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오월’이다.
산이며 들이며 연둣빛 초록이 눈부시게 반짝이는 오월, 순결하고 깨끗한 소년처럼 싱그러운 풍경이어서 더 아픈 날들. 교복 입은 아이들만 보아도 마음이 아릿해진다. 어른인 게 미안하다. 그래서 이 오월, 어렵사리 한 번 읽고는 밀쳐두었던 「소년이 온다」를 펴든다. 꼼꼼히 읽으리라 용기를 낸다.
사실 한강은 아껴 읽으며 혼자 좋아하는 작가다. 맨부커상 최종후보에 올랐다고 이름이 오르내리니 반가우면서도, 어째 소중한 걸 나눠 갖는 듯 내 맘대로 허전해 지기도 한다. 그래도 좋은 결과가 있기를 정말로 바란다.
문장 하나하나 낱말 하나하나가 엄격하기로 정평 나있는 한강은, 인간 내면의 묘한 욕망과 본질 같은 걸 질리도록 치밀하고 섬세하게 담아낸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소설은 대체로 어둡다. 일상적이지 않아 보이는 소재를 숨 막힐 듯 촘촘하게, 몽환적으로 밀고 나간다. 밀도감과 깊이감이 대단하다. 그러면서도 아주 시(詩)적이다. 그로테스크한 아름다움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런 한강이 5.18을 소재로 쓴 「소년이 온다」. 이번엔 마음 단단히 먹고 시작했지만 역시 쉽지 않다. 중간중간 숨을 고르며 먹먹한 마음을 다독일 시간이 필요했다.
소설은 동호와 정대의 죽음, 이후 오년 십년 이십년 그리고 현재까지 여섯 개의 장과 작가의 경험과 간절한 바람을 담은 에필로그로 구성되어 있다. 모두 일곱 장인 셈이다. 각 장에 나오는 인물들은 동호를 중심축으로 서로 연결되면서, 동시에 80년 광주부터 지금까지 줄곧 이어지고 있는 그네들 저마다의 참담한 삶과 죽음을 보여준다.
절친한 친구인 정대가 총을 맞고 바로 옆에서 죽어가는 걸 보면서 겁에 질려 도망쳤던 동호. 겨우 열여섯 살의 동호. 나중에야 정대를 찾아 나섰다가 상무관에서 시신 수습하는 일을 돕는다. 동호는 아무것도 용서하지 않겠다며, 자기 자신까지도 용서하지 않을 거라며 묵묵히 시신의 머리맡에 촛불을 밝히고 신상을 정리하면서 끝까지 도청에 남는다. 그러다 대학신입생였던 진수가 충고한 대로 또래 소년들과 항복하러 나오는데, 진압군이 난사한 총에 맞아 처참한 죽음을 맞는다.
“초등학생같이 키가 안자란 정대. 단춧구멍 같은 눈에 콧잔등이 번번한 정대. 그 코를 찡그리며 누구든 웃겨버리는 정대. 누나 때문에 할 수 없이 인문계고 입시 준비를 하는 정대. 누나 몰래 신문 수금 일을 하는 정대. 초겨울부터 볼이 빨갛게 트는 정대….”(p.35)
영문도 모르고 죽은 정대는 혼이 되어 자신의 주검 곁을 맴돈다.
“썩어가는 내 옆구리를 생각해. 거길 관통한 총알을 생각해. 차디찬 방아쇠를 생각해. 나를 조준한 눈을 생각해. 쏘라고 명령한 사람의 눈을 생각해…그들의 얼굴이 보고 싶다, 잠든 그들의 눈꺼풀 위로 어른거리고 싶다, 그들이 악몽 속에서 피 흐르는 내 눈을 볼 때까지, 내 목소리를 들을 때까지, 왜 나를 쐈지, 왜 나를 죽였지.”(P.57-58)
상무관과 도청에서 동호와 함께 있었던 은숙과 선주, 진수. 살아남은 이들은 그들대로 갖가지 고문과 고통을 겪고는 근근이 생을 연명한다. 영재는 자해를 거듭하다 정신병원에 입원하고 곱상한 외모 때문에 몹쓸 고문을 받기도 했던 진수는 고문후유증과 자괴감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만다.
