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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난아기 입 밖에 내는 첫마디가 "오빠!"
  • 전순란
  • 등록 2016-01-25 11:37:02
  • 수정 2016-01-25 11:3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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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월 24일 일요일, 맑음


서울에서도 젤 추운 곳 하나가 도봉구다. 아마 서울 북쪽 끝에 위치한 곳이어서, “북한산과 도봉산이 병풍처럼 가로막아 찬 공기가 서울을 못 빠져나가설까?”라고 했더니 보스코는 “무식하긴! 산이 북쪽에서 내려오는 찬 공기를 막아주어서 이 정도로 그칠 꺼야.”라고 아는 척한다. 기상학자가 우리 둘의 얘기를 들으면 기가 찰 게다.


시골에서 서울 63빌딩을 구경하고 왔다는 할메들 대화. “엄청시리 높아뿌러. 삐까뻔쩍 멋지구. 그런 거 하나 지으려면 수억은 들었을 게야.” “뭔 소리? 수억 갖구 택도 없다. 수십억은 들걸.” 나더러 평역을 들어달라고 쳐다보는데 모른 척했다. 나 역시 빌딩의 건축비용에 관해서 전혀 아는 바 없어서... 그러니 오늘 날씨를 정의하자면 “걍 춥다.”거나 “더럽게 춥다.”


밀가루 사러 가서 보니 우이천이 꽁꽁 얼어 있다


애플파이 준비차 사과를 까는 보스코 


하도 추워 모처럼 11시 교중미사에 갈까도 했지만 손주도 곁에 없는 우리가 일주일에 한번은 꽃 같은 아이들과 함께 미사를 드리며 흐뭇해하는 호사를 마다할 수 없어 맘 단단히 먹고 옷 단단히 입고 집을 나섰다. 바람이 없어선지 예상 외로 견딜만 했다.


우이성당이 “성가정(聖家庭)”을 수호자로 모시는 만큼 가정의 신앙교육이 중요하다면서 자녀가 얼마나 부모의 언행을 고스란히 배우는지 얘기하던 신부님은, 요즘처럼 아내가 남편을 “오빠”라고 부르는 집안에서는 갓난아기가 입 밖에 내는 첫마디가 '엄마'도 '아빠'도 아니고 "오빠"(“오브바”)라더라는 예화를 들려주었다.



“자비의 해”를 두고 하는 설교는 전대사(全大赦)를 받으려면 명동성당이나 절두산이나 새남터 순교지 성당을 방문하라는 말씀 외에는 특이한 얘기가 없었다. 일이 급하다면서 주교회의의 부탁으로 “자비의 성사”라는 교황청문서를 번역하고 있는 보스코는 “중풍병자 치유사건”, “돌아온 아들의 비유”, “매정한 종의 비유”를 들어 자비가 신앙인의 삶과 얼마나 깊이 연관되는지를 잘 설명하고 있다면서 감탄하는데...


정작 말단사목을 담당하는 본당주임들에게 개념이 없으면, 프란치스코 교황처럼 인류의 운명을 걱정하고 가톨릭교회의 사활을 사회복음에 두고 있더라도, 교황 혼자서 공염불을 하는 기분이리라는 생각이 든다. 적어도 수도자들은 교황의 사회복음(社會福音)과 생태복음(生態福音)을 알아들어 신자들에게 영성으로 심어줘야 한다면서 보스코가 남녀 수도회들의 초청을 받아 강연을 하고 다니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어린이 미사지만 워낙 추워선지 미사에 온 어린이들이 몇 안 된다. 들어오는 사내애의 뺨을 만져보니 차고 거칠다. 찬바람 속에서 어지간히 뛰놀다 들어왔나 보다. 맨 앞에들 앉아서 미사 하는지 노는지 모르게 떠들고 딴전을 피워도 신부님은 사랑스럽다는 시선으로 내려다볼 뿐 꾸짖지 않는다. 사목자의 너그러움이다. 하느님 보시기에도 “자알~ 논다.”시면서 흐뭇하실 게다. 저 어린이들이 커서 학생회도 청년회도 그리고 사목회도 나오는 주인공이 되려니..


   



   


날씨가 추우면 부엌 오븐 속에서 노릇노릇 익어가는 파이를 만들고 싶어진다. 점심을 먹고 난 보스코에게 사과를 까 달라 부탁하고 밀가루를 사다 반죽을 하여 냉장고 속에 넣었다 애플파이를 만들었다. 한 시간쯤 지나니 집안에 케이크 굽는 냄새가 가득하다. 얼그레이에 우유를 넣어 영국식차를 끓여 막 구운 따끈한 파이를 둘이서 먹으며 영하의 썰렁함을 날려버렸다.


보스코는 내가 위장을 앓으면서 이런저런 일을 하는 게 불안한지 쉬어가며 하라지만, 내겐 케이크 만드는 일은 일종의 놀이다. 빵기와 빵고가 어렸을 적에는 파이껍질 남은 부분을 주면 조막손으로 쿠키를 곧잘 만들어 함께 구워주었다. 귀여운 아들들이 달려와 옆에서 깔깔거리던 따스한 기억이 되살아난다.


오늘이 24일,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축일이니 작은손주 시우의 영명축일이기도 하다. 축하문자를 보내니 빵기가 시아 시우를 데리고 미사참례중이었다(이 성인은 제네바가톨릭교회의 수호성인이기도 하다). 그래도 내 앞에서 차와 파이를 먹는 보스코의 행복한 얼굴에 두 아들, 두 손주가 고스란히 새겨져 있어 이 추운 겨울도 견딜만하다.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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