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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상님, 나 사람 아니요!”
  • 전순란
  • 등록 2016-02-19 10:57:44
  • 수정 2016-02-19 11: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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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2월 18일 목요일, 맑음


어제 독서회 아우들이 나누던 말들: 인생을 살면서 좀 더 폭넓게, 남생각도 하면서 사는 게 역시 행복의 질을 높인다, 이타적인 삶과 이기적인 삶은 차이가 난다, 아우구스티누스라는 옛날 옛적의 현자가 사랑을 ‘사사로운 사랑’과 ‘사회적 사랑’으로 나누면서 사회적 사랑이 그 사회와 그곳 인간들을 구제한다는 말에 공감이 간다...


“자기 가족, 자기 새끼들도 나 자신이 아니므로 그들을 돌보고 키우는 사랑도 결국 이타적인 사랑 아닐까?”라는 질문도 나왔는데 일찍이 남편을 여의고 세 아이를 키우며 참 힘들었겠고, 때로는 그 책임도 벗어나고 싶었을 사람의 말이어서 공감이 가기도 했다. 요즘처럼 부모를 나 몰라라 하고, 자식들을 이리저리 때려죽이는 세태를 생각한다면... “자식이라는 타인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느라 내게 남은 건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도 왜 안 들겠는가?



오늘 12시부터 산청 성심원에서 “지리산종교연대” 총회와 ‘세월호 지리산 1000일기도’가 있어서 행사에 갔다. 실상사 스님들과 청학동 오마리아섐, 단성 임봉재언니가 특히 반가웠고, 장가를 앞둔 노총각 노재화 목사님도, 겨우내 감기를 달고 살았노라는 율리아나 수녀님도 반가웠는데 지리산에 살면서 서로의 종교를 존중하고 자연과 인간에 대한 공통된 사랑으로 우정을 나누는 모습이 천국을 보는 듯하다.



한국사의 뿌리 깊은 좌우갈등의 비극과 한을 안아주는 지리산이라는 어머니 품에 기대어 살면서 남의 아픔을, 대자연의 아픔을 가슴으로 느껴 아는 사람들이 이렇게 모이는 자리다. ‘세월호 기도회’에서는 보스코가 ‘어르신’급으로 수인사를 하고, 상임대표 오신부님의 말씀에서는 당신의 경상도 친구들이 “세월호 사건이 2년이나 됐는데 아직도 세월호냐?”라고 핀잔하는데, “우리는 예수라는 분의 억울한 죽음을 2000년 동안이나 기억하고 우리 삶으로 되살려내고 있단다.”고 대꾸하신다는 말씀이 있었다.





어제 보스코가 군내버스를 타고 오다 겪은 일. “문정 갑니다.”라면서 버스기사에게 차표를 끊던 보스코를 보고서 뒷자리의 술이 거나한 영감님이 말을 걸더란다. “문정리라꼬? 다니러 가쇼?” “아뇨. 귀촌해서 그 동네 삽니다.” “거기 이완영이가 있는데.” “이선생님은 윗마을 도정에 사시던 분인데요?” “하갸, 조합장하던 아무개도 죽었지.” 그러다 돌연 화제가 바뀌더란다.


“선상님, 나 사람 아니요. ???" 나 대한민국 육군 대위요. 내 나이 여든일곱이오. 나 사람 아니요. 보도연맹이라고 잡아 오면 다 쏴죽여 뿌럿소. 졸병이든 장교든 대령이든 그 짓 하고 사람 아니요. ... ... 딸은 나더러 이런 말 지발 입 밖에 내지 말라카지만... 선상님, 나 사람 아니요.” “... ...” 노인은 보스코에게서 아무 위로도 못 받은 채로 대포마을에서 내렸단다. 


그 노인이 술기운에 횡설수설 취중진담(醉中眞談)을 털어놓은 까닭이 무엇일까, 그것도 생전 처음 보는 승객에게? 살날도 많지 않고 저승에서 자기 총에 죽어간 젊은이들을 만나야 한다는 양심의 부담 때문이었을까? 저런 부담이라도 느끼는 사람이라면 인간성 회복의 여지, 영원한 구원의 여지라도 있을 텐데, 지금 정권이 동원하는 백골단들이나 세월호사건을 일으킨 집단들의 행태로는 그럴 여지가 전혀 없어 보인다.



어제 맞은 예방주사가 어제는 보스코를 스산하게 만들어 긴방 이불 속으로 파고들게 만들더니만, 오늘은 내가 으슬으슬 춥고 기운이 빠져 뜨거운 장판위에서 한 잠을 잤다. 일어나서 박하차를 연거푸 마셨더니 지금은 몸이 좀 풀린다. 선물 받은 박하차의 향기가 유난히 좋아 생산자로 표시되어 있는, 합천에 산다는 서정흥씨에게 전화를 해서 차 만든 비법을 물으니, 민트차 만드는 방법을 친절히 설명해 준다. 민트를 키우는 사람이라면 이렇게 한번 덖어두고 감기기운이 있거나 소화 안 될 때에 마시면 좋을 게다.  


- 박하차 마련하는 법 -

⓵ 6월경 비가 와 흙이 깨끗이 씻겨 내린 후 위로 3분의 2만 자른다. 일주일간 맑은 날이 이어지면 더 좋다. 

⓶ 바람이 치는 그늘에서 잘 말린다. 

⓷ 잘 마르면 '햇볕에 덖는다' 생각하고 30분간 햇볕을 바짝 쪼인다. 

⓸ 마른 잎을 습기 안 차는 봉지에 넣어 포장한다.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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