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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 희망센터’에서 날아오르는 홀씨들
  • 전순란
  • 등록 2015-10-29 10:52:10
  • 수정 2015-10-29 11: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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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0월 28일 수요일, 맑음


척박한 길가에도, 아스팔트 갈라진 틈새에도 자라서 피는 꽃, 캐내도캐내도 실낱같은 잔뿌리만 남으면 비비고 싹터서 꽃피우고 꽃씨를 우주선처럼 사방으로 날려 보내는 민들레! 잡초라기엔 너무 곱고 생명으로서는 모질게 슬픈 민들레!


인천 동구 가파른 산비탈 꼬방 동네 꼭대기에 서영남 수사의 손으로 ‘민들레 국수집’이 생겼고 13년간 그 홀씨가 밥집, 옷집, 공부방으로 번지고 더 멀리 날아간 꽃씨는 필리핀에도 세 곳이나 싹을 틔워 올리는 중이다. 지난 5년간 ‘민들레 진료소’를 운영해온 의사가 오늘 하던 말, “사람이 첫발을 내디디면 나머지는 하느님이 다 알아서 하시더라!”


오늘 우리가 찾아간 곳은 ‘민들레 희망센터’의 개소식 미사였다. 여주인 베로니카씨가 딸 모니카의 혼수적금을 쏟아서 마련한 집, 국수집에 오는 노숙자들이 씻고 빨래하고(그러면 냄새가 안 나니까 찜질방에서도 받아주고 밥집에서도 밥을 사 먹을 수 있단다) 쉬다가 책도 읽고 하다 다시 노숙으로 돌아가면서도 실낱같은 희망이나마 간직하고 가라고 마련한 집이다.





멀리 필리핀으로 떠났던 주인장 ‘서수사님’도 처음보고  민들레집을 꾸려가는 당찬 여인 베로니카씨도 처음보고 그 동네 아이 민들레들을 돌보는, 베로니까씨의 딸 모니카도 우리 부부는 처음 본 길이다. 개소식 미사를 드려주신 인천교구 김영욱 신부님 일행, 바오로가족의 수사수녀님들, 특히 우리에게 하루를 몽땅 내 준 이엘리사벳씨에게 정말로 고마운 한 나절이었다.







변호사와 의사, TV 탈렌트(최재성), ‘희망센터’를 정말로 멋있게 리모델링 해 준 건축가(이율: 강정 프란치스코 평화의 집도 설계해 준 분), 서울법대생으로 사법고시 2차에 합격했다고 박수를 받은 자원봉사자... 아아, “민들레 꽃씨가 바람에 날려가는” 그 아름다운 정경이라니! 캐나다로 이민가 사제가 되어 가난한 사람들과 살 길을 알아보러 일시 귀국한 젊은 사제(구장환 신부)도 함께 국수를 먹으러 왔다.





4시경에는 이엘리사벳씨랑 함께 계산동에 있는 노틀담 수녀원을 찾아가 먼데를 다녀오신 우리 대모 가브리엘 수녀님을 뵈었다. 수녀님은 그 길에 노틀담 복지관 장애우 교육시설을 견학 온 인천대 독문과 교수님과 학생들과 함께 우리가 시설도 둘러보게 해 주셨다. 독일의 사회복지 수준에 맞추어 국내 최고의 수준으로 장애우들이 사회참여와 자립생활을 성취하도록 지원하는 프로그램과 보조기구들의 생산과 보급을 하는 곳이다. 안구 마우스를 이용해 안구의 움직임만으로 컴퓨터를 조종할 수 있는 장치는 우리나라에서도 스티븐 호킹스 박사가 나올 수 있겠다는 희망을 심어주었다.




성서학자인 가브리엘 수녀님이 중동에서 수십년 수집해온 소장 자료들을 보여주는 전시실이 수녀원 안에 마련되어 한참이나 수녀님의 열강을 들으면서 소중한 자료를 관람하였다.


저녁 6시에는 월미도 ‘디모니카’에 문영석 교수님이 초대한 만찬이 있어서 서둘러 갔다. 화가요 조각가요 시인이신 분도회 조광호신부님(지금은 인천교구 사제)을 참 오랜만에 만나고 문교수님이 함께 데려온 구장환 신부님을 다시 만나 모니카씨가 ‘이탈리아 음식 스튜디오’로 차린 살롱에서 10시까지 무려 네 시간 가량 식사를 하고 담소를 하고 마음을 나누었다.


조광호 신부님은 당신의 최초 목조각 작품인, 루오 풍의 ‘예수 성면’을 40년 전에 보스코에게 기증하신 적 있고 ‘아브라함의 이사악 제사’ 목각판화도 30여 년 전 선물하셔서 지리산 휴천재에 늘 걸려 있다. 오늘도 '반가사유의 부처님' 얼굴과 '십자가에 숨진 예수님' 얼굴을 합쳐그린, 이콘 성화 형식의 귀한 작품을 우리에게 선물해 주셨다.



문교수님의 인도로 세계굴지의 컴퓨터회사에서 겸허한 사제직의 길로 건너온 구신부님은 그 맑은 얼굴로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하얀 빵모자(이탈리아말로 ‘쥬케토’라고 부른다)를 손에 넣게 된 사연을 자랑삼아 들려주었다. 올봄에 서품받은 젊은 사제를 지켜보는 문교수님의 애정 어린 눈길에는 그분의 마지막 꿈이 서려 있기도 했다.


모니카는 브루스케타, 카프레세, 홍합을 전식으로, 새우리소토와 홍합스파게티를 첫 접시로, 안심구이와 양파구이, 샐러드를 매인으로, 프라뻬, 사과구이, 셀텐을 후식으로 내어놓아 그렇지 않아도 미식가인 조신부님이나 문교수님으로부터 최고의 아틸리아 요리사로 격찬을 받았다.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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