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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회 주성식 신부 강론전문] ‘기억으로 부활하신 예수님’
  • 지유석
  • 등록 2016-04-18 13:31:06
  • 수정 2016-04-18 19:3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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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2016년 4월17일은 교회력으로 부활 4주일이자 세월호 참사 2주기를 맞는 주일이다. 이에 발맞춰 대한성공회 서울교구 주교좌성당 주임사제인 주성식 모세 신부는 ‘기억으로 부활하신 예수님’이란 제목의 강론에서 세월호 희생자 및 미수습자 가족의 아픔을 ‘기억’해 줄 것을 당부했다. 한편 이날 주교좌성당은 주보에 세월호 희생자 304명의 명단을 싣고 희생자를 추모했다. 


다음은 주성식 신부의 설교 전문이다. 설교 본문은 각각 요한복음 10:22~30, 사도행전 9:36~43, 요한묵시록 7:13~17절이다.



▲ ⓒ 최진


우리는 그동안 험난한 일들을 참으로 많이 겪었습니다. 일제 식민통치 36년을 거쳐 동족상잔의 비극 6·25도 겪었고, 제주도 4·3, 그리고 광주의 아픔도 겪었습니다. 국가적이고 전 국민적인 차원의 트라우마를 불과 몇 십 년 전까지 겪었습니다. 90년대엔 성수대교가 무너졌고, 대구 지하철 참사, 삼풍백화점이 붕괴되는 어이없는 일도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부모를 잃고, 자식을 잃고, 남편과 아내를 잃었습니다. 


이런 우리의 모습은 요한묵시록에 보면 <큰 환난을 겪어낸 사람들>이라고 표현되어 있고, ‘어린 양이 흘린 피’를 통해서 비로소 새하얗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비극을 겪은 당사자들을 지켜본 우리는 달리 도와줄 방법이 없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월이 약이다. 그래 자식은 가슴에 묻는 거다. 이제 산사람은 살아야하니 그만 잊어라.”


어떤 여성이 있었습니다. 결혼을 뒤늦게 하고 어렵사리 아이를 가졌습니다. 그런데 그만 그 아기가 백일을 못 넘기고 죽고 말았습니다. 아이엄마는 아이를 잃은 슬픔으로 실의에 빠졌고, 그만 우울증을 앓게 되었습니다. 지켜보던 가족들도 지쳐가기 시작했습니다. 친정엄마는 딸에게 관심을 다른데 돌리라며 이것저것 권했습니다. 


그러던 이 여성이 우연히 길을 가다가 정신과 병원에 들어갔습니다. 이후 이 여인은 급격히 삶의 희망을 찾고 우울증으로부터 해방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치료를 받았길래 그랬을까요? 예수님이라도 만난 것일까요!


의사가 대뜸 이렇게 물었답니다. “아기 이름이 뭐였어요?”


그동안 그녀를 아끼고 안타까워하던 사람들이 그녀에게 했던 이야기는 “잊어라. 원래 너에게 올 아이가 아니었던가보다. 그만 잊고 다시 시작해라” 이런 말이었습니다. 아무것도 해줄 수 없을 때 해준 최선의 위로였죠.


하지만 그 여성은 그럴 수 없었습니다. 아이가 자신의 몸속에 살아있었고, 교감을 했고, 짧은 기간이었지만 세상에 태어나 함께 살았던 기억이 있고, 엄마와 자녀로서 또렷했던 관계가 있는데 그걸 어떻게 쉽게 부정하겠습니까!


사람들이 잊으라고, 너와 아이의 기억을, 관계를 부정하라는 메시지가 아이엄마를 더 힘들게 하였던 거죠. 그런데 의사는 아이의 이름을 물었습니다. 어떻게 생겼고, 누굴 닮았냐고 물었겠죠. 부정당하던 아이의 존재를, 관계를 살려내자 우리들의 염려와는 달리 이 여성은 치유가 시작된 것입니다. 


