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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곶감 대추 꼼짝 마라, 날만 새면...”
  • 전순란
  • 등록 2016-04-04 10:24:58
  • 수정 2016-04-06 12: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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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4월 3일 일요일 흐리다 비


회색 바탕에 하얀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면 웨딩드레스를 한 손으로 살짝 들고서 층계를 내려서는 새 신부같이 아무도 넘볼 수 없는 고귀함이 정말 아름답다. 폐교된 문정초등학교 마당에 60년 묵어 몇 아름 되는 다섯 그루가 꽃을 활짝 피우면 그 그늘에서 꽃비를 맞으면서 해마다 동네 아줌마들이 전을 부치고 삼겹살에 막걸리 잔치를 했는데 올해는 소식이 없다.



7시 30분 공소예절을 하고서 9시에 집을 나서니 11시에 시제(時祭)가 열리는 장성 삼서 유평리 선산(先山)에 도착했다. 우리 집에서는 준이 서방님이 트럭으로 도착하고 훈이 서방님은 평택에서 막내 동서랑 도착해 있고 찬성이 서방님은 몸이 불편하여 아무도 참석을 못했다.


보스코네 창녕성씨(昌寧成氏)는 고려시대 인보(仁輔)라는 분을 시조로 모신다. 그 이전에는 사람들에게 성이 없었거나 족보가 없었다는 말일까? 아무튼 그 혈통이 7대에서 지사공(知事公)파로 나뉘고, 15대에서 진명(震明)이라는 분이 장성으로 이사오심으로써 오늘 선산에서 맨 윗자리에서 시제를 받으시는 ‘입향조(入鄕祖)’이시다.



원래 바로 옆의 소룡리(小龍里)에 선산과 산소들이 자리 잡고 10대 넘게 시제를 올려오다 군부대 ‘상무대’가 광주에서 소룡리로 들어오면서 토지를 몰수당하고 유평리로 선산이 옮겨지고 여기저기 묻혀 계시던 조상들도 한 곳으로 모이셨다. ‘창녕성씨세장산(昌寧成氏世葬山)’이라는 비석이 초입에 큼직하게 서 있다.




11시 정각의 제사는 선산 맨 위쪽 구석에 미소 짓는 돼지 머리를 받는 산신(山神)께 올리는 예식으로 시작하였다. 제주는 종손인 27대 강제씨가 “유세차 병신년 2월 26일...” 하는 축문으로 시작하였다. 본 제사는 진명공(震明公) 부부께서 독상을 받으시고, 선산에 모셔진 그 이하 16대에서 24대까지는 무려 9세의 선조들이 할머니들과 더불어 한 상을 받으시는데, 말하자면 열여덟 어르신이 한 식탁에 둘러앉으신 셈이다. 무덤마다 상석에 따로 제수를 차리고 제사를 올리자면 해가 기울어야 시제가 끝날 게다.


제물을 진설을 하고 밥과 국을 차리고 술잔을 올려 축문을 읽고, 모든 후손들(물론 남자들만이고 성씨 집안으로 시집온 여자들은 제수나 그릇에 담아 내보내고 받아오면서 한쪽 구석에 몰려 앉아 얘기나 나눈다. 제수 진설도 남자만 한다. 나도 이 집안 족보에는 이름도 없이 ‘정선전씨(旌善全氏)’로만 올라있으니까)이 큰절을 올리고, 다시 세대별로 술잔을 올린 뒤 절을 하고나면, 다들 드셨는지 여쭙지도 않고 물그릇을 올리고서는 합동 재배를 하면 “곶감 대추 꼼짝 마라, 날만 새면 내 것이다.”던 노랫말처럼 바로 음복으로 들어간다.


성씨 집안으로 시집온 여자들의 시젯날 몫이란...


봉기와 부사 두 당숙이 25대, 26대는 보스코를 비롯한 열댓 명, 27대 대여섯, 28대는 딱 한 명(종손의 외아들이니 차기 종손에 해당한다)이니 지금 주축을 이루는 26대가 지팡이를 놓고 조상들 곁으로 누우면 과연 시제라도 제대로 올려질지 궁금하다.


제사가 끝나고 야외소풍 기분으로 식사를 하고 문중회의도 별다른 잡음 없이 끝났다. 집안 제사든 선산 시제든 제사 잘 지내고 음복 잘하고 나면 몇십년, 아니 몇 대 묵은 불만과 원망으로 고성이 터지는 일은 집안마다 목격하는 일인데... 보스코가 25년간 장기집권 해온 삼서종중회장직을 부산패(해마다 너댓 명의 형제들이 부산에서 함께 온다)한테 억지로 떠넘김으로써 그에게도 오늘은 홀가분한 날이다.



지난겨울 보스코네와 ‘부사 삼촌’네가 할아버지들 산소 아래에 유골함이 50여개 들어가게 석실을 만들어서 봉분 둘을 나란히 쌓아올렸는데 재작년 돌아가신 춘기 당숙이 그 납골당 최초 입주자로 오늘 오후에 모셔졌다. 다른 문중은 다 하산시키고 우리와 그 집안 식구들만 남아서 봉을 헐고, 석실을 열고, 함을 안치하고, 석문을 봉하였다. 두 집 다 신구교 신도들이어서 보스코가 예배를 인도하였다.


선산을 내려와 지리산으로 떠나면서 가장 가까운 ‘사창 성당’에 들러 본당신부님과 차를 들면서 환담을 나누기도 하였다. 장성을 떠나면서 비가 뿌리기 시작하더니 지리산에는 해갈이 충분한 비가 내리고 있다.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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