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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광장 미사 : 교회는 정치적이어야 합니다
  • 임 루피노
  • 등록 2015-09-18 16:58:32
  • 수정 2015-09-18 17: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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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시 수요일, 우리는 광장에서 이렇게 만나고 있습니다.


또다시 우리는 우리가 5년간 고용한 대통령이 거처하는 청와대를 마주 대한 채, 저 집을 장악한 이들이 은폐하고 왜곡하려는 세월호참사의 진실을 요구하기 위해서, 그리고 어처구니없는 참사의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똑같이 어처구니없는 대접을 받고 있는 유족분들과 연대하고자 소음 가득한 이 자리에 나와 있습니다. 여기 함께 하시는 모든 분들을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저는 오늘 “종교와 정치”에 대해서 여러분과 함께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일제시대 때, 친일파 아니었던 사람이 누가 있느냐? 친일파가 아니었으면 그 사람은 공산주의자다.”라는 식의 악한 말을 들으면서, 또 “종교는 정치에 관여해서도, 정치에 대해서 말하지도 말아야 한다.”는 식의, 혹은 “모르면 닥치고 그냥 가만히 있으라.”는 식의 폭력적이고 무지한 말을 들으면서, 저는 분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올바른 질문을 던져야 올바른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여기서 질문은 “종교가 정치적이어서 되겠느냐?”가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가 진정 던져야 할 질문은 “종교가 취한 복음적 선택과 투신이 다른 이들에 의해서 ‘정치적’이라고 딱지 붙여질 때, 종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입니다.


교회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이 세상의 평판도 아니고,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권력을 쥐고 있는 이들도 아닙니다. 가난한 민중을 억압하는 이들, 역사의 진실을 서슴지 않고 왜곡하려는 이들, 그리고 후손들에게 물려줘야할 풍요로운 자연을 소수 자본가들에게 넘겨서 4대강처럼 망치려는 이들의 시선은 교회가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교회는 그런 권력이 소외시킨 이들, 가난한 이들, ‘히브리 노예’들의 생명과 평화를 염려해야 합니다. 자본과 권력이 눈과 입을 막고 양팔을 옭아맨 이들과 함께 손을 맞잡고 서있어야 합니다. 만일 그런 교회의 실천을 “정치적”이라고 누군가가 호도한다면, 교회는 당연히 “정치적”이어야만 합니다.


일제 통치 하에서, 비겁하게 신앙 뒤에 숨어 침묵을 지키기보다는, 창씨개명과 신사참배와 일본어 사용, 강제징용과 자원수탈, 위안부 징집과 온갖 식민통치정책에 반대하며, 고통 받는 민중의 해방을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 “정치적”인 것이라면, 교회는 당연히 “정치적”이어야 합니다. 교회가 불의에 대한 자신의 침묵과 친일행적에 대해서 민중과 역사 앞에서 고백성사를 하는 것이 “정치적”이라면, 교회는 정치적이어야 합니다.


영덕군청 앞에 서있는 영덕의 힘없는 군민들의 탈핵의지와 연대하는 것이 “정치적”이라고 한다면, 교회는 “정치적”이어야 합니다.


제주 강정에 이미 군함들이 들어오고 있다고 하지요. 제주를 “평화의 섬”이라고 했던 정부의 선언에 대한 약속을 지키고, 한반도에서 전쟁의 위험을 없애자고 외치는 평화지키미들과 함께 하는 것이 “정치적”이라면, 교회는 역시 “정치적”이어야 합니다.


세월호참사의 진실을 감추는 데에 국가조직을 전 방위적으로 동원하면서, 희생자들의 유족들을 고립시키고 사찰하며, 진정한 진실규명을 요구하는 민중의 요구를 묵살하는 정부에 대해서, 정의를 요구하고 희생자들을 기억하며 유족들과 함께 연대하는 것이 “정치적”인 것이라고 한다면, 교회는 당연히 정치적이어야만 합니다.


그렇게 실천하는 교회구성원들을 “정치적”이라고 몰아세운다면, 가난한 이들, 기득권층에 의해서 죄인과 낙오자로 낙인찍힌 이들과 함께 식사하고, 연대하면서, “하느님 나라”의 해방을 선포하다가, 공권력의 음모로 사형에 처해진 예수도 “정치범”이며, 그분의 삶과 죽음도 역시 “정치적”인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복음적인 것이며, 이것이 기쁜 소식이 아니겠습니까! 만일 그런 선택들을 하지 않는다면, 교회가 선포하는 “하느님 나라,” “하늘나라”란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그런 실천들을 하는 데에 힘을 모으고 교회의 최우선 관심사로 하지 않는다면, 만일 교회의 자산운용이나, 세력의 확장이나, 자본과 권력의 눈치 보기를 그보다 더 우선시한다면, 교회가 증거하는 복음이란 어떤 것이 될까요?


