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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종환 시인 인터뷰 : 피지 않는 꽃이 있으랴
  • 김근수 편집장
  • 등록 2015-10-29 17:36:36
  • 수정 2015-10-29 18: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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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근수 편집장) 안녕하십니까. 이렇게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선 시국에 관한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지금 정부가 무리하게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왜 국정화 추진을 하는 것인지요?


▶ (시인 도종환) 국정교과서는 국가가 저작권을 갖는 교과서에요. 필자가 저작권을 갖고 책을 만들어내는 것은 자유발행제 교과서구요. OECD 국가 34개 중 17개 국가가 자유발행제인데, 그런 경우엔 필자에게 저작권이 있어요. 검정교과서도 국가가 정해준 집필 기준 내에서, 필자들이 책을 만들고 검정을 통과한 후 수정을 거쳐서 확정되지요. 하지만 국정교과서는 교육부에 저작권이 있어서 필자들이 쓴 내용을 그대로 싣지 않고 마음대로 수정해도 위법이 아니에요. 그러니까 마음대로 수정해서 내는 책이 국정이라고 할 수 있지요.


- 그러니까 다시 말해서 국정교과서는 국가 검열 교과서라고 할 수 있겠군요?


▶ 전체주의 국가나 사회주의 국가에서 국정교과서를 채택하죠.


- 지금 전 세계적으로 볼 때 국정교과서로 역사를 쓰는 나라가 몇 개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북한, 베트남, 몽골 같은 사회주의 국가에서 씁니다. OECD 국가 중에는 터키처럼 이슬람권 국가들이 종교적인 이유로 국정화하는 경우가 있죠. 아이슬란드처럼 전체 국민수가 32만 명밖에 안 되는 작은 나라는 고등학교 수가 몇 개 안 되니까, 국가에서 하나의 교과서로 제공합니다. 그리스도 국정인데 우리나라처럼 국가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출판사들이 만든 여러 교과서 중에서 하나를 채택해서 씁니다. 


베트남은 기존의 국정교과서를 쓰다가 UN에서 권고를 받고 올해 4월 20일에 검정으로 전환하기로 발표했어요. 그래서 2018년, 2019년에는 학교에 검정 교과서를 보급하기로 했습니다. 교과서 발행제는 국정에서 검정, 검정에서 자유발행제로 가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입니다. 우리나라는 유신 이전에도 검정 교과서였어요. 유신 때만 국정을 하다가 검정으로 다시 돌아 온거죠. 만일 이번에 국정이 확정된다면 검정을 하다가 다시 국정으로 돌아가는 유일한 나라가 될 겁니다. 


국가가 저작권을 갖는 것은 전체주의 사회에서나 하는 일이기 때문에, 국가가 마음대로 수정할 수 있는 교과서 제도로 간다는 것은 후진적인 선택입니다. 또 역사의 퇴행이죠. 나치 독일이나 일본 군국주의 시절에 쓰던 것이 국정교과서에요. 문명사적으로나 학문의 민주주의, 어떤 측면으로 봐도 퇴행이기 때문에 국정교과서를 반대합니다. 


- 네 그렇군요. ‘예수의 역사를 쓴 복음서도 한 권이 아니라 네 권이다’라는 말이 있지요. 이제 선생님 개인에 대해 몇 가지 여쭙고 싶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정치는 사랑의 최고 형태’라는 말을 하셨지요. 선생님께서는 왜 정치에 입문하셨는지 직접 듣고 싶습니다. 


▶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교황이 되신 것은 ‘위기가 프란치스코 교황을 선택한 것이다’라는 말을 있었잖아요. 위기가 저를 정치로 불렀다고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내가 정치로 불려온 이유가 있을 텐데 그것이 무엇일까. 하느님은 왜 나를 여기서 일하게 하셨을까’ 그 이유가 잘 보이지 않았어요. 정치에 입문하고 얼마 후에 교학사 교과서 파동이 있었습니다. 그때 ‘아! 친일을 미화하는 교과서를 막으라고 날 부르셨구나’ 했어요. 작년 세월호 참사가 벌어졌을 땐 이것 때문에 부르셨구나 했는데, 올해 국정화 문제가 생기니까 저를 불러다 쓰시는 일을 조금이나마 알 것 같습니다. 


- 많은 일들이 있었군요. 하느님께서 선생님을 이렇게 쓰시려고 미리 부르신 모양입니다. 


▶ 정말 처음에는 몰랐습니다. 분명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제가 겪는 모든 일에는 이유와 계획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를 자리에서 물러나게 할 때도, 저를 병이 나서 쓰러지게 하고 산 속에 5~6년씩 데려놓는다고 해도 분명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번에도 그렇죠. 국회의원 비례대표 후보자 심의가 다 끝난 뒤, 발표 직전에 비례대표 심의위원들이 법조인은 너무 많은데 문화예술인‧교육자는 없으니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으로 바꾸자는 제안을 한 거에요. 다시 투표를 하고 당 위원회에서 저를 불러들였는데, 준비 없이 들어 온 것이라서 걱정을 했어요. 그런데 일을 하다 보니 저를 여기로 부르신 이유를 알겠더라구요. 정치를 하는 동안 이것을 ‘인생의 십일조를 바치는 것’이라는 마음으로 임하려고 합니다.  


