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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교회의, 한반도 평화를 위한 호소문 발표
  • 최진
  • 등록 2016-03-07 15:24:12
  • 수정 2016-03-07 15:4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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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일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와 정의평화위원회는 경기도 파주시 `참회와 속죄의 성당`에서 한반도 평화를 위한 미사를 봉헌했다. ⓒ 최진


핵실험과 로켓 발사, 사드 배치와 개성공단 폐쇄 등으로 남북관계가 얼어붙은 가운데 한국천주교주교회의가 미사를 통해 평화를 지향하는 호소문을 발표했다. 주교회의는 한국 정부가 개성공단 폐쇄를 재고하고 동북아 평화 안정을 위한 6자회담을 조속히 진행해 줄 것을 요구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와 정의평화위원회는 6일 오후 4시 경기도 파주시 ‘참회와 속죄의 성당’에서 한반도 평화를 위한 미사를 봉헌했다. 이날 미사는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장 이기헌 주교(의정부 교구장)와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장 유흥식 주교(대전교구장)가 30여 명의 사제와 공동으로 집전했으며, 400여 명의 수도자와 평신도들이 참석했다. 


이날 미사에서 이기헌 주교는 강론을 통해 한반도를 둘러싼 폭력과 갈등의 본질이 ‘상대를 적으로 만드는 미움의 정치’에 있다고 말했다. 이 주교는 남북관계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주교는 현재 남북관계에 대해 “지난해 말 처음으로 한국 천주교 여러 명의 주교가 북한교회를 방문해 희망적인 이야기를 나눴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한반도에는 분쟁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웠다”며 “핵무기로 체제안정을 보장받겠다는 북한과 이를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한국과 국제사회가 충돌하는 상황이다. 거기다가 한반도 사드 배치 문제로 중국과 미국의 힘겨루기까지 더해져,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평화가 깨질 위험에 놓여있다”고 우려했다. 


▲ 이날 이기헌 주교는 한반도를 둘러싼 폭력과 갈등의 본질이 `상대를 적으로 만드는 미움의 정치`에 있다고 말했다. ⓒ 최진


이어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 정부는 남북 협력의 상징이며 결실인 개성공단 사업을 전면적으로 중단시켰다. 경제뿐만 아니라 군사적 긴장완화에 큰 역할을 했던 공간이 사라질 위기를 맞았다”라며 “증오가 이성을 압도하는 이 위기의 순간에도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상대의 말을 들으려는 노력과 대화하는 자리를 만드는 노력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주교는 진정한 평화를 얻기 위해서는 상대의 다른 이념과 문화 등을 포용하고 용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한국의 정치 지도자들이 군비경쟁을 선택하기보다, 인내와 포용으로 북한의 형제들을 평화협정의 자리로 인도하도록 기도하자고 신자들에게 호소했다. 


유흥식 주교는 최근 남북한의 대치상황을 보면서 절망감과 답답함을 느꼈다며, “남과 북을 연결하는 개성공단 폐쇄로 분단의 벽은 더 높아졌고, 최신 대량살상 무기들의 도입 위기로 한반도는 세계에서 가장 무서운 화약고로 변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서로 무력을 과시하고, 함부로 말하고, 신중하지 못한 결정을 내리는 두려운 상황을 만들고 있지만, 무기를 통해서는 결코 평화를 가져올 수 없다”며 “인간적으로는 희망이 안 보이지만, 끝까지 평화의 도구가 되도록 노력하자. 우리가 친교의 삶을 지향하고 산다면, 하느님께서 평화의 그 날을 더 일찍 당겨주실 것이다”고 말했다. 


▲ 이날 유흥식 주교는 인간적으로는 희망이 안 보이지만 끝까지 평화의 도구가 되도록 노력하자고 말했다. ⓒ 최진


이날 미사에서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총무인 이은형 신부(의정부교구)는 한국천주교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와 정의평화위원회가 공동으로 낸 ‘한반도 평화를 위한 호소문’을 발표했다. 이 신부는 호소문이 신앙인들에게 한반도 평화를 위한 실천 방안을 찾는 데 도움이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주교회의는 14일부터 진행되는 춘계 정기총회에서 한반도의 시급한 현안들을 점검하는 주교연수를 진행한다. ‘한반도 현안과 이에 대한 남북 관계의 전망’을 주제로 열리는 주교연수는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이 강사로 참석해 당면한 남북 관계의 문제에 대한 의견을 전달할 예정이다.


다음은 한반도 평화를 위한 호소문 전문이다. 



한반도 평화를 위한 호소문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아 있는 이들을 비추시고 우리 발을 평화의 길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루카 1,79).”


지난해 한국 천주교회는 분단 70년을 보내면서 대립과 갈등으로 점철된 분열의 역사를 딛고 평화의 원년으로 살아갈 것을 다짐하며 기도운동을 펼쳤습니다. 우리의 이 간절한 기도에 화답이라도 하듯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올해를 ‘자비의 특별 희년’으로 선포하였습니다.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루카 6,36)라는 주제 말씀을 통해 자비로운 마음으로 모든 갈등을 극복하고 화해와 일치, 그리고 평화의 길로 나아가도록 촉구하였습니다.