종교와 정치는 분리되어야 한다는 정교분리의 원칙이 있습니다. 맞습니다.


하지만, 종교는 사람을 살리는 일, 살림살이의 가장 정교하고 고차원적인 단계, 사랑 실천의 최고 경지라 할 “정치”에 무관심할 수가 없습니다. 


정치가 지금처럼 제 구실을 못하고, 오히려 살림살이 전반을 파괴하는 일에 앞장설 때, 소위 “직업 정치가”들이 자기 패거리의 이권만을 챙기고 생명과 평화라는 공동선을 손쉽게 무시할 때, 각자의 정치적 이권을 우선하며 선량한 시민들에게 전쟁 도발이라는 언어로 협박할 때, 예언자는 그렇게 병든 “정치”에 대해서 목소리를 내야만 합니다. 예언자의 실천을 해야만 합니다. 


“종교가 ‘정치적’이면 안 된다.”고 할 때의 그 “정치”를 망쳐놓은 이들이 지금 권력을 쥐고 있고, 그런 오염된 정치라고 한다면, 종교는 절대로(!) 정치적이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종교가 선택해서는 안 될 “정치”는 어떤 것일까요?


일제식민통치의 굴욕과 억압, 민중의 피와 땀을 외면하고, 천당에 가는 것만이 중요하니 골방에서 기도만 하라는 것이야말로 “정치적”인 것입니다.


식민통치 하에서, 제국주의자들에게 협력하고 민중을 호도하며, 군사독재 하에서 자유와 해방, 민주주의 구현을 위해서 스스로를 희생한 이들을 외면하고 권력의 눈치를 보며 비겁한 침묵을 지킨 것이야말로, “정치적”인 것입니다.


사이비 언론이나 정보국이 퍼뜨리는 거짓 정보에 기대어, 세월호이야기는 이제 그만하자고 하는 것, 세월호 유족들은 보상만 받으면 된다고 말하며 유족분들 가슴에 못을 박는 것, 자기 일이 아니라고 세월호 진실은 이제 다 밝혀진 것 아니냐고 하면서, “세월호가 너무 ‘정치적’이다”라고 하는 것이야말로 “정치적”인 것입니다.


교회공동체의 도움을 청하며 종교지도자를 찾아온 세월호 유족들에게, 진실규명을 향한 연대요청은 거부하면서, “아이들은 이미 천당에 갔으니, 참사를 아름다운 죽음의 추억으로 간직하고, 빨리 일상으로 돌아들 가시라”고 말하는 것이야말로, 정말 “정치적인” 행동인 것입니다.


정의와 생명과 평화보다 돈을 선택하는 데에 주저함이 없는 기득권층의 문화, 죽음의 문화에 건강한 비판을 하지 말라 하고, 또 스스로도 그런 예언자의 소리를 내지도 못하며, 변화하지도 않는 종교를 비판하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는 것이야말로 “정치적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매 형제 여러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종교가, 교회가, 우리들 자신이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를.


의지할 데 없는 영덕군민들이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서 탈핵을 외치면서 도움을 청할 때, 밀양에서 거대한 송전탑과 핵마피아에 맞서 싸우며, 할매할배들이 연대를 요청할 때, 설악산 국립공원 가장 깊은 곳에 케이블카와 호텔을 건설하려는 자본의 탐욕에 함께 맞서 싸우자는 요청이 있을 때, 날로 양산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비참한 살림살이를 함께 개선하자며 연대요청을 받을 때, 바로 그 때야말로 종교가 진정 종교임이 드러나는 순간입니다.


고통 받는 이들의 내민 손앞에서 중립이란 없으며, 이른바 그런 “중립”이야말로 종교가 정치권력과 야합하는 이른바 “정치적인” 일입니다.


친일 세력의 후손들이 기득권을 쥔 이 시대에, 나라가, 민중의 삶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사회 혼란이 조장되고 가중되면서, 국가주의, 파시즘이라는 무시무시한 그림자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청년들은 왜 자신들이 삶과 미래를 저당 잡힌 삼포세대가 되었는지를 묻기보다 지뢰사태가 험악해지자 전쟁에 나서겠다하고, 정부가 나서서 역사교육을 통제하겠다는 데에서 그 흔적이 보입니다.