- 준비 없이 들어오게 되셨다고는 했지만 선생님께서는 정치에 입문하신 후에 세상을 보는 눈이나 인생을 보는 눈에 어떠한 변화가 있으셨습니까? 


▶ 전에는 정치를 볼 때 야당 정치인들이 하는 일을 정부를 견제, 감시, 비판하는 정도라고 소박하게 생각했죠. 그런데 막상 들어와서 보니 우리가 이 나라의 중요한 일의 결정 주체이고 책임 주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됐습니다. 견제나 감시, 비판만 하는 게 아니라 우리 자신이 법과 예산과 정책의 결정 주체이고 책임 주체인 것이죠. 일하면서 우리도 책임자가 될 사람이란 것을 깨닫게 됐어요. 밖에서 관전평 하는 식으로 정치, 국가운영을 바라보았었는데 이제는 관전평으로 끝나지 않고 행동으로 책임지고 또 어떤 일의 현상에 대해 분노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일의 본질을 꿰뚫어보고 판단하고 책임져야겠단 생각을 하게됐습니다.


- 구약성서에서 예언자들이 한 일은 요즘으로 치자면 정치 비판입니다. 만일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성직자가 되지 않았다면 정치인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정치를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분 같아요.  

  

▶ 교황님 말씀으로 최고의 위안을 받았어요. ‘주어진 권한을 어떻게 선하게 쓸 것인가’를 늘 고민했어요. 교황님이 ‘공동선을 추구하는 사랑의 행위’라는 것을 잊지 말라고 당부하시는 것을 보고 내가 하는 일이 사랑의 행위라는 것을 다른 사람은 몰라도 교황님은 믿어주실 거라고 생각하면 힘이 납니다. 또 교황님이 ‘정치에 관심을 갖는 것이 하느님 나라를 만드는 일이다’라고 말씀해주셨어요. 교황님의 이런 말씀을 기억하고 듣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 교황님 말씀을 새겨두고 계시는군요. 선생님께서는 정치에 입문하시고 신앙적으로 성숙했다거나 변화했다는 느낌을 받으십니까?


▶ 국회 들어오기 전에는 몸이 아파서 산 속에서 외롭지만 고요하게 지냈어요. 그때는 하루에 한 시간씩 매일 기도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시간에 쫓겨서 기도를 잘 못해요. 기도를 제대로 하지 못하니 마음이 흐트러지는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 선생님께서는 대중들에게 ‘접시꽃당신’같은 서정시인으로 많이 알려져 있는데 사실은 ‘투사’로 살아오시지 않았습니까?


▶ 전교조 일을 할 때도 약은 사람들은 다 빠져나가요. 약지 못해서 먼저 도망가지 못하고 끝까지 남아있으면 결국 맨 앞에 서 있는 꼴이 되죠. 비겁할 수 없어서 가만히 앉아있다 보면 가장 높은 자리에 앉아있는 꼴이 되고요. 강하고 리더십 있는 사람이 맨 앞에 있으면 좋겠지만 저처럼 약하고 여린 사람이 떠밀려서 맨 앞에 서는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남들은 투사, 강하다, 라고 말하지만 제가 제 자신을 볼 때는 그런 모습이 아니죠. 저 같은 사람도 무슨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기였던 것이고, ‘이것이 내가 지어야 할 십자가라면 할 수 없이 십자가를 지어야 하지 않나’하는 생각이었을 뿐이죠. 투사는 아니었습니다. 


- 마음이 약하고 여리고 그러나 약속을 저버리지 못해서 십자가에 매달리신, 대표적인 분이 예수님 같습니다. 선생님께서는 그동안 여러 시집을 펴내셨는데 선생님 시집에 대해 어떻게 소개하고 싶으신지요? 


▶ 제가 쓴 시 중에는 희망을 이야기하는 시들이 제일 많아요. 절망뿐인 시대를 살았기 때문에 끝없이 희망을 이야기해야 했어요. 사랑에 관한 시도 참 많은데요. 늘 한 사람, 한 시대를, 이웃을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에 대한 생각과 개인에 대한 이성적인 사랑을 넘어서는 사랑에 대한 갈망이 많았어요. 사랑이 없는 사막 같은 삶을 살다보니 사랑을 갈구하고, 절망뿐인 시대를 살다보니 희망을 이야기했어요. 국회 들어와서 쓴 시를 시집으로 내려고 훑어보니 역시 그렇습니다.


