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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새벽은 어디서 동터올 것인가?”
  • 전순란
  • 등록 2016-01-04 14:3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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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월 3일 일요일, 맑음


겨울답지 않게 푹한 날씨다. 사람들은 마음마다 근심걱정으로 꽁꽁 얼고 우리 보스코는 초저녁 한 잠 자고나면 나라 걱정에 밤을 꼬박 새곤 한다. 행여 내 잠마저 깨울세라 서재에서 글을 쓰다 소파에서 새우잠을 자다 가슴의 열불을 끄지 못하면 다시 책상에 앉곤 한다. 오늘 뉴스에서는 보스코가 역사교과서 국정화가 논의되던 첫날부터 주변 사람들에게 토로하던 의심이 현실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현기득권자들의 소원대로 북한이 자동 붕괴할 경우 “누가 북한을 접수하느냐?”는 문제였다. 그런데 일본 관료가 “한국은 그 주권이 휴전선 이남이며 북한이 무너지면 언제라도 일본이 진주할 수 있다!”고 호언하였다! 전작권도 없는 한국군은 미군의 지시 하에 손발을 묶고 지켜보고만 있을 테고, 일본이 이북을 접수하여 제2의 만주국을 세우기로 미국과 일본이 합의해두지 않았을까 하는 의혹이었다. 이에 분개할 한국국민의 민족주의를 아예 뿌리 뽑을 전략으로 현정권이 국사교과서의 국정화를 시도하리라는 추측이었는데....


그래도, 날씨가 풀렸다며 점심 후 머리라도 식힐 겸 마당에 나가더니 보스코가 긴 사다리를 걸치고 정원의 나무 두 그루를 손질하였다. 현관문에 바씩 붙은 구상나무는 말남씨 남편 신선생이 생전에 지리산에서 캐온 것이었는데 그 집 화분 속에서 고생하는 모습을 보다 못해 내가 말남씨한테 얻어다 지금의 자리에 심은 것이다. 훌쩍 커서 이층 테라스를 넘어 자라 오르고 있다.


우리 나라에 최초로 진짜 민간대통령이 된 김대중씨가 당선되던 1997년(그의 아호가 ‘인동忍冬’이어서) 지리산 어느 골짜기에서 내가 캐다 창 앞에 심은 인동초는 외가닥으로 비리비리하다 몇 가닥으로 서로 꼬이면서 자라 오르더니 지금은 테라스 난간을 온통 덮고서 해마다 하이얀 꽃향기를 집안과 동네에 풍긴다. 너무 덥수룩한 모양새를 보다 못해 오늘 드디어 보스코가 크게 가위질을 하였다. 언제나 다시 민족과 민주와 민중의 이름으로 저런 행기로운 꽃을 우리 국민이 피울까 하는 염원으로....




오늘이 ‘주의 공현 대축일.’ 사랑하는 친구 인천의 체칠리아가 자기 첫손주가 세례를 받는다는 소식을 전해 왔다. 성하지 못한 몸이지만 누구보다 아름다운 마음으로 외롭게 살아온 그니에게 아들을 통해, 아들의 아들을 통해 내릴 주님의 위안을 빈다. (내게 건넨 그니의 글 참조: (http://donbosco.pe.kr/xe1/?mid=junwriter&document_srl=5298)


오후에 엄엘리사벳이 새해 인사차 찾아왔다. 대전 성심당에서 만들었다는 ‘파네토네’를 얻었다면서 이탈리아 빵이니 우리더러 맛보라는 정성과 함께. 어디 빵뿐이랴. 우리 둘은 서로의 기쁨과 서로의 슬픔을 알아보는 마음의 눈이 있어 우이천 옆길을 함께 걸으면서 서로 다독이고 쓰다듬으면서 긴 얘기를 나누었다. (험난한 시국을 맞아 남정들이 민족사를 앞장서고 ‘두만강 푸른 물’을 건너면 우리 여인네는 기다리는 것 외에 무엇을 할 수 있으랴?)




하지만 보스코가 남산지하실을 나오던 날 밤에 울리던 한 방의 총성이 유신을 끝장내던 사건을 나는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나의 구원자께서 살아 계심을 보리라. 내 살갗이 이토록 벗겨진 뒤에라도 이 내 눈으로 나는 보리라.”(욥기 19, 25-27) 우이천에 흐르는 피라미와 송사리떼... 그 물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철없는 고기들이 가까이 오기를 긴긴 시간 기다리는 해오라기의 끈기를 지켜본다.


엘리사벳과 함께 저녁을 들고나서 침낭도 배앗긴 채로 일본 대사관 앞에서 소녀상을 지키고 있다는 그니의 딸, 혼자서 돌아가 불 꺼진 창에서 외로울 그니, 한겨울 독방에서 착잡한 정국을 지켜보며 민족사의 십자가를 지고 가는 그니의 남편을 어둠 속으로 배웅하였다. 새해 벽두부터 눈을 두리번거려야 하는 우리: “우리의 새벽은 어디서 동터올 것인가?”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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