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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자 사랑한 중재자”
  • 최진
  • 등록 2016-02-11 16: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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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0년 6월 출소자들의 재활 가족공동체인 `평화의 집`을 방문한 김수환 추기경. (사진출처=천주교 서울대교구)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 7주기(2월 16일)를 앞두고 그의 전기 <아, 김수환 추기경>(김영사)이 출간됐다. 1권 ‘신을 향하여’, 2권 ‘인간을 향하여’로 나뉘어 출간된 이번 전기는 <간송 전형필> 등의 전기로 유명한 이충렬 작가가 김 추기경의 각종 기록을 조사해 책으로 엮었다. 


이 작가는 저자의 글에서 “김수환 추기경은 우리 현대사에서 몇 안 되는 정신적 지도자 중 한 명이었다. 약자를 사랑했고, 도저히 풀 수 없을 것 같던 어려운 문제를 대화를 통해 풀어냈던 사회 갈등의 중재자였다”며 “이런 김수환 추기경이 생전에 보여준 삶과 정신 그리고 그가 추구했던 가치관에서 우리 사회가 가야 할 길과 방법 하나를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집필 동기를 밝혔다. 


저자는 이를 위해 추기경의 미사 강론과 언론사 인터뷰, 개인 일기와 메모를 비롯해 미국 국립문서보관소에 소장된 기록까지 조사했다고 밝혔다. 또한, 김 추기경이 서울대교구장일 당시 비서신부를 지낸 장익 주교(전 춘천 교구장)와 선종 전 고해성사를 했던 박신언 몬시뇰을 비롯해 추기경과 함께했던 사람들을 찾아가 사실을 확인하고 육성을 책에 담았다. 책은 김 추기경의 1930년대 예비 신학생 시절부터 2000년대의 시국사건 현장에서의 모습까지 담고 있다. 


1천 쪽이 넘는 페이지와 360장의 사진은 김 추기경 개인의 발자취뿐만 아니라 그가 헌신했던 한국 현대사까지도 아우른다. 격동하는 시대에서 보였던 김 추기경의 생애는 개인사를 넘어 20세기 한국 천주교회와 한국 민주화 운동에 큰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책의 인세 절반을 김 추기경이 만든 옹기장학회 장학기금으로 기부하기로 했다. ‘옹기장학회’는 북한 선교와 아시아 복음화에 나설 인재 양성을 위해 김수환 추기경이 생전에 설립한 장학회다. 김수환 추기경 7주기 추모 미사는 오는 16일 오후 2시 경기도 용인시 서울대교구 용인천주교공원묘원 내 성직자묘역에서 봉헌된다.



1922년 대구 남산동에서 태어난 김 추기경은 열두 살 때 소신학교에 입학했다. 이후 사제가 된 김 추기경은 독일 유학 시절 세상과 소통하고 세상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사목회심에 큰 감명을 받는다. 1966년 마산 교구장과 1969년 최연소 추기경으로 임명되면서도 김 추기경은 가난한 이들과 사회적 약자들의 편에 섰다. 


1998년까지 30년간 서울대교구장을 맡으며 김 추기경은 민주화 운동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군부독재 시절의 압박 속에서도 김 추기경은 1971년 성탄 미사에서 생방송을 통해 박정희 대통령의 독재시도를 비판했다. 1979년 12·12 사태 후 새해 인사를 온 전두환 장군에게는 군사정권의 폭력성을 지적했고, 1980년 5·18 광주 민주항쟁 당시에는 평화적 해결을 촉구하는 시국 성명을 발표했다. 


1987년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 때는 추모 미사를 통해 “이 정권의 뿌리에 양심과 도덕이라는 게 있느냐”며 강도 높게 정부를 비판했다. 특히 1987년 6월 항쟁 당시 명동성당에 모인 시위학생들을 경찰이 진압하려 하자 김 추기경은 “나를 먼저 밟고 넘어가라”며 시위대를 보호했다. 이후 그가 있던 명동성당은 민주화 운동의 성지로 자리 잡았다. 


2009년 2월 16일 김 추기경이 폐렴 증세 악화로 세상을 떠나자, 한국사회는 종교를 초월하여 큰 슬픔을 맞이했다. 전·현직 대통령과 각 종교계 인사들은 정당과 종교관을 초월해 조문에 참여했고, 40여만 명의 인파가 명동성당을 찾아와 김 추기경의 선종을 슬퍼했다. 특히 가난하고 외로운 이들은 더욱 큰 슬픔과 상실감을 느끼며 눈물 흘렸다. 이후 힘없고 억압받는 이들을 대신해 목소리를 내주던 김 추기경의 빈자리는 아직 채워지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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