기독교는 ‘기억’의 종교


▲ 대한성공회 서울교구 주교좌성당 주임사제인 주성식 모세 신부는 ‘기억으로 부활하신 예수님’이란 제목의 강론에서 세월호 희생자 및 미수습자 가족의 아픔을 ‘기억’해 줄 것을 당부했다. ⓒ 지유석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험난한 인생 경험을 많이 겪는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전쟁도, 이념의 갈등도 모두 여기에 들어가지요. 그런데 우리는 그런 일로 슬퍼하고 아파하는 걸 제대로 위로하고 치료하면서 살아오지 못했습니다. 가슴 아프니 잊기를 바랐고, 나도 힘드니 외면하고 싶고, 사는 일이 바쁘니 더러 잊혀 지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잊는 게 약이라고, 세월이 지나는 게 약이라고. 실상은 하나도 치유되지 않았는데 말입니다.


오늘 사도행전 9장에 보면, 다비타(도르가)가 죽자 그를 좋아했던 친구들은 서로 슬퍼하고 위로하였습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베드로에게 사람을 보냅니다. 이미 죽은 사람을 살려달라고 말이죠.


죽은 자를 살려달라고 사람을 보내 베드로를 오게 하는 이 무모함이 이 친구들의 마음이고, 부모의 마음입니다. 오늘 사도행전의 말씀에는 이 무모함이 사람을 살렸습니다. 


2년 전 세월호에 탔다가 죽은 사람들을 베드로처럼 살릴 수는 없겠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오늘 주보에 있는 304명의 이름을 ‘기억’해 내는 일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은 모두 사랑스런 가족의 예쁜 자식이었고, 아빠였고, 엄마였고, 누나였고, 오빠였고, 동생이었음에 틀림없습니다. 그들의 가족이 가지고 있는 죽은 자들과의 애틋한 사랑, 추억, 관계를 우리도 관심 갖고 들어 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그들이 가족 가운데, 국민들의 한복판에서 부활하는 일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을 앞두고 하느님의 사랑과 깊은 관계를 깨우쳐 주시기 위해 ‘최후의 만찬’을 베푸시면서 ‘기억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셨습니다. 빵과 포도주를 나누어 주시면서 “나를 기억하여 이 예를 행하라” 


이 ‘기억’이 2000년이 지난 이 자리에서까지 우리의 죄와 아픔, 슬픔과 고통까지도 품어 안으시는 예수님의 사랑, 십자가의 죽음, 그리고 부활하셔서 영원한 생명을 주신 ‘부활의 영광’을 기억하는 일입니다. 기독교는 <기억의 종교>입니다. 


오늘 우리는 동시대를 살아가며 아파하는 이들을 기억해야 합니다. 2000년 전 십자가에 달려 죽으면서까지 우리를 사랑하셨던 예수님을 기억하면서 빵과 포도주를 나누는 것처럼 애통해하는 이들의 아픔을 기억해내야 합니다. 우리의 하느님은 우리가 아파하고 울고, 목말라할 때 이렇게 위로해 주십니다.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셔서 그들을 생명의 샘터로 인도하실 것이며,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눈에서 눈물을 말끔히 씻어 주실 것입니다”(묵시 7:17)


‘목자와 양’의 관계는 생명의 관계입니다. 한 가정의 목자였을 아빠와 엄마, 그리고 양처럼 보살핌을 받던 아들과 딸 역시도 목자와 양의 관계처럼 소중한 생명의 관계였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세월호의 희생자 304명의 영혼을 위해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특별히 미수습자 양승진, 고창석 선생님, 조은화, 허다윤, 남현철, 박영인 학생, 권재근, 혁규 아버지와 아들, 이영숙 님이 속히 가족의 품으로 귀환하기를 간곡히 기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99마리의 양을 거친 들판에 두고서라도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찾아 나서시는 분임을 기억하며 목자의 심정으로 미수습자들의 아픔에 함께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믿는 자들의 사랑과 마음을 모으는 기도만이 지치고 애통해 하는 이웃에게 위로를 주고, 어둠과 죽음의 구렁텅이에서 부활의 소망을 갖게 하는 일임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필진정보]
지유석 : 베리타스 기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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