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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이리 행복한가
  • 최종수 신부
  • 등록 2015-11-09 10:48:10
  • 수정 2015-11-10 10:2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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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민이 있어 농민과 함께 사는,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제 최종수 신부


추수감사 기쁘고, 억수로 행복한 날이다. 어미가 새끼를 낳아 그 울음소리에 모든 산모의 고통을 잃어버리고 기뻐하듯 그렇게 기쁜 날이다. 농민이 고통의 씨를 뿌리고 가꾸고 열매를 맺을 때까지 그 많은 고통을 잃어버리고 기뻐하는 날이다.


전동성당 추수감사 미사 봉헌하는 날, 아침부터 설레는 마음을 다독이듯 단비가 내린다. 6인승 트럭에 공소 할머니 할아버지를 태우고 전동성당으로 갔다. 마당의 행사천막에 농민회와 도시생공 우리농 회원들이 먹거리와 나눔 농산물 장터 준비에 손발이 바쁘다. 


한 해 추수가 있기까지 햇살과 비와 바람으로 축복해 주신 하느님께 감사미사를 드렸다. 농민회원 신앙고백에서 자신의 어린 시절부터의 모난 성격에서 사업실패와 성당 여러 봉사활동을 통해 변화된 삶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가슴 따뜻한 큰 감동이었다. 공개적인 자리에서 자신의 과오나 잘못을 고백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한 해 감사의 마음을 담아 햅쌀로 빚은 인절미 떡매치기로 한마당 잔치의 성대한 시작을 알렸다. 식사를 마치자 형님처럼 존경하는 형제님이 옆자리로 다가왔다. "신부님 오늘 복음이 가난한 과부의 헌금 이야기인데, 오늘 복음의 가난한 과부가 농민입니다. 농민이 우리 시대의 가난한 과부입니다" 가난한 과부, 농민의 이야기에 그만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더 큰 기쁨을 나누기 위해 막걸리병을 들고 수고하는 우리농 회원들에게 막걸리를 따라 주면 아우 신부는 수육에 김치를 싸서 한 입 가득 넣어 주었다. 어찌 이리 행복한가. 


판매물 부스에서 토마토를 팔고 있는 형님을 다시 만났다. 담배를 피러 나가는 형님을 따라 나갔다. 이슬비가 머리에 초롱초롱 맺혔다. 농촌을 사랑하는 형님의 머리카락에 맺힌 이슬이 이토록 아름답게 느껴지기는 처음이다. 


"신부님 왜 그리 힘든 농사를 지시며 고생하십니까. 그 누구보다 본당사목하면 행복하실 텐데. 왜 우리 시대의 가난한 과부인 농민이 되어 생고생하십니까. 정부도 버린 농민, 그래서 더욱더 가난한 과부가 된 농부들 아닙니까." 


"형님 저도 본당사목 행복한 줄 알죠. 근데 저는 가난한 과부로 사는 농민들 곁에서 죽는 날까지 살고 싶은데. 가난한 과부 농민의 삶만 생각하면 이렇게 눈물이 쏟아지는데 어떻게 농민을 떠나겠어요." 


"신부님 또 눈물 흘리시네요. 아까도 가난한 과부 농민 이야기하면서 우시더니 또 우세요. 근데 신부님 눈물이 이슬보다 더 아름답네요. 이슬비 맞으며 이슬비 눈물 훔치시는 신부님 파이팅!" 


"지랄 병주고 약주고 혼자 다 헜쇼." 


"안 되겠어요. 폭포수 눈물 되기 전에 술자리로 돌아가야겠어요." 서로 뜨거운 포옹을 하고 행사장으로 돌아왔다. 


풍악을 준비하는 농악대에게 막걸리 한 잔씩 따라 주었다. "신부님 머리에 미친 년 빨간 열매가 꽂혔네요?" "하하하!" 한바탕 신나게 웃었다. 풍악을 울리는 장단에 서로 손을 잡고 신명나게 어울린 한판 춤에 일 년의 수고와 고통이 말끔히 사라졌다. 꽹과리, 장구 장단에 손잡고 어깨를 들썩이며 더덩실 추는 춤만큼 행복한 춤이 있을까?


행복한 추수감사의 날이다. 우리 시대 가난한 과부인 농민의 현실에 두 번 울었으니 그 만큼 더 행복했다. 진주보다 값진 눈물을 나누었으니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다. 농민이 있어 농민과 함께 사는,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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