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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보는 세상 : 진실은 갑작스런 상황에서
  • 이정배
  • 등록 2016-03-24 10:5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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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발디 “사계 여름(L'estate)”의 3악장인 ‘폭풍(Presto)’이 간간히 흐른다. 영화 《포스 마쥬어:화이트 베케이션, Force Majeure》(2014)의 배경음악이다. 영화와 음악은 역설적인 대비로 배치되었다.


한가히 휴가를 즐기는 가족들 앞에 갑작스런 눈사태가 일어난다. 남편은 아내와 자녀들을 내버려두고 혼자 휴대폰이랑 장갑을 챙겨들고 도망친다. 가족들의 놀라움과 부르짖음을 무시하고 자신만 황급하게 그 자리를 벗어난다. 상황이 끝나자 비로소 망연자실한 가족들에게 돌아와 뻔뻔하게 괜찮은지를 묻는다.


휴가 내내 가족들은 냉랭함을 감추지 못한다. 남편은 점차 자신을 합리화시키기 시작한다. 남편은 아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이 가족을 버리고 혼자 도망갔다고 말하는 게 싫어서, 자신은 도망가지 않았다고 항변한다. 절대로 그런 일은 없었으며 자신에게는 그런 기억이 없다고까지 한다. 아내가 계속해서 캐묻고 동영상까지 보여주며 증거를 대자 그건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를 수 있다고 말한다. 심지어 아내의 관점이 잘못이라고 논박한다.


남편은 아내에게 결과적으로 가족 모두 무사하니까 그것으로 넘어가자는 타협점을 제시한다. 다른 말은 하지 말고 눈사태가 일어난 것과 모두 무사하다는 것만으로 결론짓자고 협상한다. 그래도 뭔가 모를 찜찜함이 지속되자 결국 울음을 보이면서 자신도 본능의 피해자라고 징징거린다.


언제라도 전쟁이나 자연재해, 교통사고와 같은 예기치 못한 사건이 일어날 수 있다. 문제는 그런 사건을 대하는 태도이고, 그 후에 자신의 태도를 대하는 진정성이다. 사건이 일어났을 때 국민을 버리고 저 홀로 먼저 달아나는 지도자의 태도는 비열하다. 문제의 심각성은 그러한 태도를 언급하는 방식에 있다. 제일 먼저 일어나는 반응이 자신은 결코 도망하지 않았다는 태도이다. 누군가 그러한 사실을 알아차릴까봐 왜곡시키고 나아가 기록을 삭제하려든다. 절대로 그런 기억이 없다고 목청 높여 더욱 소리친다. 그것을 기억해내는 이들을 향해 너희가 잘못 기억하고 있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참다못해 코밑에 증거를 들이대면, 보이는 건 그렇게 보일 수 있지만 본질은 그런 것이 아니라고 변명한다. 결국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라는 논리를 펴기 시작한다. 그러다 수세에 몰리면 자신도 피해자라며 거짓 울음으로 울먹거린다. 상대의 감정에 호소하는 전형적인 수법을 절묘하게 이용한다.


우리의 근현대사를 돌아봤을 때 불행한 민족이라는 생각이 드는 이유는 진실한 지도자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문제가 생기면 제일 먼저 그 상황으로부터 달아나거나 자기 합리화에 열중인 지도자만을 보아왔다. 처음부터 진심어린 마음으로 미안하다고 말하면 될 일이었다. 자신의 부족함을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면 풀어질 일인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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