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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보는 세상 : 남성의 그늘에서 벗어나야
  • 이정배
  • 등록 2016-04-14 10: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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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 헌법을 통해 남성과 동등한 선거투표권을 획득한 지 겨우 100여년이 되었다. 영국에서는 1918년 30세 이상의 여성에게만 참정권이 주어지다가 1928년에 이르러 21세 이상의 모든 여성에게 참정권이 주어진다. 미국은 1920년에 온전한 여성 참정권이 헌법에 의해 보장받는다.


놀라운 것은 흑인 남성에게 투표권이 보장된 것이 1870년이었는데, 그 후 50년이 지나서야, 그것도 여성운동가들의 피나는 수고로 여성참정권이 부여되었다는 사실이다. 미국여성들의 참정권을 위한 노력은 영화 ≪천사의 투쟁, Iron Jawed Angels≫(2004)을 통해 읽을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 미국의 대통령도 백인 남성에서 흑인 남성 그리고 일정 기간이 지나서야 여성 대통령이 탄생하는 수순으로 밟고 있다. 지난 미국대선에서 오바마와 힐러리가 맞붙었을 때, 미국인들이 오바마를 먼저 선택한 것은 지극히 미국인다운 결정이었는지 모른다.


우리의 경우, 1948년 남북이 분단되어 치러진 최초의 선거에서 여성에게 남성과 동등한 참정권이 주어졌다. 여성의 참정권 획득은 아무런 피 흘림 없이 서구 여성주의자들의 수고 덕분에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선거에 의해 198명의 초대국회가 결성되었는데, 여성 국회의원은 전혀 없었다. 이듬해 안동 보궐선거를 통해 임영신 상공부 장관이 이승만 대통령의 후광을 업고 최초 여성국회의원으로 선출된다.


“여성은 침착하지도 조화롭지도 못해서 정치적 판단이 어렵습니다. 여성에게 투표권을 주면 사회구조가 무너집니다. 남자들이 여성을 대변하는데 왜 필요합니까? 투표권을 주면 그때는 돌이킬 수 없습니다. 여성은 사회 주요 인사가 되려고 할 것입니다” 영화 ≪서프러제트, Suffragette≫(2015)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대사이다.


영화 주인공 ‘테일러’는 영국 국회에 나가 다음과 같이 증언한다. “(사업장에서 일한 것이) 7살 때는 아르바이트였고, 12살부터 직원으로 일했어요. 세탁은 학력이 필요 없어요. 열심히 했어요. 17살에 세탁 담당이 됐고, 20살에 여자 감독이 됐어요. 지금은 24살이에요”


이어서 그녀는 증언한다. “세탁소 일은 여성에겐 짧은 삶이에요. 몸도 쑤시고, 기침에 손가락은 부셔져 나가죠. 하퇴궤양, 화상, 가스 때문에 생기는 두통. 여성은 남자보다 세 배는 더 일해요. 남자는 주로 배달을 하니 맑은 공기라도 마시죠”


영국이나 미국의 여성운동가들은 수없이 투옥되고 재판에 넘겨지고, 가족들의 만류와 회유, 정부의 조직적인 감시와 탄압을 이겨내면서 여성의 정치참여 권리를 확보해왔다. 우리에겐 이러한 여성권리 획득을 위한 투쟁 과정이 생략되어 있다. 남성의 그늘아래서 여성의 영역을 소박하게 부여받고 있다.


왼손을 주로 사용하는 이들이 오른손 사용자들의 세상에 순응하여 살아가듯, 남성 중심으로 흘러가는 사회구조 속에서 여성들은 자연스럽게 적응하며 살아가고 있다. 여성주의 관점에서 우리의 정치구조를 냉정히 살펴보면, 진보진영이든 보수진영이든 모두 남성중심의 마초이즘(Machoism)과 쇼비니즘(Chauvinism)의 그물에서 허덕거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에게 여성주의 실천(Praxis)이 더욱 요구되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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