그러나 평화로 나아가는 길이 결코 쉽지 않음을 요즘 우리의 현실을 통해 확인하게 됩니다. 북한의 핵실험과 로켓 발사, 그에 대한 대응으로 재개된 대북 확성기 방송, 개성공단 폐쇄, 연일 계속되는 적대적 대응과 대규모 군사훈련 등은 한반도에서 일촉즉발의 긴장을 더욱 고조시키고 있습니다. 남북 사이에 이루어지는 첨예한 갈등과 대립은 사드 배치 관련 논란에서도 볼 수 있듯이 우리 민족뿐 아니라 중국과 미국을 축으로 동북아에서 긴박하게 전개되는 신 냉전 상황과도 밀접하게 연계된 문제임을 새삼 확인하게 됩니다.


우리는 이미 65년 전 끔찍한 전쟁의 폐해를 경험하였습니다. 종전이 아닌 휴전 상태로 살아온 지난 60여 년의 세월 동안 전쟁의 상처는 치유되지 못한 채 우리 사회 곳곳에 깊이 자리하며, 수많은 사회적 갈등과 고통을 빚어냈습니다.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해진 각종 대량살상 무기와 최첨단 무기로 무장한 상태에서, 만일 전쟁이 다시 일어난다면 남북은 공멸할 수밖에 없습니다. 비오 12세 교황께서는 ‘평화로는 잃을 것이 없지만, 전쟁은 모든 것을 잃게 만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우리는 한반도에 끔찍한 전쟁이 아닌 평화를 정착시킬 수 있도록 다음과 같이 호소하는 바입니다.


먼저, 남과 북의 당국자들에게 간절한 마음으로 호소합니다.


끝을 모르고 치닫는 대결 국면을 멈추고, 평화를 위해 힘과 지혜를 모아주십시오. 그토록 강조하는 안보(安保)는 국민의 안전을 보장(保障)하자는 것이니 이 의미에 충실하려면 당연히 최고의 안보는 항구적인 평화가 되어야 합니다. 한반도가 분쟁의 상징이 아니라 평화의 표지가 될 수 있도록 만나고 대화하고 교류와 협력을 지속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지난 분단의 기간 동안 어려움 속에서도 남과 북이 지혜를 모아 함께 맺었던 모든 선언과 합의들을 존중하고 계승 발전시켜 나가야 합니다. 또한 남북 교류와 협력, 평화와 통일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개성공단 폐쇄도 재고되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원하는 통일은 평화라는 토대 위에 자연스럽게 맺어지는 결실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 국가들에게도 호소합니다.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받던 우리나라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해방의 기쁨도 잠시 원치 않는 민족 분단을 맞게 되었고, 그로 인한 상처와 아픔을 70년 이상 겪어오고 있습니다. 그에 반해 같은 시기 패전 후 분단의 상황을 맞이했던 독일은 전범국이었음에도 어느덧 통일 26주년을 맞고 있습니다. 한반도의 분단 문제가 민족 문제이면서 동시에 주변 강대국들과 연관된 국제 문제임은 분명합니다. 조속한 시일 내에 6자 회담을 개최하여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체제 그리고 동북아 평화 안정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논의를 진행해 주시기 바랍니다. 한반도의 평화 정착이 동북아 평화는 물론 세계 평화와 안정에 큰 기여를 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평화를 위한 여정에 적극적인 관심과 협력을 당부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국민과 신앙인들에게 간곡히 호소합니다.


평화에 대한 국민적 열망이 평화를 이루는 가장 큰 자산입니다. 진정한 평화는 오로지 용서와 화해를 통해서만 가능합니다(요한 바오로 2세, 2000년 세계 평화의 날 담화). 서로를 파멸로 이끄는 냉전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이제 미래 세대를 위해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야 합니다. 소모적 이념 논쟁을 뒤로 하고 민주적 기본질서 속에서 다양성을 받아들이며, 진실과 정의를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평화의 길을 함께 찾아 나서야 합니다.


십자가의 수난과 죽음에 앞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모아놓고 분명한 어조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도, 겁을 내는 일도 없도록 하여라”(요한 14,27). 주님께서 약속하신 평화는 무기라는 힘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강제적이고 불안정한 상태가 결코 아닙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평화는 하느님의 정의와 하느님의 사랑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포용과 상생의 평화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첫 번째 과업은 기도입니다.


교회는 기도를 통하여 평화를 위한 투쟁에 참여합니다(「간추린 사회교리」, 518항). 우리는 기도를 통해 주님의 뜻을 찾고, 주님의 도움을 청해야 합니다. 특히 한반도의 평화가 어려움에 처해 있는 시기이기에 신자들은 지난해 함께하였던 기도운동을 계속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또한 우리가 드리는 기도가 우리를 사랑의 실천으로 이끌어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인도적 차원의 남북 교류와 협력은 우리 신앙인의 거부할 수 없는 사랑의 의무입니다. 기도의 힘을 바탕으로 주님의 자비에 힘입어 함께 연대하고, 행동하고, 실천해 나간다면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반드시 이루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자애와 진실이 서로 만나고 정의와 평화가 입 맞추리라(시편 85,11).”


2016년 3월 6일 


한국천주교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위원장

이기헌 주교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유흥식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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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에 1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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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omem2016-03-07 21:11:35

    "주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평화는 하느님의 정의와 하느님의 사랑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포용과 상생의 평화입니다." 평화를 위해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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