정치권력을 쥔 모든 이들이여, 회개하십시오. 이 나라의 안전과 평화에 진정 위협이 되는 이들은 지금 길거리에 나선 서민들이 아니라, 하늘 아래 부끄러움과 두려움을 모르며 함부로 칼을 휘두르는, 바로 당신들입니다.


당신들은 그 권력이 영원하리라 믿고, 또 권력을 영속시키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니, 당신들의 길은 죽음의 길이요, 당신들의 삶은 죽은 삶입니다. 그것은 우상숭배의 저주받은 길이니, 당신들은 불행합니다.


강정에서, 용산에서, 밀양에서, 부산에서, 거제에서, 평택에서, 설악산에서, 광화문에서, 윤리도 철학도 없이, 경찰과 용역을 앞세워 생태계와 사람의 생명을 해치는 권세가와 자본가들이여, 당신들도 불행합니다. 모든 이가 함께 안정과 풍요를 누리는 길만이 당신들도 살 수 있는 길임을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 산과 강과 바다가 사유물이 아니라 공공재이며, 생명을 주는 거룩한 자매, 형제들임을 당신들은 모르고 있으니, 불행합니다.


진실과 정의, 생명과 평화를 위해서 일하는 이들과 거짓과 탐욕에 의해 희생된 이들을 매도하는 일에 앞장서고, 죄 없는 서민들을 거짓보도로 혼란스럽게 하고 현혹시키는 언론권력들이여, 당신들도 불행합니다. 당신들은 거짓과 위선의 덫에 스스로 빠졌기에, 당신들의 살진 뱃속에는 죽음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종교를 한낱 외적인 예절과 껍데기 언어의 조합으로만 남게 하려는 모든 종교인들, 현실에 눈을 감고, 편리한 무지함 안에 안주하려는 모든 이들이여, 당신들도 불행합니다. 당신들은 “하느님”을 섬긴다고 하지만 사실은 모욕하고 있고, “거룩한 예절”만을 중시하면서, 진정 살아있는 “거룩함”, 즉 작고 가난하고 고통 받는 이들을 외면하고 있으므로, 당신들이 잘도 안다고 생각하는 그 “하느님”이 결국 당신들을 버릴 것이니, 당신들은 불행합니다.


하늘이 당신들 모두의 편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의 하느님은, 당신들의 길을 타락과 죽음의 길이라고 하시는 분, 참으로 살아계시고 거룩하신 하느님, 가난한 이들 가운데에 가난한 자로 오신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정의가 구현되고, 연대가 승리하며, 진실과 진리가 사람들을 자유롭게 하는 날, 당신들의 초라하고 흉악한 몸뚱아리가 그대로 드러날 것입니다.


복됩니다! 평화를 위해서 자기 자신을 헌신하는 사람들, 그들은 이미 하느님의 딸들이고 아들들입니다.


복됩니다! 거짓과 유혹과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고통 받는 이웃들과 끝까지 연대하는 사람들, 그들은 하늘나라를 이 땅에 이루는 이들이기에,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입니다.


복됩니다! 자신만의 안전과 권위, 사리사욕에 눈멀기보다, 아픈 이웃의 억울한 현실에 공감하고 가난한 이들에게서 기꺼이 배우려는 사람들, 하느님의 지혜가 그들의 것입니다.


복됩니다! 배고픈 이들에게 단순히 빵만을 던져주고 잊기 보다는, 그들을 가난하게 만들어온 불의한 사회구조에 주목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이들, 그들은 성자의 길을 따라가기에, 참되고 영원한 생명이 그들의 것입니다.


이 땅의 주류 언론이 매도하고, 불의한 정권이 탄압하며, 탐욕스런 자본이 압박해오고, 잘 산다고 하는 주위 사람들이 터무니없는 언사로 여러분을 반대하고 가만히 있으라고 하면, 기뻐하고 감사해하십시오! 저들은 참되고 진실한 예언자들을 언제나 그렇게 대했습니다. 


여러분은 투쟁과 연대 안에서 진실한 벗들을 수백 배 얻게 될 것이고, 참된 기쁨을 누릴 것입니다. 이렇게 삼위일체 하느님은 우리와, 여러분과 함께 계십니다. 아멘.




[필진정보]
임 루피노 : 작은형제회 소속으로 서울에 살고 있으며, 수도생활을 재미있게 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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