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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왕벌을 갈아치는 '벌통 속의 정치'
  • 전순란
  • 등록 2015-04-30 13:57:28
  • 수정 2015-04-30 14:4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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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4월 28일 화요일, 흐리고 이슬비


살금살금 다가와 깜짝 놀래주려나? 비가 내리는데 바람 한 점 없이 보슬보슬 얌전히도 내린다. 겨울을 나고 고생고생하다 봉오리를 연 꽃들이 가여워선지 행여 꽃잎이라도 다칠까 살살 내리는 저 봄비는 갓난아기 어르는 엄마의 손길이다. “여보, 오후엔 비가 온대요. 당신은 예초기 좀 돌리고 나는 어성초 밭, 섬초롱 밭에 풀을 매야겠어요. 이장님네 논두렁은 벌써 일주일 전에 깔끔하게 이발을 했는데 우리 텃밭 잡초들은 사춘기 장발족이에요.”


그렇게 해서 땀을 뻘뻘 흘리며 예초기를 돌리는 보스코한테서 좀 떨어져 나는 예초기 날이 안 미치는 구석진 풀을 뽑아낸다. 설거지도 미처 안 했지만 보스코가 혼자서 일하기를 심심해하는 사람이어서 밭일을 하더라도 가까이서 종알종알 말을 걸면서 일을 한다. 예초기 모터 소리에 안 들려서이기도 하겠지만 그는 간간이 뒤를 돌아보며 내가 있는가 확인한다.



그런데 그가 깎고 지나가는 우리 풀밭은 정작 보스코의 눈에도 ‘라이안의 처녀’처럼 엉성하다. 영화 “라이안의 처녀”에서 배신자 아버지 대신 주민들에게 머리를 가위로 깎인 여자의 머리칼처럼 손으로 쥐어뜯은 형국이다. 책상 앞에 하루 종일 앉아 있는 학자가 그래도 예초기를 돌려 풀을 깎아주겠다고 나서는 것만도 어디냐 싶어 감히 타박은 안 했다.


그 동안 도정의 가타리나씨가 미국에서 다니러 온 딸과 동네를 한 바퀴 돌다가 휴천재에 들렀다. 아들도 미국에서 공부하고는 한국에 안 돌아오나 본데, 딸마저 아프리카로 봉사하러 간다기에 달려가서 붙잡아온 길이란다. “나도 늙었다. 너희들 편한 대로만 말고 나도 좀 봉양해라.”는 명분이었단다.


오후에 그 얘길 전해들은 체칠리아씨. 자기도 작은딸의 결혼을 반대했더니만 직장 그만두고 아프리카로 봉사생활 떠나겠다고 하기에 얼른 고집을 꺾고 맘대로 하라고 결혼을 승낙했었단다. 자식 앞에 약한 게 부모라는데 미국까지 가서 딸을 붙들어온 엄마는 파워가 대단하다. “그럼, 나는?” 두 아들은 각기 제 길을 떠났고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유일한 남자 하나 곁에 붙들어 두고 예초기나 돌리게 하고 텃밭의 풀을 뽑으면서 지리산에 그냥 눌러 살란다.


점심 후 ‘약초딸기’를 하는 현수씨가 부인이랑 다녀갔다. 자기 농장에서 갓 딴 딸기를 한 소쿠리 들고서. 내 카친이고 딸기를 사러 그 집에 한번 간적이 있는데 오늘은 우리 집을 찾아와 다과를 들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귀농생활의 결단, 주변 원주민들과의 관계, 친구 없는 외로움, 처음엔 귀농인들끼리 의기투합하여 잘도 어울리다가 사소한 문제에 부딪치면 쉽게 모임이 깨어지더라는 경험, 도시를 떠나 귀농할 만큼 개성이 강한 사람들이어서 한번 벌어진 사이는 좀처럼 봉합하기 어렵더라는 얘기. 우리 ‘지리산멧돼지’도 겪었던 일이다.


도정 사는 이웃의 큰딸이 결혼한다는 청첩장을 받은 터라서, 그런데 당일 살레시오 수도회의 수도자 부모 피정이 태안반도에서 미리 잡혀 있어서 앞당겨 축하를 하러 갔다. 양봉을 하는 집이라 벌치는 얘기와 여왕벌을 다루는 벌들의 정치세계를 참 재미나게 들었다. 여왕벌이 시원치 않으면 일벌들이 여왕벌을 갈아치운단다. 아예 죽인단다. 그리고 왕대를 준비하여 새 여왕이 나올 기미가 생기면 기득권 여왕이 일벌들 일부 데리고 벌집을 떠나준단다. 그런데 여왕이 떠날 즈음에는 일벌들이 일체 일손을 놓고 쌓아둔 꿀만 먹으면서 이사 준비를 하기 땜에 벌통은 망하기 쉽단다.


휴천재에 새로 핀 작약, 들수선, 붓꽃


박근혜가 귀국해서 성완종 사태를 두고 대변인을 시켜 내린 ‘교서(敎書)’는 SNS에서 세월호 유가족과 네팔 피해자들에게 욕설과 조롱을 서슴지 않는 자들의 수준을 크게 능가한다. 발표된 수뢰자들이 자기 대선주도자들이건만 “난 책임 없다!” 집권당의 강요로 내려진 사면인 듯한데 다 “성완종을 사면한 노무현 탓이다.” 돈 받은 사람들은 눈감아주고 “우리한테 돈 준 놈들이나 몹시 쳐라.”는 소리처럼 들린다. 평범한 산골 아낙의 입에서도 “적반하장도 유분수지...”라는 장탄식이 절로 나면서 ‘벌통 속의 정치’가 한결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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