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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첫 마음으로
  • 최종수 신부
  • 등록 2016-01-18 09:5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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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자주 묵상하는 주제는 첫 마음입니다. 제단 앞에 엎드려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는’ 복음을 살아가겠다고 다짐한 그 복음말씀을 매일 묵상하게 됩니다. 신앙인, 사제가 된다는 것은 하느님의 자녀, 복음선포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나는 지금 교회 제도 안에서 신자들을 관리하는 관리자인가, 이웃과 세상에 복음을 선포하는 선포자인가를 묵상하게 됩니다. 


이웃과 세상에 복음을 선포하기 위해서는 먼저 복음을 살아야 합니다. 복음선포는 입으로,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증거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사제서품 때 선택한 성구는 “주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으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 그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는 삶입니다. 


우리 시대에 정부로부터 버림받은 농민, 정부로부터 죽임을 당하고 있는(농민 백남기) 농민이야말로 우리 시대의 가난한 사람들을 대표하는 사람들입니다. 


가난한 농민과 함께 하는 삶은 분명 복음을 증거하는 삶입니다. 사제는 세상 속에서 신자들과 함께 이 땅의 하늘나라를 위해 기도하고 함께 수고하는 보람된 길입니다.


그 길과는 다른 산골짜기에서 농사를 배우며 은수자처럼 살며 공소 할머니들을 돕는 삶은 결코 쉬운 길이 아니었습니다. 세상에서 멀어진 산골짜기 삶은 인간적으로 많은 사람들 속에서 잊혀져가는 삶이었습니다.


8년 동안 공소 신자들을 위해 한 달에 두 번 미사 드리는 것 밖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쉬는 교우, 환자방문도 할 수 없었습니다. 


4명의 공동체 식구와 새벽미사를 드렸습니다. 복음환호송 “주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으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묶인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라”는 말씀이 선포되었습니다. 


그 순간 8년 동안 산골짜기에 들어와 힘들었던 순간들이 맑은 날 갑자기 쏟아지는 장대비처럼 쏟아졌습니다. 두 눈망울에 차오르는 눈물, 아랫배에 힘을 주고 올라오는 설움을 꾹꾹 아래로 밀며 참았습니다. 


자비는 아버지가 자녀들에게 형이 아우에게, 권력 있는 사람이 약자들에게 부유한 이들이 가난한 이들에게 베푸는 사랑입니다. 


사제생활 20년, 보좌신부와 함께 살고 있는 동기신부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곳 삶은 보좌신부만도 못한 삶일 때가 종종 있습니다. 물론 인간적인 기준으로 그렇습니다. 


산골짜기에서 농사를 배우며 자급자족 공동체를 이루고 공소할머니들을 도우며 살고 싶은 소박한 꿈이 이러저러한 이유로 지연되는 상황이 울컥 눈물을 쏟아내게 했나 봅니다. 


한바탕 소나기가 쏟아지고 나면 산과 들의 세상이 환해지듯 한바탕 눈물을 쏟아내고 나면 새로운 힘과 용기를 주시는 하느님은 찬미와 영광을 받으소서. 


눈물로 바치는 새벽미사가 가난한 농민을 떠나지 않고, 가난한 이들과 함께 사는 은총이 되기를, 제단 앞에 엎드려 드린 첫마음,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는 그 말씀을 증거하며 살아가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지금까지 넘어지기도 하고 다친 상처가 아파 울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다시 걸어갈 수 있도록 간절히 두 손 모으고 격려와 도움과 박수를 보내준 고마운 분들이 떠오릅니다. 고마운 분들과 손잡고 가난한 이들을 위한 길을 열심히 걸어 가겠습니다. 가난한 첫 마음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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