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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 시민들이 이재명 시장을 뽑아놓은 이유
  • 전순란
  • 등록 2015-11-03 16:0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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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 2일 월요일, 흐림


11월, 천주교에서 ‘죽은 이들을 사랑하는 계절’이고, 오늘은 모든 고인(故人)들을 생각하는 ‘위령의 날’이다. 주변에서는 먼저 떠났지만 마음에서는 늘 살아있는 이들을 생각한다. 누구를 사랑한다는 것은, “너는 죽지 않아. 영원히 내게서 사라지지 않아.”라고 다짐하는 고백임을 다시 생각하라는 날이기도 하다. 눈앞에서 사라지면 마음에서 지워지는 게 인심이기 때문이리라.


서양은 동구밖에 묘지가 있어 사람들이 늘 드나들며 꽃을 꽂고 등불을 밝혀 쓸쓸하지 않다


못 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그런대로 한세상 지내시구려,

사노라면 잊힐 날 있으리다.

 

못 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그런대로 세월만 가라시구려,

못 잊어도 더러는 잊히오리다.

 

그러나 또한긋 이렇지요,

그리워 살뜰히 못 잊는데,

어쩌면 생각이 떠지나요?



서울집에 사람 기척이 나면 으레 참새떼가 몰려와 밥상차리길 기다린다


김소월의 ‘못잊어’가 새록새록 좋은 것은 떠나는 사람이 “잊으라!” 해도, (‘마지막 선물, 잊어주리라!’는 유행가처럼) 본인이 “잊어버리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해도 마음의 한 자락에 꼭꼭 숨겨져 있는 게 사랑하던 사람이다. “그리워 살뜰히 못 잊는” 사람들을 위해서 보스코랑 ‘아침기도’를 올린다.


오후에 장상무를 만나러 성남에 가는 길에 엄엘리사벳씨를 잠간 보기로 했다. 오늘 만난 길에 그니는 어느 약품 공급 업체에서 일하는 친구 순미씨를 소개해 주었다. 약품을 대량으로 공급하다 보면 그것을 정말 필요로 하는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는 좋은 마음이 생길 게다. 빵기에게 소개했더니 자기 기관 전문부서 담당자와 직접 연결해주었다. 그 업체는 약품을 받는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생각해서, 주는 사람의 좋은 의도가 전달되는 좋은 제품만 전달한단다.


장상무와의 약속이 조금 늦어져 성남의 여성단체 중의 하나인 ‘성남여성회’를 엘리사벳 소개로 찾아보았다. 분당에는 ‘성남여성회’ 외에도 ‘분당여성회’, ‘성남 함께하는 주부모임’ 등이 있단다. 신옥희 대표는 무려 8년간 그곳에서 일했으며 되살림가게 ‘웃는 나무’와 ‘물푸레작은도서관’을 이끌고 있었다. 독일의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많은 이유가 동네마다 작은 도서관이 있어 어린이들이 책을 사랑하고 가까이하며 문학에 눈뜨게 만드는 까닭이란다.




그래서 ‘생협’을 꾸려가는 엘리사벳도 작은 도서관을 열었고, 동네마다 작은 도서관을 만드는 일에 동참하는 작은 단체가 여럿 있었다. 그니가 22년전 28세의 나이로 여성의 전화에서 한글교실을 만들어 눈 뜬 장님들의 흰 지팡이가 되고 어린이들의 손을 잡아 올바를 세계로 인도하는 동행을 여태까지 계속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우리 동네 함양 ‘빈둥’에서도 좋은 모형을 삼을 만하겠다.




분당이나 판교에 비해서 소외되고 낙후된 도시 성남, 가난하기에 타인들에게 관심을기울이는 동네, 흙에 가까운 곳에서 싹이 나오듯, 바른 길로 지역사회를 끌어가는 이런 시민들이 있어 지금의 이재명 시장을 만들어냈다고 생각한다. 시민이 주인이 되는 도시의 자랑이리라.


8시가 되어 장상무와 빵기를 만나 국밥집에 가서 식사를 하며 지난번 결혼한 윤희가 아이를 가져 장상무도 머지않아 할머니가 된다는 기쁜 소식도 듣고, 춘천에서 사람 사는 가족사와 성남에서 사람 사는 사회 활동을 소설처럼 풀어나가는 그니의 재담이 갓 튀겨낸 꽈배기같이 맛있어, 두어 시간 웃다가 10시가 되어 빵기랑 밤길을 달려 집으로 왔다. 좋은 친구가 있어 천리 길도 한걸음에 달려갈 수가 있느니 인생의 풍요로움을 만드는 건 역시 사람이다.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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