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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지요하] 올 추석엔 성완종 고인을 위해서도 기도하련다
  • 지요하
  • 등록 2015-09-27 08:03:50
  • 수정 2015-10-30 16:3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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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해 추석 명절을 맞는다. 천주교 신자들은 설과 추석에는 ‘합동위령미사’를 봉헌한다. 조상들과 부모 형제 친척 은인 등 세상 떠난 이들의 영혼을 위한 미사에 적극적으로 참례한다. 민족의 고유 명절을 세상 떠난 이들과 살아 있는 이들이 함께 지내는 셈이다. 


천주교 신자인 나는 매년 설과 추석 명절에는 정성껏 ‘미사예물’을 준비하여 내 쪽의 조상님들과 처가와 외가의 조상님들을 위한 합동위령미사를 봉헌하곤 한다. 선친과 장모의 기일에 개별적으로 위령미사를 봉헌하는 것은 물론이다. 때로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이들, 심지어는 일면식도 없었던 이들을 위해서도 위령미사를 봉헌하곤 한다.


▲ 천주교 대전교구 태안성당의 명절 미사 풍경. 2008년 2월 7일 설날의 사진이다. 각 가정에서 가져온 명절 음식들을 제대 앞에 진설하고, 각 가족 별로 분향을 했다. ⓒ 지요하


이름조차 모르는 이를 위해 미사를 봉헌하는 경우도 있다. 어느 핸가 우리 고장에서 의붓아버지에게 살해당한 두 어린자매를 위한 미사, 당진 ‘한진철강’에서 작업 중 용광로에 떨어져 목숨을 잃은 25세 청년을 위한 미사봉헌 등이 기억된다.


2014년 4월 16일 이후로는 ‘세월호 희생자’ 304명을 위한 위령미사를 여러 번 봉헌했다. 개인을 위한 미사가 아니고 304명을 위한 미사이기에 미사예물 금액에도 더욱 정성을 기울이곤 했다.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세월호 희생자들을 위한 위령미사 봉헌


고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의 기일에도 위령미사를 봉헌하곤 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천주교 신자라서 기일에 위령미사를 봉헌하는 이들이 있겠기에 지속적으로 신경을 쓰지 않지만, 노무현 대통령에게는 지속적으로 신경을 쓰는 편이다. 


노 대통령은 젊은 시절에 세례를 받아 ‘유스토’라는 세례명도 가졌지만, 신앙생활을 하지 않았고, 가족들 중에 천주교 신자가 없기 때문에 위령미사를 챙겨주는 이가 없을 터이므로 더욱 신경을 쓴다. 


천주교에서는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들에 대해서는 공식적인 장례미사나 위령미사를 베풀지 않는다. 하느님께서 주신 자신의 목숨을 스스로 끊은 것 역시 살인죄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자 개인이 위령미사를 봉헌할 수는 있다. 


그래서이기도 하지만, 나는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해 박정희 독재정권 시절의 장준하 선생 경우처럼 ‘타살’일 수도 있다는 시각을 갖고 있다. 그래서 더욱 그를 위한 위령미사에 신경을 쓴다. 설이나 추석 명절의 ‘조상들과 은인들을 위한 합동위령미사’ 예물봉투에 ‘노무현 유스토’라는 이름도 적곤 하는 것이다.   


그런데 올 추석의 합동위령미사 예물봉투에는 고 성완종 회장의 이름도 적을 생각이다. 성완종 회장 역시 나와는 별다른 인연이 없는 분이다. 이웃동네 서산 출신이어서, 서산과 태안이 한 선거구인 관계로 이런저런 자리에서 가끔 만나 악수를 하긴 했어도 식사 한 번 해본 적도 없다. 


10여 년 전 ‘서산장학재단’에 관계하는 서산 출신 모 시인의 중개로 성완종 회장의 생애를 영상으로 담아내기 위한 200매 가량의 시나리오를 집필한 일이 있다. 자료를 가지고 하는 일이어서 어렵지는 않았지만, 내 이름을 감추고 돈이나 몇 푼 버는 일이라 내심 자괴감에 시달려야 했다. 


