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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균태 신부의 오늘 미사 (15.09.16)
  • 이균태 신부
  • 등록 2015-09-17 15:50:29
  • 수정 2015-09-18 11: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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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사랑으로 대하려고 할 때, 가장 힘든 것이 있다면, 무력감이 아닐까 싶다. 대개 사랑으로 대하려는 그 사람에 대해 기대하는 바가 크면 클수록, 무력감도 크게 다가온다. 최소한의 상식이라도, 최소한의 예의범절이라도 있을 줄 알았던 사람이, 지내면 지낼수록 영 아니다 싶은 마음이 드는 것, 무력감의 한 모습이다. 


아무리, 무슨 말을 하더라도, 뉘 집 개가 짖는 것만도 못하게 만드는 것, 처음에는 화도 나고, 무시당했다는 느낌도 들고, 그래서 자존심이 구겨질 대로 구겨지다가, 나중에는 그 사랑을 거두어들이려는 마음, 죽 쒀서 개 줬다고 느껴지는 마음, 아마도 살아가면서, 가정에서, 남편에게서, 아내에게서, 부모들에게서, 자녀들에게서, 혹은 직장에서, 혹은 나랏일 하시는 분들에게서 이런 마음 느껴 보신 적이 적어도 한 두 번은 있을 것이다.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기대하고, 사랑하려고 했던 이들의 실체를 알고 나서, 무력감을 느끼는 예수님을 보여준다. 살아가면서 최소한 한두 번 이상의 무력감을 느껴 본 사람이라면, 오늘 복음에 나오는 예수의 말씀 한 마디, 한 마디가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을 것이다.


세례자 요한이 광야에서 극기생활을 하며, 회개를 외쳤을 때에는 미쳤다고 하더니, 예수님께서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가 되어서 그들과 어울려 먹고 마시니까, « 저 자는 먹보요 술꾼이다 »라고 매도해 버리는 세상에 대한 무력감, 그래서 « 우리가 피리를 불어 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울지 않았다 »라고 한탄하는 예수의 모습에서 안타까움과 실망감, 그리고 무력감을 충분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누가 무슨 말을 하든, 누가 오든, 나와는 무관한 것이라고 작정한 사람들, 귀 닫고, 눈 막아 버리고, 마음의 문을 닫아 버리기로 작정한 사람들에게 복음은 참으로 무력하다. 돌처럼, 굳은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는 제 아무리 세상 최고의 석공이 온다고 하더라도, 그 돌같이 굳은 마음을 쪼개어 내고, 그 마음을 아름다운 조각물로 만들어 내는 것이 참으로 힘들다. 제 아무리 세상에서 가장 뜨거운 용광로를 가지고 있는 이들도, 그들의 얼어붙은 마음을 녹여 내는 것이 참으로 힘들다.


사랑이라는 것, 무엇일까? 사랑은 반응이다. 상대방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그 마음을 읽어 내려는 노력이다. 상대방의 행동을 정성껏 바라보는 일이다. 이 놈이 무슨 말을 하나, 이 놈이 무슨 행동을 하나 하면서 감찰하는 것은 상대방을 자기 수하에 두려는 짓거리이지, 사랑은 아니다. 감시하고, 관찰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은 분명 다르다.


전자에는 그 사람 입장에 서 보는 일, 역지사지하는 일이 없지만, 후자에는 그 사람의 입장을 이해하려는 노력뿐만 아니라, 그 사람의 사람 됨됨이와 그 사람의 정서적, 정신적 배경에서 보려고 하는 노력, 그 사람의 입장에 함께 동참하려는 노력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어쩌면, 사랑하면서 산다는 것은 ‘입장의 다름’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함께 공감해 가려는, 끊임없는 노력의 반복이 아닐까?


사랑이 그러하다면, 신앙도 마찬가지다. 기도하고, 미사 참례하고, 성체를 영하면서, 신앙인은 예수의 사랑과 예수의 마음을 기억하고, 기념한다. 그 기억과 기념을 바탕으로 예수의 마음을 내 마음과 일치시켜, 이 세상에서 또 하나의 예수로 살아가야 할 사람들이 바로 신앙인이다. 기도하는 사람도 늘고, 성당에 와서 성체 영하는 사람들도 늘지만, 정작 교회는 힘이 빠져 가고 있고, 신앙도 무력해진다면, 그것은 교회의 구성원인 신앙인들이 예수처럼 세상을 살아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하느님의 아들 예수의 무력감, 사람이 되신 하느님 예수의 실망, 그로 말미암는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 예수의 한숨 소리!!! 그러나 그분은 또다시 두 주먹 불끈 쥐신다. 세상의 더러움과 세상의 역겨움을 몰아내시려, 당신의 제자들과 함께 한 걸음 한 걸음, 십자가를 향하신다.


성찬기도 4양식에 이런 말이 있다. “거룩하신 아버지, 예수께서는 아버지께 현양 받으실 때가 되자, 세상에서 못내 사랑하던 제자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나이다.” 세상 모든 사람들을 당신의 제자로 삼기를 바라신 예수의 그 그윽한 눈길을 닮으려는 사람들이 우리들 신앙인이다.


혹시, 가정에서 직장에서, 우리들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사랑 때문에 무력감을 느끼며 살고 있다면, 오늘 하루만 우리들의 주님처럼 한숨짓고, 내일부터는 다시 두 주먹 불끈 쥐며, 예수와 함께 사랑의 길을 걸어 봄이 어떠할까?



[필진정보]
이균태(안드레아) : 부산교구 울산대리구 복산성당 주임 신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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