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4월 초순 현재 대한민국은 경남 통영‧고성 선거구 한 곳만을 제외하고 전국이 ‘총성 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 제20대 국회의원 총선거일인 13일을 코앞에 두고 각 정당과 후보자들의 선거운동이 막바지를 치닫고 있다.
거리에서는 후보자들의 이름과 기호를 크게 새긴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이 요소요소에 삼삼오오 서서 쉴 새 없이 허리운동을 하고 있다. 또 트럭을 개조한 유세 차량들은 도심의 골목골목과 시골길을 누비며 확성기 소리를 뿜어대고 있다.
선거 연설을 흉내 내며 ‘지조’를 배우다
선거 때만 되면 내 유소년 시절을 떠올리게 된다. 나는 유소년 시절부터 ‘선거운동’을 한 사람이다. 내가 최초로 선거운동을 한 때는 6세 때인 1954년 제3대 극회의원 총선거다. 당시 충남 서산 선거구는 자유당 유순식 후보를 비롯하여 여러 명의 각 정당‧무소속 후보들이 난립한 상황이었다.
연일 각 후보자들과 운동원들의 열렬한 선거 연설이 동네방네에서 확성기를 타고 귀가 아플 정도로 울려 퍼지곤 했다. 나는 그 선거 연설들을 귀담아 듣곤 했다. 누구의 연설이든 한 번 들으면 거의 외우다시피 했다. 그러고는 동네 슴밖이(서문 밖) 읍마당 가운데에다 사과 궤짝을 놓고 올라서서는 열렬하게 연설을 해대곤 했다.
지나가던 어른들이 발을 멈추고 내 연설을 들으며 놀란 표정으로 박수를 치기도 했다. 근처 저자로 푸성귀와 갯것들을 팔러가던 아주머니들도 머리에 이고 있던 광주리를 내려놓고 한참씩 내 연설을 듣곤 했다. 배꼽을 잡고 웃는 어른들도 있었다. 내가 지조 없이(?) 이 사람 저 사람 연설을 마구 섞어서 하기 때문이었다. 자유당 유순식 후보의 연설을 신나게 늘어놓다가 갑자기 다른 후보의 연설을 해대니 웃음이 나올밖에.
내 연설 솜씨는 금세 소문이 났다. 읍마당에서 친구들과 팽이치기나 제기차기를 하고 있으면 어른들이 와서 마당 가운데에다 사과 궤짝을 놓고는 내게 연설을 하라고 했다. 연설을 시키며 미리 손가락과자를 주는 사람도 있었다. 여러 사람 연설을 섞지 말고 아무개 후보 연설만 하라고 부탁을 하는 어른도 있었다.
그러나 한 사람 연설만 하라는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나는 연설 도중에 곧잘 지조를 잃곤 했다. 이 사람 저 사람의 연설을 섞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면 연설을 그만 하라는 사람도 있고, 그냥 계속하게 놓아두라는 사람도 있고, 그 와중에 배꼽을 잡는 사람들도 있었다.
아무튼 나는 선거기간 내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읍마당에서 선거연설을 많이 했다. 그리고 그 선거연설은 1956년 제3대 대통령 선거 때도 이어졌다. 그때도 이승만 후보와 신익희 후보와 조봉암 후보의 연설을 섞어서 하곤 해서, 여전히 지조 없는 모습을 보이곤 했다.
내 지조 없는 연설을 들으면서 어른들은 박수를 치기도 했고, 배꼽을 잡고 웃기도 하면서 내게 손가락과자나 눈깔사탕을 주곤 했다. 손가락과자와 눈깔사탕을 받아든 나는 의기양양하게 집으로 와서 누이동생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그러다가 나는 아버지에게서 중요한 가르침 한 가지를 들었다. 연설을 하려면 한 사람 연설만 해야지 여러 사람 연설을 섞어서 하면 중심 없고 지조 없는 짓이라는 말이었다. 아버지는 지조에 대한 말씀을 많이 하셨다. 지조는 생명처럼 귀중한 것으로 사람은 지조를 지키며 살아야 올바른 사람이라고 했다. 그때부터 지조라는 말은 내 머리와 가슴에 깊이 새겨졌다.
혈서의 가치를 배우다
아버지는 선거 연설을 흉내 내려면 신익희 선생 연설만 하라고 했지만, 나는 신익희 후보 연설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신익희 후보가 선거 기간 중에 갑자기 기차 안에서 심장마비로 서거했기 때문이었다. 신익희 후보 서거와 함께 8세 소년의 무보수 선거 연설도 막을 내리게 됐다.
1960년 3월 15일 실시된 제4대 대통령 선거 때는, 선거 며칠 전 매우 특이한 장면 한 가지를 보았다. 1960년 초등학교 졸업 후 가정형편상 중학교 진학을 1년 후인 1961년으로 미루고, 나는 1960년 한해를 산에 가서 나무나 하며 소일했다. 그러던 중 하루는 읍내 사거리로 가서 선거운동원의 연설을 들었는데, 놀라운 장면이 벌어졌다.
자유당 대통령 후보 이승만 박사와 부통령 후보 이기붕 선생을 위해 목이 터져라 열렬히 연설을 하던 청년이 별안간 오른쪽 인지 끝을 이빨로 물어뜯었다. 금세 손가락 끝에서 붉은 피가 뚝뚝 떨어졌다. 그 청년은 다른 한 손으로 상의 안주머니에서 백지를 꺼내더니 땅바닥에 펼쳐놓고 손가락에서 흐르는 피로 글씨를 쓰기 시작했다.
이승만 박사 만세!
이기붕 선생 만세!