그 시나리오로 영상물이 만들어졌는지 여부는 확인하지 못했지만, 그런 일을 한 덕에 나는 성완종 회장의 전모를 비교적 소상히 알 수 있었다. 그는 분명히 입지전적인 인물이었고, 웅대한 포부를 가진 사람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를 미덥게 보지 않았다. 망국적 지역감정의 산물인 자민련에 적을 둔 것도, 선진통일당의 국회의원이 되어서는 주도적으로 새누리당과의 합당(투항)을 추진한 것도 부정적으로 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기업인으로는 어느 정도 성취를 이루었지만 정치인으로는 한계가 분명함을 직시할 수 있었다. 


올해는 성완종 회장을 위한 미사 봉헌도… 


▲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의 생전 모습. 그는 2015년 4월 9일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명박의 ‘자원외교’ 비리에 연루된 억울함을 호소하고, 과거 자신이 돈을 주었던 정치인들을 거명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사진출처=오마이뉴스)

 

그런데 2015년 4월 9일 그의 부음을 들었다.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국가 재정에 엄청난 손실을 끼친 이명박 정권의 ‘자원외교’ 비리와 관련하여 검찰의 수사를 받던 와중이었다. 훗날 분명코 ‘매국노’라는 평가를 받게 될 이명박의 자원외교 비리에 부분적으로 연루된 그는 ‘희생양’이 될 운명이었다. 


대법원의 선거법 위반 판결로 국회의원직마저 잃은 그는 여러 요로에 도움을 청했지만 차갑게 거절당했다. 고립무원의 처지에서 그는 죽음을 선택하면서 과거 자신이 돈을 주었던 정치인들의 이름을 적은 쪽지와 육성을 세상에 남겼다.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다. 


나는 성완종이라는 인물의 부음을 접하고 깊은 연민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학력 사회에서 학력이 없는 그는 당연히 ‘학연’이라는 것이 없었다. 부실한 조건을 안고 기업을 하자니 정치적 배경이 필요했고, 정치인들과의 결탁은 필수불가결한 일이었다. 그는 스스로 정치인이 되고자 했다. 필사적인 노력 끝에 일차 꿈을 이루었으나, 곧 좌절을 맛보아야 했다. 


그의 죽음은 꿈을 이루기 위한 한 인간의 필사적인 노력과 좌절, 인간 세상의 엄혹한 풍경, 정치 군상들의 배신과 표리부동의 냉혹함 등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그가 남긴 메모와 육성 - 성완종 리스트는 그 모든 것의 실체적 상징물이다.    


한동안 성완종 리스트는 세상을 흔들었지만, 곧 덮이고 잠잠해졌다. 검찰은 성완종 리스트에 오른 인물들을 수사함에 있어 계좌추적도 하지 않았고 부실수사로 일관했다. 말하자면 ‘시늉수사’였다. 말할 것도 없이 그들 대부분이 현 정권의 실세들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성완종의 죽음은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하게 됐다. 


하지만 그것은 오늘의 일일뿐이다. 그게 내일에까지 이어지리라는 보장은 없다. 최근 뇌물 혐의로(나는 믿지 않지만) 징역형을 선고 받고 복역 중인 한명숙 전 국무총리 사건은 뭔가를 암시한다. 8년 전 국무총리 시절의 일 때문에 그는 8년 후인 오늘 옥에 갇히는 신세가 됐다. 성완종 리스트에 오른 오늘의 박근혜 정권 실세들이 8년 후에도 무사하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그게 세상의 이치다. 



[필진정보]
지요하 : 1948년 충남 태안 출생. 198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소설 <추상의 늪>이, <소설문학> 신인상에 단편소설 <정려문>이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지금까지 100여 편의 소설 작품을 발표했고, 15권의 저서를 출간했다. 충남문학상, 충남문화상, 대전일보문화대상 등을 수상 하였다. 지역잡지 <갯마을>, 지역신문 <새너울>을 창간하여 편집주간과 논설주간으로 일한 바 있고, 향토문학지 <흙빛문학>과 <태안문학>, 소설전문지 <소설충청>을 창간히였다. 한국문인협회 초대 태안지부장, 한국예총 초대 태안지회장, 태안성당 총회장을 역임했고, 현재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충남소설가협회 회장, ‘정의평화민주 가톨릭행동’ 공동대표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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