젠 내가 그 얘길 꺼내도 엄만 못 알아듣는 표정이다. 엄마의 머릿속 기억들을 누가 다 훔쳐갔는지....



어제 산행 중 누가 준 사탕을 먹다가 어금니에 씌운 금이 묻어나왔다. 금인지 사탕인지도 모르고 둘 다 씹어 먹거나 삼키는 사람도 있다지만 나는 그 정도로 둔하지는 않아 날렵하게 꺼내 종이팩에 쌌다. 다른 쪽마저 부분 틀니여서 내가 도통 뭘 못 씹자 보스코 나더러 닳은 놋숟갈로 사과를 긁어 먹어보란다. 요즘 놋숟갈 보기도 힘들고 닳은 숟갈은 더욱 구하기 힘드니 차라리 믹서에 드르륵 갈아서 먹겠노라고 대꾸했다.


옛날 할매들은 요즘의 믹서나 금니나 틀니대신, 닳아진 놋숟가락을 마패처럼 지니고 살면서 고구마, 무, 사과 등을 긁어대며 인생의 말년을 합죽이 입으로 살아가셨고, 그렇게 살아온 이승도 웃으면서 하직하셨다. 울 엄마처럼, “더 이상 회복의 가망이 없을 때엔 인위적 생명연장의 도구 사용을 거부한다”라는 각서도 써 본 일 없이....



오후에는 읍에 나가 ‘명인당한의원’에서 보스코와 함께 침술을 받았고(그는 발목 삔 데를, 나는 류머티즘기가 현저한 손가락을), 내 페친 김실장도 보았다. 치과에 들러 금붙이를 이빨에 다시 얹고(내 목이나 손가락은 못 그러지만 치아가 워낙 약해서 내 입속에는 금붙이가 제법이다), 단골에게 자동차를 끌고가 왜 차가 요즘 덜컹거리는지, 왜 자칫하면 엔진오일이 바닥나는지 검사도 받았다. 돌아오는 길에 보옥당에 들려, 마산 교구에서 제일착한 신부님이 우리 성당으로 오셨다며 마냥 행복해진 그 주인 부부도 보고, 상림에 잠깐 들러 들양귀비와 수레국화가 만개한 들도 보았다.





보스코는 아우구스티누스 「고백록」 증정본을 받은 지인들에게서 축하전화를 받기에 바쁘고 집에 와서는 경향신문 기자와 전화인터뷰도 했다. 나는 (“일 안하는 것도 일이다.”라는 로마시대 속담에도 불구하고) ‘노는 행복’에 푹 빠져있다는 김원장님, 글쓰는 일에 분주한 문섐 부부의 반가운 목소리를 전화로 들었다.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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