빙 둘러 서 있던 수많은 사람들이 일제히 박수를 쳤다. 그 청년은 그 혈서를 두 손으로 잡고 높이 쳐들더니 악을 쓰듯 ‘이승만 박사 만세’와 ‘이기붕 선생 만세’를 외쳐대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만세를 불렀다.
나는 집에 와서 아버지에게 그 얘기를 했다. 아버지는 콧방귀를 뀌며 혀를 찼다. 참 가치 없는 혈서라고 했다. 고작 선거운동을 하면서 혈서를 쓰다니, 어처구니없다고 했다. 그 청년은 평생 부끄러운 짓을 했고, 언젠가는 자신의 그런 행동을 부끄러워할 때가 올 거라고 했다. 그러며 아버지는 혈서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여러 가지 얘기를 해주었다.
그로부터 얼마 후 4.19혁명으로 자유당 정권이 무너졌을 때 나는 읍내 거리에서 그 혈서 청년을 종종 보았다. 그 청년의 오른손 인지에는 오랫동안 붕대가 감겨져 있었다. 그리고 그는 매우 초췌해 뵈는 모습이었다. 꼭 물에 빠진 생쥐 같은 꼴이었다.
나로서는 혈서 쓰는 장면을 단 한 번,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본 것인데, 그 혈서가 고작 선거운동의 한가지로 감행되었고, 그 혈서 때문에 그 청년은 더욱 초췌한 모습으로 세상을 살아가게 된 것이 오늘에도 내 가슴에 연민을 불러일으킨다.
나는 어른이 되고 역사의식의 눈을 갖게 되면서 박정희 대통령이 만주 군관학교 시절 일본 천황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혈서를 쓴 사실도 알게 되었는데, 박정희의 충성 혈서를 생각하면 그 선거운동원 청년의 혈서가 떠오르곤 한다. 박정희의 충성 혈서는 출세의 디딤돌이 되었지만, 그 젊은 선거운동원의 혈서는 그를 초췌한 몰골로 만들어버렸다. 양쪽 다 무가치한 오욕의 혈서지만, 박정희의 혈서는 ‘권력의 씨’로 남게 되었다.
정치철새들과 민주세력의 분열
유소년 시절에는 지조 없이 여러 후보의 연설을 마구 섞어서 함으로써 아버지로부터 ‘지조’에 관한 말씀을 많이 들었지만, 그것이 내게 좋은 약이 되었던 듯싶다. 나는 지조에 대한 가치관을 확립할 수 있게 됐다. 오늘 인터넷 게시판상의 내 닉네임은 ‘지조와 순수’다.
나는 지조를 생명처럼 여기며 살아왔다. 과거 우리 지역 출신 정치인 한영수씨를 적극 지지했지만 그가 변절하여 자민련에 붙은 후로는 그를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 또 고(故) 장기욱 변호사도 적극 지지했지만, 그가 김대중 대통령과 결별한 후로는 그도 내 안중에 두지 않았다.
지역에서 오랫동안 문석호 변호사를 도왔는데, 국회의원 재선 경력을 쌓은 그가 선거법 위반으로 피선거권을 잃어 안타까운 마음 한량없다. 그를 대신하여 민주세력 후보로 나서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의 조한기 후보를 수년 전부터 적극 도와주고 있다.
내 주변 사람들 중에는 지조 없는 위인들도 더러 있다. 얼마 전까지 동지 관계였던 사람이 갑자기 변절하여 다른 쪽에 붙어 선거운동을 하기도 한다. 지난번 선거 때는 민주세력의 일원임을 자처하며 열심히 봉사하던 사람이 친일 반민주세력에 붙어 선거운동에 전력투구하는 모습을 볼 때는 마음이 참담하다.
나는 정치인도 아니고 문인 명색을 걸친 시골 촌부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지조라는 것을 여전히 생명처럼 여긴다. 그래서 지조를 저버리는 행위들을 경멸하고 증오한다. 지조를 저버린 대표적인 부류가 정치철새들이다. 새누리당 최고위원 이인제는 무려 열세 번이나 당적을 바꿔 세계 기록 보유자가 되었지만, 당적을 여러 번 바꾸건 단 한 번 바꾸건 지조를 저버린 정치철새들은 정치인 자격이 없다. 인격적으로 문제가 많은 사람들이라고 나는 단정한다.
정치철새들은 분열주의의 표본이다. 둥지를 바꾸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분열을 일으킴으로써 자신이 몸담고 있었던 정치세력의 힘을 약화시키고, 더 나아가 선거 패배를 가져오기도 한다. 그것의 본보기가 이번 제20대 국회의원 총선거 국면에서 다시 한 번 표발되었다. 아직 선거 패배를 속단할 수 없지만, 안철수를 비롯한 정치철새들, 개인적 소리(小利)에 집착한 분열주의자들의 경거망동으로 말미암아 민주세력은 국민들에게 또 한 번 절망을 안겨줄 기로에 처해 있다.
정치인들의 개인적인 철새 행각은 상황에 따라 개인의 유리와 불리로 매듭이 지어지지만, 집단의 분열은 차원이 다르다. 분열은 필연적으로 패배를 부른다. 분열은 반드시 패배로 귀결된다는 것을 동서고금의 역사가 증명한다. 패배를 뻔히 알면서 분열의 길을 고수하는 것은 한마디로 어리석은 짓이며 미친 짓이다. 절망과 희망을 가르는 선택의 시간이 며칠밖에 남지 않았다. 이제라도 분열을 봉합할 수 있는 방책을 찾아야 하고, 분열을 결행한 측에서 하루속히 결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