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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남원으로, 구례로 벚꽃놀이
  • 전순란
  • 등록 2016-04-06 12:0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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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4월 4일 월요일 비


느티나무독서회 아우들과 몇이서 남원으로 벚꽃놀이를 가려고 아침 일찍 나섰다. 아직도 보슬비가 차창 위로 보슬보슬 내리는데 꽃잎들이 상처입지 않을까 걱정을 했다. 그러나 60대에 앓아누우면 회복이 힘들지만 2, 30대에 아프면 쉽게 털고 일어나듯 막 피어나는 꽃들은 고개를 꼿꼿이 들고 봄비를 즐기는 형상이다. 가는 곳마다 꽃 천지, 온 천지가 구만구천구백구십구간의 꽃대궐이다.




우리는 남원 변두리에다 차를 세우고 ‘요천수’(남원을 사랑하는 어떤 분이 은하수나 살수(대첩)처럼 ‘수(水)’와 ‘강(江)’은 같은 의미니, 조상 대대로 불러오던 ‘요천수’라 부르지 절대 ‘요천강’이라 부르지 말아 달라 했다.) 주변에 ‘원 없이 흐드러진’ 벚꽃길을 걸었다.


외국인노동자로 보이는 청년들이 고국의 친구들과 사진을 찍으며 힘겨운 이국의 노동현장에서 모처럼 풀려나 낭만을 즐기는 모습도 피어나는 저 꽃처럼 보기에 좋다. 꽃나무 아래 활짝 웃는 아들의 사진을 본 고국의 엄마는 한국에 간 아들의 일상이 그 사진 속처럼 늘 아름답고 따스한 봄날이기를 간절히 바랄 것이고, 착한 아들은 농장으로 돌아가면 하루 종일 돼지똥을 치울지라도, 사진으로라도 엄마가 안심하길 원할 게다. 인생에 활짝 꽃피는 날은 누구에게도 며칠 안 된다.오늘 피어 있는 꽃처럼.



어제 대문 기둥을 쓰러뜨린 영감이 아들과 며느리까지 거느리고 기둥을 수리해주겠다고 왔단다. 보스코가 오죽 답답했으면 꽃에 미쳐 집나간 아내에게 전화까지 했을까? "여보 할배도 별로 성하지 않았어, 연세가 있어서. 아들은 그보다 좀 더 어려워보이고, 선머슴 같은 사람이 시멘트를 개는데 나중에 보니 그 집 며느리더라고...."


조금은 힘들지만 서로의 부족으로 서로가 필요한 사람들.... 주어진 인생이기에 살아 내야 하는 사람들의 힘겨운 인생을 주변에서 간간이 보게 된다. 그렇지만 태연히 삶의 무게를 지고 가는 모습이 대견하여 보스코가 벽돌값은 우리가 낼 테니 수공만 들이라 했단다. 아들이 대문 다른 기둥과 같은 색갈의 벽돌을 구해오지 못해 오늘일은 무너진 벽돌담을 치우고 기초공사로만 그쳤다.


빵기가 어제 아프리카 케냐와 탄자니아의 난민촌에 두 주간 출장을 떠났다. 그곳을 다녀올 때마다 자기가 가족을 거느리고 사는 제1세계와 우리나라를 떠올리며 화가 많이 날 게다. 아프리카의 숱한 내전과 수백만의 피난민촌과 끊임없는 살상이 ‘그리스도교 국가들’, 말하자면 유럽 국가들과 미국의 조작으로 일어나는 중이고, 권력만 잡을 수 있으면 조국과 국민의 내란과 학살과 기근도 아무렇지도 않은 본토 정치가들에 대한 분노다.



3년전 한국에 오신 ‘원선오 신부님’이 수단의 수십 년 내전이 유럽 국가들의 사주와 무기 공급으로 일어나고 있다면서 보스코 앞에서 대성통곡하시던 광경이 생각난다. 당신은 유럽인 가톨릭 성직자로서 여생을 다 바쳐 그곳 전쟁고아를 보살피는데 자기의 조국은 그 전쟁을 일으킨 사실상의 원흉 가운데 하나라니.




천변에서는 5월에 있을 ‘춘향제’를 준비하느라 화단에 꽃을 심으랴, 물길을 내랴 남원 전체가 한창 바쁘다. 남원장날이어서 장구경도 하고, 길에서 까뭇까뭇 기름에 튀긴 새우랑 김말이, 어묵도 사먹고, 윤희씨 단골 도매가게에 들러 엄마한테 가져갈 과일도 샀다. 재래시장에 가면 고만고만한 인생들이 고만고만하게 비비고 살기에 마음이 편하다. 제발 잘 살게 해주겠다는 총선 출마자들의 확성기로 질러대는 악다구니만 안 들렸으면 더 좋았을 텐데... 도둑놈, 사기꾼 정치가가 없는 세상에 살고 싶다.


탈출? 가봤자 또 다른 양푼 속... 우리내 인생과 같다


꽃잎이 날려 꽃길을 이루고, 꽃잎을 밟으며 꽃다운 아가들이 달려들 갔다. 내 눈앞에도 숱한 상념이 흩날린다. 내게도 ‘꽃 같은’ 시절이 있었지.... 많은 여인들이 꽃다운 날들의 추억으로 터무니없이 무너져내리는 나날을 버텨가고 있고... 우리 세 여자들은 구례에 가서 점심을 먹고 다시 한 시간 가량 꽃길을 헤매다, 이백, 운봉을 넘어 인월로 돌아왔다. “8시간의 외도”. 8시간 밭일을 했다면 힘이 꽤 들었을 테지만, 놀기도 만만치 않다.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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