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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아름다운 것들은 떠나는 모습마저 저리도 애틋한데...
  • 전순란
  • 등록 2016-04-08 10:17:00
  • 수정 2016-04-08 11: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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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4월 7일 목요일, 지리산은 비, 용인은 맑음


비가 주룩주룩 내린다. 지리산 골골이 피어 있는 꽃송이들을 밤새 깨끗이 씻어주나 보다. 순백의 벚나무 잔꽃잎들은 빗살에 맞고 잔바람에도 우수수 떨어져 빗물을 타고 내를 이뤄 강으로 간다. 휴천강물이 다릿녘에서 다리 기둥을 휘돌아 소용돌이친다. 골골에서 물길을 타고 흘러내린 하얀 꽃잎들이 저 물결을 타고 춤추는 광경이 하얀 불꽃놀이 같다. 아름다운 것들은 마지막 떠나는 모습도 기억나지 않는 노래의 마지막 소절처럼 저리도 애틋한 것을....



오늘은 내가 실버타운의 엄마를 찾아가 하룻밤 엄마 곁에 자며 함께 지내는 날이다. 우리 형제가 다섯이니 한 달에 한번만 가도 엄마는 매주 자식들을 보신다. 엄마가 좋아하는 과일과 과자를 골고루 사고 필요한 물건들을 챙기다 보면 늘 필요이상으로 가짓수가 많아진다. 과일만도 챙기다 보니 참외, 딸기, 오렌지, 단감, 키위, 사과, 밤, 방울토마토... 뭐를 싸들고 가도 엄마는 남의 것인양 초연하여 흥미를 안 보이신다. 현금을 드릴 때면 얼굴이 잠시 환해진다.


전에는 내가 뭘 갖고 가면 챙겨 두셨다가 호천이가 찾아오면 모조리 싸주시는데 음식이 좀 상하거나 날짜 지난 것이라도 어머니 성의를 생각해서 마음착한 올케가 고맙다며 반가이 받아 먹곤하여 흐뭇하셨던가 보다. 그런데 돈은 썩지도 않고 날짜가 지나지도 않아 누구에게나 언제라도 요긴하다는 이치를 엄마가 아직도 기억하고 계신다. 얼마 전에도 그동안 모아두신 돈을 호천이에게 건네주셨고 모자 사이에는 ‘가족납골당’ 만들기로 약조가 되어 있단다.



지리산 집에서 9시에 떠났는데 덕유산을 지나 대전에 다 올 때까지 비가 내렸다. 휴천재 테라스 탁자 위에 놓인 측우기(플라스틱 딸기 그릇)를 보니 밤새 족히 70mm는 왔겠다. 이번 비로 해갈은 되었지만 엊그제 뿌려놓은 씨앗이 다 흘러 고랑에서 싹을 틔우게 생겼다. 로마의 쟌까를로 신부님이 “씨앗은 달의 하현에 뿌려야 한다.”는 충고대로 했는데...


신부님도 이젠 더는 텃밭농사를 못 짓는다. 당료합병증으로 눈도 안보이고 발도 아프고 무엇보다 함께 살던 회원들이 타지로나 저승으로 멀리 떠나 당신이 농사짓는 푸성귀를 먹을 기회가 없어진 탓이다. 사람은 자기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또 그 일이 남을 행복하게 할 때 힘을 받고 또 행복하고 보람을 느낀다.


이곳 실버타운에도 ‘농림부장관’으로 불리는 할매가 계시다. 잘 걷지 못해 배 밑에 비닐을 깔고 오체투지로 당신 텃밭을 기면서 풀을 뽑고 농사를 짓는데 그분에게 싱싱한 푸성귀를 배급받는 노인들의 기쁜 얼굴이 모든 고생을 죄다 보상하고 남는다는 말씀이다.


100세가 넘어서 허리가 90도로 꾸부러졌어도 그 열정을 말릴 장사가 없었지만 엊그제 넘어져 두 팔을 다쳐 농사는커녕 팔을 올려 엘레베이터 단추를 누를 수도 없다고 탄식하신다. 보스코가 농림부장관께 격려사를 드리면서 어깨를 다독여드리고 단추를 눌러드리자 잠시 환한 미소가 얼굴에 가득 번진다.


엄마는 점심으로 나온 카레라이스를 우리가 못 얻어 먹을까봐 한참이나 기다리시다 함께 먹는데 이모가 언제나처럼 늦게 오셨다. "엄마! 식어요 빨리 드셔요!" 우리의 채근에도 엄마는 동생이 나타나는 식당문쪽을 한사코 바라보신다. 역시 “자매는 단 둘이다.”


문섐 엄니는 서너 달 전만해도 무척 건강해 보였지만 오늘 뵈니 많이 쇠약해지셨다. 좀처럼 서운한 마음을 안 비치셨는데 오늘은 당신이 3층에서 도우미들의 건사를 받아선지 자녀가 자주 오지 않는다고, 당신이 이렇게 빨리, 이리도 갑자기 망가질 줄은 몰랐다고 한탄하시면서 내 손을 잡으신다.



그러고 보니 엄마를 자주 찾는 자식들의 모습도 외로운 할머니들에게는 자칫  “우리 아들 딸은 이렇게 자주 오지 않는데...”라는 상처가 되겠다는 생각이 퍼뜩 떠오른다. 이모도 자녀들 땜에 늘 마음이 아프다, 거의 다녀가지 못하는 처지여서..... 다들 너무 오래 살고. 타인에 대한 시선을 일체 멈추고 당신 건강에만 몰두하다 보면 그 길어진 삶의 질이 너무 빈약하게만 느껴져 더는 살고 싶지 않다는 말씀을 밥먹듯이 한다. 그러다 통증마저 견디기 힘들어지면 언젠가 스스로 그 말을 실행해 옮기는 일도 없지는 않다. 오늘도 나뭇잎이 하나가 스스로 뚝 떨어졌다. 두어 달 전에 그렇게 낙엽진 아내를 뒤따라....아름다운 꽃잎은 떠나는 모습마저 저리도 아름답건만....


울 엄마 손톱에 도우미 아줌마가 물도 들여주고...


여인들의 고된 삶은 손마디에 흔적을 남기는 법...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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