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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이익성] 사람의 머리를 겨누는 짓
  • 이익성
  • 등록 2015-12-02 10:18:22
  • 수정 2015-12-02 14: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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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 14일 경찰이 민중총궐기 참가자들에게 물대포를 발사하고 있다. ⓒ 일산 이영문 리포터


저는 사람의 머리를 다치게 하는 모든 행위에 대해 반대합니다. 사람의 뇌는 단단한 뼈에 둘러싸여 있지만, 1.4kg 밖에 안 되는 가볍고, 무른 장기일 뿐입니다. 하지만 그 연약한 장기가 사람의 모든 운동과 사고를 관장합니다. 뇌는 연약하지만 소중한 장기입니다. 


신경과 레지던트 일 년차 시절 저에겐 여러 고민이 있었습니다. 잠을 좀 더 자고 싶은 원초적인 고민도 있었지만, ‘기관 내 삽관’이라는 술기를 더 잘 하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환자의 의식이 안 좋아져서 의학적으로 필요한 순간이 되면 산소공급이나 기도 분비물 제거를 위해 기도에 튜브를 삽입합니다. 


이 튜브를 환자의 기관지에 넣는 시술을 ‘기관 내 삽관’이라고 합니다. 자발 호흡이 있는 환자에게는 이 튜브를 통해 산소를 흘려보내주고, 자발호흡마저 없으면 인공호흡기를 연결해서 숨을 불어넣어줘야 합니다. 부끄럽지만, 저는 일 년차 중반이 지나도록 이 술기에 서툴러 선배에게 도움을 받거나 다른 과 선생님들께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사교육을 받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기관 내 삽관’을 전문적으로 가르쳐 주는 연수강좌에 가서 착실히 배워보기로 했습니다. 당시 매번 제 뒤를 봐 주던 선배는 ‘쉬는 날 돈까지 내고 술기를 배우러 갈 필요가 뭐가 있느냐’라고 얘기했지만, 그 선배는 교과서만 봐도 수석을 하는 사람이라면 저는 사교육도 필요한 사람이었을 뿐 입니다. 


제가 갔던 연수강좌는 꽤 비싼 수강료를 내야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최신 응급기도관리’라는 책을 사은품으로 주었습니다. 그 책의 서문엔 ‘위대한 지성이 있게 한 뇌를 보호하기 위해 최전선에서 분투중인 의료진을 응원한다’라는 취지의 글이 써져 있었습니다. 저는 이 서문을 읽고 감동받았습니다. 기도를 유지하는 장치를 개발하고 책도 쓰고 강의를 하는 사람들이 있는 이유도, 제가 비싼 돈을 내고 쉬는 날 잠을 자지 않고 연수강좌를 듣는 이유도 따지고 보면 같았기 때문입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뇌손상은 막아야 한다


뇌라는 장기를 굳이 차에 비유하자면 F1레이스에 출전하는 슈퍼카라고 생각합니다. 이 슈퍼카는 어마어마한 연료를 잡아먹고, 내구성보다는 속도에 최적화 되어있고 고장 나면 고치기 어렵습니다. 뇌도 기나긴 진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내구성은 버리고 빠른 속도에만 최적화되었습니다. 뇌의 무게는 몸무게의 약 3%에 지나지 않지만, 우리 몸에서 소비하는 산소의 20%를 소비합니다. 산소공급이 5분만 중단되어도 뇌세포는 죽기 시작합니다. 


게다가 뇌세포는 한 번 손상되면 고치기 어렵습니다. 이런 비효율적이고 연약한 신체기관을 다치지 않게 하기위해 의사들은 여러 노력을 해 왔습니다. 응급의료 최전선에 있는 의사들은 뇌로 가는 산소공급이 끊기지 않는 방법을 연구하는 응급기도관리 라는 분야를 지속적으로 발전시켰습니다.


2015년 11월 14일, 한 형제가 물대포에 맞아 쓰러졌습니다. 쓰러지면서 머리를 다쳤고, 뇌수술을 받았습니다. 지금은 생사의 기로에 있다고 합니다. 절망스러운 얘기지만 저는 당시 상황을 기록한 동영상을 보고 신경과의사로서 가슴이 많이 아팠습니다. 수술 직후 언론을 통해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 등의 이야기가 흘러나왔지만, 신경과의사인 제가 보기엔 신경학적으로는 지장이 있을 것 같아 보였습니다. 외상으로 뇌를 다쳤고, 응급수술을 받았습니다. 


정확히 어느 부위인지는 모르지만 다친 뇌로 인해 후유증이 남 수 있습니다. 기적적으로 회복되더라도 먼 곳에 살고 있는 사랑하는 딸과 전화통화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언어장애가 남거나, 자신의 몸처럼 아끼고 돌보았던 논과 밭을 다시는 둘러볼 수 없을 정도로 반신마비가 생길수도 있습니다. 뇌를 다쳤기 때문에 이전의 평범한 일상을 잃어버릴지도 모릅니다.


제가 하고 싶은 건 의학적인 이야기입니다


사람의 머리를 겨누지 말아주십시오. 사람의 머리가 다칠 수도 있는 어떤 행동도 하지 말아 주십시오. 카메라 화질이 안 좋아서 그랬을 수도, 조작이 서툴렀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센 수압의 물대포를 맞은 사람들이 픽픽 쓰러지는 것을 보았다면 저러다가 ‘누구 한 명은 머리를 다칠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은 신경과 전문의가 아니더라도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뇌를 다치면 어떤 후유증이 남을지 모릅니다. 그 사람의 소중한 일상을 다시는 되돌릴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사람의 머리를 겨누는 짓을 그만 하십시오. 그리고 책임 있는 나랏님은 사과하십시오. 생명은 지장이 없을지 모르지만 뇌에는 지장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의 삶에 지장이 생겼습니다. 백남기 임마누엘 형제님과 그 가족에게 사과하십시오.



[필진정보]
이익성 : 신경과 전문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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