“…영혼은 무슨 유리 같은 건가. 우린 깨지지 않은 유리를 갖고 있었지. 그게 유린지 뭔지 확인도 안해본, 단단하고 투명한 진짜였지. 우린, 부서지면서 우리가 영혼을 갖고 있었단 걸 보여준 거지. 진짜 유리로 만들어진 인간이었단 걸 증명한 거야.”(p.130)
이렇게 살아남은 사람도 살아있다 할 수가 없다. 살아남았다는, 아직도 살아 있다는 치욕, 자신이 인간이라는 사실과 매일 싸우고 있단다. 그 사실에서 벗어날 길은 죽음뿐이라는 생각과 혼자서, 날마다 싸우면서 말이다.
사람이 사람에게 어떻게 그럴 수 있는 건지, 사람이 어떻게 그 지경까지 잔혹 할 수 있는 건지. 인간은 본래 그토록 잔인한 존재인가. 그런데 여기, 뭔가를 위해, 누군가를 위해 죽음을 무릅쓰는 이들이 있다. 이건 또 무엇인가?
‘양심’이란다.
“수십만의 사람들과 총구 앞에 섰던 날, 느닷없이 발견한 내 안의 깨끗한 무엇, 더 이상 두렵지 않다는 느낌, 지금 죽어도 좋다는 느낌, 모든 사람이 기적처럼 자신의 껍데기 밖으로 걸어나와 연한 맨살을 맞댄 것 같던 그 순간들, 양심이라는 눈부시게 깨끗한 보석이 이마에 들어와 박힌 것 같은 순간의 광휘…”(p.114-116)
작가는 묻는다. 도대체 인간은 무엇인가. 인간이 무엇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무엇이지 않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삼십년이 지난 오늘도 동호의 어머니는 아무리 걸어도 따라잡을 수 없는 그 머시매를 따라나선다. “시장통 좌판사이로, 골목골목으로, 무릎 속이 쑤시고 어찔어찔 골이 흔들리고, 목이 타서 벽이 나올 때마다 손으로 짚음스로 싸묵싸묵…이름 한자리 못 부르고 입술이 달라붙은 사람맨이로, 쌕쌕 숨만 몰아쉼스로 뒤를 밟는다.”(p.180) 어머니에게는 아직 열여섯 살인 동호를 따라 하염없이 아스팔트를, 천변을 헤매고 또 헤맨다.
한강은 실제로 일어난 일인데다 생존자들과 유족들이 있기 때문에 잘 써야 한다는 부담이 매우 컸단다. 그 야만적인 참혹함을 알게 되면 될수록 그만 쓰고 싶다는 생각과 그러니까 더 잘 써야겠다는 생각이 계속 부딪혔다고 한다. 글을 쓰는 일 년 반 동안, 밤마다 악몽에 시달렸고 매일 울었단다. 저절로 눈물이 흐르더란다.
“그 도시의 열흘을 생각하면, 죽음에 가까운 린치를 당하던 사람이 힘을 다해 눈을 뜨는 순간. 입안에 가득 찬 피와 이빨 조각들을 뱉으며, 떠지지 않는 눈꺼풀을 밀어올려 상대를 마주보는 순간. 자신의 얼굴과 목소리를, 전생의 것 같은 존엄을 기억해내는 순간. 그 순간을 짓부수며 학살이 온다. 고문이 온다. 강제진압이 온다. 밀어붙인다, 짓이긴다, 쓸어버린다…”(p.213)
광주는 끊임없이 되풀이 되고 있다. 용산으로, 세월호로, 얼굴을 바꾸며 계속 반복되고 있다. 그래서 여전히 지금, 여기는 광주인 거다. 이렇게 되돌아오는 광주를 똑바로 바라봐야지. 두 눈으로 끝내 응시해야지.
저기, 소년이 온다. 삼십육 년을 건너서 한 걸음 한 걸음 내게로 오고 있다. 이제 소년에게 바란다. “부디, 네가 나를 이끌어줘. 네가 나를 밝은 쪽으로, 빛이 비치는 쪽으로, 꽃이 많이 핀 쪽으로 끌고 가줘.”*
*p. 213에서 변용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