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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한 개 내놓고 100개나 얻은 엄마들
  • 전순란
  • 등록 2015-10-27 15:59:50
  • 수정 2015-10-27 18:2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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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0월 24일 토요일, 흐림


“여보, 열흘 후면 밭고랑 풀이 도로 자라오를 거에요, 이번엔 현수막천을 좀 깔아줄래요?” 점심을 먹고서 보스코가 텃밭에 내려가 몇 해 사용하고 거둬둔 현수막천을 고랑에다 펴고 철사 핀으로 박아 가는데, 내 눈에는 바람 한 번만 불어도 다 날아갈 버릴 것만 같다. 그런데 보스코가 왜 일을 그렇게 시원찮게 하는지 오늘 저녁에 알게 되었다.


이장님네 흥겨운 벼베기



대전 수도원에서 ‘살레시오 수도자 부모 모임’(맘마말가리타회)에서 오윤택 신부님이 특강을 하다가 나자렛 동네에서 목수 일을 하시던 예수님 그림을 보여주면서 “예수님은 대패질을 하시면서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요?”라는 질문을 하필 “성하윤신부 아버님 성염 대사님께” 드렸는데 “대패질과 사포질로 사람들을 어떻게 매끄럽게, 뺀질뺀질하게 만들까 궁리하셨겠죠.”라는 엉뚱한 답변을 내놓았다. 신부님은 전혀 다른 의도로 물으셨을 텐데... 내가 손을 들고 “예수님은 목수 양반이니까 대패질 생각밖에 안 하셨을 게에요. 딴생각하다 손가락이 남아나겠어요?”라고 했다.


과연 신부님 말씀은 일상생활에서 하는 일과 일하는 지향(하느님의 영광, 타인에게 봉사)이 별개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예수님이 공생활에 나서기 전 30년간 과연 무슨 ‘의미있는’ 일을 하셨는지를 어느 복음사가도 찾아내지 못한 것으로 미루어, 일상의 지루하고 별것 아니고 평범한 삶을 살아오셨음에 틀림없다는 얘기였다. 참 하느님이시며 참 사람이신 그분이 그렇게 사신 것으로 미루어 평범한 일상이 우리를 성화한다는 가르침이었다. 하느님은 일상에서 우리를 만나시고 우리와 함께 계시면서 그것을 영원한 삶으로 변화시키신다는 “일상(日常)의 성화(聖化)”가 오신부님의 강연이었다.


정림동 수도원장 오윤택신부님의 '밥퍼,


광주수도원 원장이고 맘마말가리타회 지도사제 박해승 신부님의 밥상치우기


살레시안답게 살면 그것으로 우리는 성인이 되고 우리의 평범한 삶이 곧 성사(聖事: ‘거룩한 일’)라는 가르침이 참 좋았다. 밭고랑에 풀 나지 않게 현수막천을 깔면서 얼마나 고상하고 의미 깊은 일을 생각하고 있었으면 기껏 깔아놓은 천이 바람 한번에 휘익 날아가게 시원찮아 보여 철학교수 머리는 역시 일상에서도 늘 뜬 구름 위에 떠 있음이 입증된 셈이다.


로사리오 기도


'일상의 영성'에 관한 오윤택신부님 강연


오늘은 부모님들이 참 많이 오셨다. 해마다 두 차례 회원들의 부모님을 모셔다 융숭한 대접을 하면서 수도회에 아들을 내주신 은혜에 고마움을 표하는 이 수도회의 ‘가족정신’은 괄목할 만하고 다른 수도회들도 본받을 만하다.


저녁은 오락과 친교의 시간이다. 대개 수련이나 입회 동기 부모들이 한 테이블에 모여앉지만 잘 모르는 부모님 얼굴도 곧 친구가 되는데 ‘아들 걱정’이라는 공통분모가 있어서다. 우리 상에는 위원석신부 엄마, 강경채신부엄마가 함께 앉았다, 젊은 수사들이 광주에서 함께 올라와 프로그램을 알차게 진행하였다. 지원기, 첫서원, 유기서원, 종신서원 엄마들이 한 사람씩 앞으로 불려나가 사회자와 인터뷰를 했는데 ‘빵고엄마’가 불려나가 종신서원자 부모를 대표해서 얘기를 나눠야 했다.


“살레시안의 부모로 언제 가장 행복했는가?”라는 질문이 나에게 왔기에 “굳이 ‘제일’이라는 말을 붙일 필요도 없이 아들을 살레시안으로 두고 사는 것 자체가 행복이다.”라고 답했다. 부모들은 아들이 변해가는 모습에 감탄, 감격, 감사(우리 대모님이 곧잘 말씀하시는 소위 ‘삼감三感’)들 한다. “아들  한 개 내놓고 아들 100개 얻은 것이 제일 좋다.”는 얘기도 나왔다(경상도에서는 사람도 갯수로 센다).


부모님들을 위한 친교의 밤



마지막으로 박해승 신부님의 보나노테에서는 이번에 어머니(루시아 언니)를 여의고 그 많은 부모님들이 오셔서 문상하고 기도해 주신데 아들 나정흠 신부님이 고마움을 표했다. 부모의 초상이 나면 살레시안들이 우루루 몰려와서 상가를 지키며 손님을 맞고 심부름을 하고 상가에서 드리는 미사를 끊이지 않고 드리며 장지까지 따라오는 게 과연 아들 하나 얻고 100명을 얻었다는 보람을 절절히 느끼게 해준다.




어머니 장례에 문상오신 분들께 감사드리는 나정흠 신부님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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