- 특히 오늘날 젊은이들이 취업난과 어지러운 사회 분위기로 많이 절망하고 있습니다. 우리 젊은이들에게 희망과 위로의 말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 졸업하고 바로 취직해서 안정된 삶을 시작하는 친구도 있지만 직장도 제대로 잡지 못하고 미래가 암울해서 절망하는 젊은이들이 많아요. 요즘 이 나라를 ‘헬조선’이라고 부를 정도로요. 이런 나라를 만든 것에 대해서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정치를 잘했으면 이런 나라가 아니었을텐데 말이죠. 지역 운동, 사회 운동, 문학 운동을 하면서 함께 좋은 세상을 만들려고 애쓰면 나중에는 좋은 세상을 만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그런 세상을 만들지 못하고 지금도 똑같은 상황이 반복되는 것 같아서 가슴 아픕니다. 


노래 ‘그날이 오면’을 많이 불렀어요. 그날이 오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 아버지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세상이 올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날이 안 오는 것은 아닌가하는 절망이 들 때도 있어요. 예수님이 계시던 때도 그날을 만들지 못했고, 어쩌면 그날은 우리가 끝까지 찾아가고 추구하는 날이 아닐까. 그날이라는 것은 우리가 향하는 끝없는 과정이고 최선을 다해 그날을 향해 성실하게 가야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젊은이들이 느끼는 절망은 우리가 느끼는 절망보다 더 클 것이라고 봅니다. 젊은이들에게 ‘봄에 피는 꽃도 있고 가을에 피는 꽃도 있다. 우리가 언제 필지 모르지만 꼭 꽃 필 것이라는 믿음을 버리지 말아라. 늦게 펴도 꽃은 예쁘다. 꽃 피는 시기보다도 아름답게 살다가 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을 자주 해요. ‘지금 내가 이렇게 어려운 것에는 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이유를 찾기 위해 애쓰고 자신을 믿고 하느님이 날 사랑하신다는 믿음을 저버리지 말라’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 오늘 말씀 중에 선생님께서 시의 주제를 사랑과 희망으로 많이 쓰셨다고 했는데 드디어 믿음까지 나왔으니, 바오로 사도의 믿음, 희망, 사랑이 다 나왔습니다. (웃음) 선생님께 예수님은 어떤 모습으로 보이는지, 예수님을 어떤 분으로 생각하시는지 여쭙고 싶습니다.


▶ 제 운명의 주관자라는 생각을 해요. 시를 한 편 쓰면 제가 썼다고 생각하지 않고 하느님이 주셨다고 생각해요. 어디 가서 무슨 말을 해야 할 때도 ‘하느님 당신의 언어로 이야기하게 해주십시오’하고 부탁드려요. 그러니까 시를 쓰거나 말, 행동을 하는 것도 제가 잘나서 그런 것이 아니라 주시는 만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일상 속에서 저를 도와주시고 제 삶을 설계해놓으시고 불러다 쓰시는 분이라고 느낍니다. ‘삶에서 죽음까지 계획이 있을 것이다, 그 분이 허락하시는 능력을 펼치면서 사는 것이다, 그 분의 뜻대로 진행되는 것이다’ 라고 생각하죠. 


- 제가 오늘 이곳에 오기 전에는 정치인 도종환, 시인 도종환 이라고 생각했는데 인터뷰를 하다 보니 신앙인 도종환 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프린치스코 교황님 이야기가 많이 나왔는데 교황님의 어떤 모습에서 많은 감동을 받으셨는지, 어떤 것을 배우셨는지 궁금합니다.


▶ 십여 년 전 어느 연말에 아르헨티나의 나이트클럽에서 화재가 났었지요. 그때 제일 먼저 달려가서 구조하신 분이 교황님이시잖아요. 그 일화를 보고 가장 어려움에 처해있는 사람들이 있는 곳에 달려가는 분이라는 것을 잊지 말자고 느꼈죠. 우리도 정치인이든, 교사든 가장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 곁으로 먼저 가는 일을 하면서 살아야하지 않나하는 생각을 하게 해주신 분이에요. 세월호 참사 때도 김영호씨에게 가서 그분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으시고 이호진씨가 지고 2,000리를 걸은 십자가를 로마에 가져가기도 하셨죠. 행동으로 보여주시는 분이라 존경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 어떤 무신론자는 ‘나는 신을 믿지 않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은 믿는다’라고 했었죠. 마지막으로 천주교 신자들에게 위로가 되는 좋은 말씀 부탁드립니다. 


▶ 천주교 신자들과 만나면 마음이 편하고 좋아요. 그런데 개인주의적인 신앙, 자기의 안분지족과 마음의 평화만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이기 보다는 남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 정의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가장 가난한 사람들 곁에 가는 것이 가톨릭 신자들의 일’이라고 하신 것처럼 어떤 일이 정의로운지, 옳은 일인지를 눈여겨보고 우리 모두를 위한, 공동선을 위한 기도를 하고 실천하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 감사합니다. 오늘 말씀 중에 인생의 십일조를 바치는 마음으로 정치에 임하겠다고 하셨지요? 선생님 인생을 적어도 80으로 보면 8년을 정치인으로 계셔야 한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앞으로 4년이 더 남은 셈입니다. 십일조의 의무를 꼭 지키시길 기원하겠습니다. (웃음) 오늘 긴 시간 좋은 말씀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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