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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걸어다니는 육법전서’에서 ‘걸어다니는 탈법전서’로
  • 전순란
  • 등록 2016-05-06 11: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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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5월 4일 수요일, 맑음



지난번 내려오면서 평소처럼 중부고속도로로 오는데, 자동차를 운전할 때 제발 내 차 한 대만 운전하라고 보스코는 신신당부하지만, 110 km를 달리는 길에 1차선에서 80km로 유유히 달리면서 뒷 차가 긴 불을 켜든 경적을 울려 항의를 하던 아랑곳없이 ‘나의 길을 가련다’는 운전자들을 보면 혼잣말을 하게 된다. “참 남을 배려 할 줄 모르네” “차들이 연달아 오른쪽으로 추월해 지나가는데도 영 느낌이 없나?” “뻔뻔한 사람 같으니라구, 남 좀 배려해 주면 안 되나?” 아무튼 옆자리의 보스코에게는 내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자동차 운전대를 내가 잡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지도 모르겠다.


마음을 남에게 열고 늘 남을 살피는 사람은 참 따뜻하다. 마음이 망가지면 모든 게 망가진다는 이치를 이 나이에 새삼 깨달아간다. 예전에 쌍문동 동네길들을 포장하느라 도로가 공유지로 처리되지 않아 사도(私道)라면서, 소유주에게 기부채납을 받지 않은 채로 포장을 하는 문제로 구청과 주민 사이에 다툼이 많았다. 수십년 된 골목길들을 등기상의 소유주에게서 헐값에 사들여서 포장 때마다 구청에서 보상비를 받아내는 투기꾼들마저 있었다.



그 무렵 도로에 관한 한 ‘걸어다니는 육법전서’라는 공무원을 알게 되었고 시청을 찾아가 그에게 법률상의 조언을 받아 오래 통행한 도로는 사유지라도 서울시가 포장할 수 있다는 결론(그 당시 우리 부부가 돈 들여 시간 들여 몇몇 구를 샘플조사 한 바에 의하면 서울시 골목길의 70%가 사유지였다!)을 얻고 마을길을 포장할 수 있어 참 고마웠다. 그때 그 공무원은 성실한 얼굴과 참 맑은 눈을 갖고 있었다.


그 뒤 20여년 지나 로마에서 돌아오니 우이그린파크 자리에 거대한 불법건축이 이루어지고 있어 이를 저지하는 법적 투쟁에서 그 사람의 도움을 받으려고 수소문해 찾아 갔다. 퇴직하여 강남에 멋진 사무실에 무슨무슨 컨설팅 회사를 차리고 건축문제 법률상담을 해주고 있었다.


그런데 그의 태도가 예전의 그 공무원이 아니었다. 알고 보니 하필 우이동 그 탈법건축주에게 그 모든 불법과 탈법으로 법망을 빠져나가는 자문역할을 하고 있다는 소문도 들렸다!  ‘걸어다니던 육법전서’는 어느새 ‘걸어다니는 탈법전서’로 바뀌어 살피듬이 오르고 기름진 얼굴에 비굴하고 우울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쌓아온 전문지식을 탈법과 탈세, 축재와 부정에 악용할 때 오는 벌이 무엇인지 그 얼굴에서 보았다. 


두 미카엘이 휴천재를 오늘 방문했다. 한 사람은 살레시오고등학교 교장 장미카엘 신부님이고 한 사람은 ‘파프기모’라는 모임에 보스코가 강연 갔다가 만난 최미카엘 씨다. 장 신부님은 학교장을 하다 작년까지 관구경리를 했고 우리 작은아들 빵고 신부가 관구관에 있었기에 자주 만날 수 있었다.


작년 여름 조대주교님이 휴천재에 하룻밤 묵어가신 적 있는데 군종병으로 여러 해 모신 인연으로 휴천재를 소개해 드렸다 한다. 무슨 인연인지 우리는 어디를 가든 살레시오회 수도원을 (스스로 ‘공짜클럽’이라 자칭하며) 내 집처럼 쓰는 염치없는 염치가 있어서 휴천재가 비었을 때는 남들도 쓰도록 내놓곤 한다.


점심식사를 하며 원선오 신부님의 근황, 살레시오 교육의 훌륭함, 졸업생들의 긍지와 사회적 봉사(최미카엘 씨도 다른 학교에 떨어져 살레시오고에 간 게 얼마나 다행스러운 자랑인지 모른다고 실토했다)를 얘기하고 있자니 바로 그 학교 교장으로 장 신부님은 대단한 긍지를 느끼실 만하다. 


손님들이 가고 나서 수돗가에서 화분을 닦는데 기욱이엄마가 지나가다가 “성님, 뭐하노?”하며 들어선다. “손에 든 게 뭐야?” “음, 꼬사리 올라왔길래 한줌 땄어” “자넨 꼬사리한테 안 미안해? 풀도 안 매 주고, ‘타는 약’(제초제)만 치고. 밭을 밭 같이 좀 만들어 봐!” “성님, 나. 돈 벌러 다닌다!(그래서 밭농사 못한다) 빨래방에 다니는데 이 달치 90만원 들어왔어” 요즘 아침마다 가방을 멋있게 매고 활기차게 군내버스 타러 한길로 내려가는 폼이 그래서였구나!


어제 온 한 후배도 근자에 시어머니가 얼굴이 환해지고 명랑하시기에 “혹시 그 연세에 연애라도 하시나?” 의심하다 하루는 용돈을 드리니 “이젠 나 너네 용돈 안 받는다! 나도 돈 벌러 다닌다!”라고 선언하시더란다. 80이 다 되어 쪽파를 뽑아 묶는 일에 일당 5만원을 벌며 (그렇게나 무릎 아프다시면서도) 얼마나 인생이 즐거워 보이던지! 아무소리 않는 게 효도 같아 지켜만 보는 중이란다. 어느 나이든 할 일이 있고 나를 필요로 한다는 게 사람에게 살맛이 나게 만든다.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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