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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농사라는 게 시간과 몸이 벌이는 거친 싸움
  • 전순란
  • 등록 2015-04-28 18: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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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4월 26일 일요일, 맑음


개만도 못한 인간이 있는가 하면 인간보다 나은 개들도 간혹 SNS에 나타나서 인간들을 부끄럽게 한다. 떠돌이개들한테 먹이를 주던 할머니가 죽었는데 그 부고를 받지도 아니한 개들이 무려 1300km를 달려와 마지막 가는 길에 인사를 하는가 하면, 불이 난 집에서 데려나오지 못한 갓난아기를 두고 발을 동동거리는 주인 대신 불속으로 들어가 온 몸에 화상을 입으면서 아기를 물고 나오는가 하면, 물속의 물고기에게 자기가 먹는 사료를 물어다 뿌려주는가 하면, 자동차에 치어 죽은 동료를 자기 몸으로 덮고서 짖어대기도 한다. 생각하고 판단하는 영혼(‘이성혼(理性魂)’이라 한다)은 인간에게만 있다는 편향된 신념이 무너지는 조짐이다.


오늘은 집에 돌아와 정자 밑과 텃밭의 개집을 들여다봐도 ‘개미루’가 더 이상 안 보인다. 휴천재에서 4km쯤 떨어진 한남마을 조씨네 개라고 말해 준 사람이 있어 진이엄마가 연락했더니 할머닌 개를 데려오지 말라고, 그 집 딸은 데리러 오겠다고 하더니만 소식이 없다. 나도 어젯밤에 그 집에 전화를 했더니 아들인지 사위인지 남자 목소리가 “이 놈의 개가 붙잡으려면 도망가 버리고 우린 그 개에 정이 없소.”란다. 


보스코만 보면 깡충거리고 쓰다듬기라도 하면 벌렁 드러눕던 ‘개미루’, 채소밭에 들어와 깡충거리기에 “저리 가! 여긴 상추랑 아욱이랑 심었으니 오지 마!” 했더니만 다신 안 오던데 주인한테 몹시 천대를 받았을까? 제발 ‘개~ 파쇼, 개~ 삽니다.’한테 붙들려가거나 넘겨지지 않았으면 하고, 우리 집에 또 오면 먹이라도 줘야겠다.


네 번째 주일은 문정공소 예절이 없고 각자가 본당미사에 가기로 한 날이어서 성심원 미사엘 갔다. 준본당 성심원 주임인 유신부님은 혼신을 다해 정성껏 미사를 올리는 분이어서 어수룩한 강론에도 불구하고 가슴에 은혜로운 기운을 주신다. 미사 후 원장신부님 방에서 환담을 나누고 성심원 어르신들이 쓴 문집 「장단 없이도 우린 광대처럼 춤을 추었다」를 한 권 샀다.(* 글들이 너무 눈물겨워 시 한 편을 아래에 싣는다.)



내 생일날 함께하지 못했다면서 미루씨가 점심을 샀다. 이사야씨가 따로 가서 케이크를 사와서 생일축가를 부르고 촛불을 끄고... 보스코가 “사랑하는 전순란 생일축하합니다”라고 목청을 높이니 지난 13일부터(정작 23일인 생일이 아버지의 무성의로 13일로 호적에 올랐다) 장성 수녀원에서, 함양 휴천재에서, 산청 식당에서, 그리고 안터넷에서, 그러니까 ‘거국적으로’, 아니 로마와 알프스, 동남아와 스위스에서까지 축하를 해주었으니 ‘국제적으로’ 축하를 받은 셈이다. 그 동안 아내의 생일을 잊고 살아왔다고 보스코에게 타박하던 차였지만 앞으로 한 5년간은 생일 타령 안 하고 살아도 될 성싶다.


산청에서 왕산을 넘어 돌아오는 길에 ‘동강마을’에 이 일대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동산을 만든 신선생 댁에 들러 그분이 키워놓은 꽃과 나무와 돌길과 잔디밭의 정성을 돌아보았다. 은둔생활을 즐기며 새벽 5시 먼동이 틀 때부터 일어나 아기를 돌보듯 초목을 돌보며 살아온 집주인에게서는 그 아름다운 초목에서 얻어진 평화로움이 풍겨나온다.



“이 귀하고 예쁜 동산을 누구에게 물려줄 작정이오?”라는 뜬금없는 보스코의 물음에 “아들이 별 관심 없어 그건 생각 안 했고, 내가 사는 동안 이 자연과 함께하는 기쁨이 먼저랍니다.”라는 대답을 들으면서 몇 가지 꽃들을 뿌리 채 얻어들고 그 집을 나왔다. 동강마을에서 구시락재를 넘으며 ‘연이네정원’이라는 들꽃농장 비닐하우스도 들러보고 , ‘십이월, 지리산 산적이 사는 집’을 지나고 운서 미자씨네 ‘바나실’(‘바늘과 실’)도 들렀다. 용식씨는 운서마을 논에다 심었던 블루베리화분들을 옮기는 중인가보다.


진이네도 남호리 블루베리 밭에 방조망을 치고나서 요즘은 밭둘레에 말뚝을 박고 울타리를 막는 고된 일로 탈진해 가면서도 어둑해진 시각에도 아직 집에 안 돌아왔다. 시골살림이라는 게 시간과 몸이 벌이는 거친 싸움이다.


   

“우리들의 무도장(舞蹈場)”


노충진 



반백년 한세월

성심원은 우리들의 무도장(舞蹈場)

쪼그라진 귓불

문들어진 코납작이

비뚤다 흘러내린 입술!

북장단 없이도

건들건들!

우린 함부로 막춤을 추었다

 

반세기 한세상!

성심원은 마당놀이 한마당

퇴락(頹落)된 두발(頭髮)

꺼져버린 안공(眼孔)

낙인찍힌 수지(手指) 오지(五指)

바람결 없이도

흔들흔들!

우린 광대처럼 춤을 추었다....


     일찌기 본 적 없는 간절하고 거룩한 손을 오늘 성심원 미사 중에 나는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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