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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배) 영화로 보는 세상 : 4월을 망각해선 안 되는 이유
  • 이정배
  • 등록 2016-04-21 10: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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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엇(Thomas Stearns Eliot, 1888~1965)은 「황무지(荒蕪地)」의 ‘죽은 자의 매장(The Burial of the Dead)’이라는 장(章)을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 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우리에게 4월은 진실로 잔인한 달이다. 1988년 4월 1일, 천호대교에서 버스가 강으로 추락하여 19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1948년 4월 3일에 14,000여명에 이르는 제주도민이 학살당한 사건이 있었고, 1975년 4월 9일에는 인혁당 사건으로 8명의 피고인이 사형 당했다. 2014년 4월 16일에 세월호가 침몰하여 304명이 사망 또는 실종되었으며, 1960년 4월 19일에는 4.19혁명이 일어났다.


또한 1919년 4월 1일에는 유관순이 만세사건으로 체포되었고, 1919년 4월 13일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어 선포되었다. 1919년 4월 15일에는 일제에 의한 제암리 학살사건이 일어났고, 1932년 4월 29일은 상하이에서 윤봉길 의사가 폭탄을 투척한 날이기도 하다. 여기서 우리는 또 다른 세계적인 중요한 사건이 발생하였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1986년 4월 26일에 일어났던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폭발사건이다.


영화 ≪망각의 땅, La terre outrage, Land of Oblivion≫(2011)은 남녀의 결혼식 장면으로부터 시작된다.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옆에는 냉각수를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인공호수가 있는데, 남녀는 여기서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인근 마을 사람들 중에는 발전소에 근무하는 사람들도 여럿 있다. 수목이 울창하여 야생동물이 많고 풍광 또한 아름다운 이 지역에 평온을 깨뜨리는 갑작스러운 폭발음이 들린다.


초기 진압으로 인해 공식적으로 56명이 피폭에 의해 사망했고, 반경 10킬로 이내의 모든 주민들이 단계적으로 이주되었다. 낙진 때문에 적어도 188만 명 이상이 피해를 보았고, 기형생물들의 출현과 방사능 오염으로 생태계 질서가 완전히 무너졌다. 이 사건으로 인해 체르노빌에 5, 6기의 원자력 발전소를 세우려던 계획은 중지되었고, 독일을 비롯한 유럽 국가들은 원자력 발전소 설립계획을 철회하였다.


이보다 앞서 1979년 3월 28일에는 미국 펜실베니아 주의 강 한가운데 있는 스리마일 섬에 건설했던 원자력 발전소의 노심 융해사건이 일어났다. 주변 마을 10만여 명의 주민이 급하게 대피하여 직접적인 인명피해는 거의 없었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129개의 원자력 발전소를 세우려던 미국은 기존의 53개만 건설하고 더 이상의 확장계획을 진행시키지 않았다.


우리나라 경우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암암리에 진행되고 있다. 원자력 발전소를 늘이려는 수작이다. 원자력 발전시설을 세우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알면서 계속 진행하는 데는 분명 권력과 자본의 문제가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다. 만일 방사능 누출 사건이 일어나면 인근 주민들만 치명적인 피해를 본다. 권력 집단과 이익집단은 늘 피해 가능성 밖에 머물면서 관망하고 있다. 소수의 이익과 권력 확보를 위해 다수를 위험 속을 몰아넣는 건 단연코 정의롭지 못한 일이다.


그래서 절대로 4월을 망각해서는 안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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