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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천왜성 성역화, 임진왜란이 하느님 손길인가 - 마산교구 성지 개발 논란
  • 최진
  • xlogos21@catholicpress.kr
  • 기사등록 2015-11-04 15:49:23
  • 수정 2015-11-04 15:4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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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십자가가 그려진 군기를 사용하는 왜군


마산교구는 지난달 31일 경남 창원 웅천왜성에서 교구설정 50주년을 맞아 산상 미사를 봉헌했다. 산상 미사에서 주례 사제는 임진왜란 당시 선교사로 활동한 세스페데스 신부가 하느님의 손길을 전했다고 밝히며, 왜성 축조에 희생된 조선인의 영혼을 함께 위로했다.


웅천왜성은 해발 184m 진해 남산에 위치해있으며 임진왜란 당시 축조된 왜성 중에서 울산 서생포왜성 다음 규모이다. 웅천왜성은 육로와 해로의 접근이 용이한 지리적 이점 때문에 임진왜란 당시 왜군은 조선인을 동원해 성을 짓고 제2거점으로 삼았다. 


임진왜란 당시 왜군의 선봉장으로 우리나라를 침략했던 고니시 유키나가와 그를 따르던 왜군 천주교인들은 1593년 자신들의 종교 활동을 위해 예수회 선교사인 그레고리오 데 세스페데스 신부를 진해로 데려왔다. 세스페데스 신부는 1595년 6월까지 웅천왜성에서 왜군 천주교인들을 위한 미사와 고해성사 등의 사목 활동을 했다.


마산교구 배기현 신부는 전란 속에서도 하느님의 손길이 조선에 깃들었다며, 세스페데스 신부가 조선 복음화를 염원했다고 밝혔다. 또한 웅천왜성을 축조하며 희생된 조선인들의 희생을 함께 위로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러한 마산교구의 행보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작지 않다. 민족적인 대 학살로 기록되는 임진왜란의 잔혹함을 묻어두고, 천주교 선교사의 활동 사실만을 가지고 하느님의 손길이 함께 했다고 말하는 것은 왜곡된 역사관이라는 주장이다. 


임진왜란 당시 유성룡이 기록한 징비록에는 경상도 지역 왜구들의 강간이 극심해, 조선의 순수한 혈통이 끊겼다고 남기고 있으며, 웅천왜성을 축조하기 위해 동원된 조선인들은 굶주림 때문에 인육을 먹었다는 내용도 전하고 있다.


또한 왜군이 자신의 전공을 증명하기 위해 조선인의 귀와 코를 잘라 소금에 절여 본국으로 보냈으며, 현재에도 일본 교토시 도요쿠니 신사 귀무덤(미미즈카)에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희생된 조선인과 명나라 군인 12만 6,000여명의 귀와 코가 묻혀 있다. 


마산교구 웅천왜성 성역화를 반대하는 이들은 세스페데스 신부가 역사상 최초로 조선 땅을 밟은 선교사일 수는 있겠지만, 조선의 선교를 위한 것이 아니라 왜군 병사의 종교생활을 위해 왔던 만큼, 한국천주교에서 이것을 기념한다는 것은 임진왜란 당시 참혹하게 귀와 코가 베여 죽은 조상들과 웅천왜성을 축조 하다가 죽어간 조상들을 기만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들은 마산교구가 기본적인 역사적 인식이 부재한 채, ‘종교 부동산 사업’으로 불리는 천주교 성지 사업화를 진행하는 것은 옳지 않으며, 웅천왜성을 쌓기 위해 동원된 조선인 포로들의 희생을 위로하는 올바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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