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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레시오 '모대감' 신부님의 서품 60주년
  • 전순란
  • 등록 2015-12-10 09:53:38
  • 수정 2015-12-17 10:4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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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2월 8일 화요일, 맑음


여섯 명의 준수한 젊은이들이 살레시오 수도회 문을 두드렸다. ‘성모의 원죄 없으신 잉태’ 대축일에 그분의 치마폭으로 와서 안겼다. 살면서 힘들거나 어려울 때마다 그분이 닦아주시는 눈물이 힘이 되어, 가난하고 힘든 청소년들의 피난처가 되는 듬직한 어버이가 되어 가려니....


오늘이 더 큰 의미를 갖는 것은 보스코가 중딩 2학년 때부터 살레시오학교 기숙사에서 라틴어를 배운 모신부님(Jesus Molero)의 사제서품 60주년(그리고 첫 허원 70주년) 미사가 서울 대림동 수도원에서 거행되기 때문이다. 오늘 입회한 저 젊은이들이 70년 후면 어떤 모습이 되어 있을까를 보여주는 자리이기도 하다.


보스코가 중딩 1학년 때 혼자서 어머니의 임종을 지키고 장례를 마치고 기숙사로 돌아오자 모신부님이 학교마당에서 그를 따로 불러 타이르시더란다. “오늘부터 성모님이 네 엄마시다. 늘 그이께 매달려라.” 그 말씀을 60년이 지난 지금도 보스코가 기억하는 까닭은, 보스코는 실제로 그렇게 했고 성모님이 그의 기도를 안 들어주신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란다! 언제나 성모님의 치마폭에 싸여 살아왔음을 절감하는 보스코다, 지금까지도!






모신부님의 라틴어 수업은 얼마나 스파르타식이었는지(살레시오학교와 기숙사에서 학생감을 오래 하신 신부님에게는 '모대감'이라는 별명이 붙여졌단다)  보스코가 80년대에 로마로 유학을 가서 교황립 살레시안대학교 라틴어문학부에서 40대 중반의 나이로 ‘동양인 최초’로 라틴문학박사(1986년: 한국인 2호 라틴어 박사는 금년 2015년에 나왔다!)를 받은 실력도 순전히 중딩 시절의 무시무시한 모신부님 라틴어수업 덕분이었다고 실토한다. 당신 제자 보스코에 대한 모신부님의 사랑은 자별하였고, 보스코의 주선으로 3년전(85세)까지도 신부님은 서강대 교양학부에서 라틴어를 가르치셨다(아마도 서강대 역사상 최고령 강사)!


서울 가느라 나는 아침부터 뛰어야 했다. 심순화 선생님이 금년 성탄카드 쓰라고 보내주신 택배를 받으러 마천우체국에 다녀와야 했다. 심화백의 카드는 한국적이고 당신의 이미지와 너무도 흡사한 아기예수와 아기천사들은 특히 외국으로 보내는 카드로 잘 맞는다.


오늘 동치미를 담그겠다고 절여둔 무가 만일 서울 갔다 열흘 후 온다면 짠지가 되겠기에 오전 내내 서둘러 담갔다. 서말 들이 항아리를 들어다 씻고, 독에다 갓과 쪽파를 넣고, 그 위에 무를 얹고, 망자루에 마늘 생강 배와 사과를 담아 얹고, 마지막으로 뒤꼍의 시누대 잎을 따서 누질은 다음 죽염으로 간을 맞추어 물을 붓고 청량고추 삭인 것을 얹어 독뚜껑을 닫았다.



1시에 휴천재를 떠나 4시간 30분을 달려 영등포 대림동에 도착하니 저녁식사시간. 경리인 황수사님이 국그릇에 일일이 삶은 고기를 알맞게 분배하시는 품이 신부님 수사님들의 식사가 영락없이 초딩들의 급식시간이다. 살레시오 분위기가 낯선 지원자들은 제각기 부지런히 더듬이를 작동시고 있겠지만 이 수도자들의 밥상은 늘 농담과 폭소가 불꽃놀이처럼 터지는 자리다.



미사시간 내내 억지로 근엄한 표정을 지어보이시는 백분도 수사님(내 일기 2011.12.18일자, 2013.6.19일자 참조)의 눈길을 받으면서 80여명의 아이들(비행으로 소년원에 가야 하는데 6개월의 유예로 소위 ‘보호감호’를 받는 아이들이다)이 목에 핏대까지 세우며 “사랑해요! 축복해요!”라면서 성당이 떠나가게 성가를 ‘외치는’ 미사! 드럼을 치고 기타를 치는 반주자들도 소위 ‘비행소년’들! 불우한 가정에서 태어나 무책임한 부모 밑에서 방황하는 저 아이들의 간절한 소망이 “사랑받고 싶어요! 축복받고 싶어요!”라는 외침같이 들려 눈물이 핑 돌았다. 미사 온 어른들, 살레시안들을 돕는 협력자들과 자원봉사자들도 눈시울을 붉히고 있었다.


“젊다는 이유만으로도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는 돈보스코 성인의 신념에 따라서, 사랑받을 권리를 인정받아 실제로 사랑받고 있음을 저 아이들이 실감하게 해 주는 살레시안들! 그들과 함께 사는 이 집이 저 아이들에게는 바로 천국이다.





미사 후 축하식, 축하 파티, 그리고 살레시안 장상들과 담소를 나누다 우이동 집에 오니 밤 12시! 우리 집사 엽이가 깨어 기다리다 소나타 트렁크와 뒷좌석에 가득 실린 짐을 내려준다.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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