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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응 스님, 깨달음과 역사 관계성 강조... 깨달음을 실천해야
  • 최진 기자
  • 등록 2015-09-08 09:45:52
  • 수정 2015-09-10 17:3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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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출처=법보신문)


조계종 교육원장 현응 스님은 4일 “부처님은 깨달음을 고도로 수련된 높은 정신세계를 이루는 것이라 하지 않았다. 깨달음은 ‘잘 이해하는 것’이라고 했다”고 말했다.


현응 스님은 “깨달음은 불교도에게 선결과제이자 기본요건이기 때문에 깨달음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다른 문제에는 진지한 관심을 기울이기 힘들다”며, “한국불교를 변화시키기 위한 현실적인 목적에서 ‘깨달음’을 이해하고자 했다”고 밝혔다.


스님은 이날 서울 세종문화회관 예인홀에서 열린 ‘깨달음의 역사’ 발간 25주년 세미나에서 ‘깨달음과 역사 그 이후’를 주제로 법석을 열고 이같이 말했다.


‘깨달음의 역사’는 현응 스님이 30대였던 1980년대 중후반 적었던 글을 엮어 1990년에 출간한 책으로, 중앙종회의원 교육부장 진각 스님과 본해 스님, 법인 스님 등이 이번 세미나를 마련했다.


‘깨달음과 역사’는 불교 인식론과 존재론을 깨달음의 영역으로 거둬들인 최초의 불교역사철학 에세이로, 해인사 주지 향적 스님은 축사에서 “현응 스님이 25년 전 펴낸 ‘깨달음과 역사’는 선방에 몇 십 년 앉아서도 풀 수 없는 화두를 풀어낸 역작”이라고 평했다.


현응 스님은 기조발제에서 “선불교에서 깨달음은 세수하다 코 만지기보다 쉽다고 하지만, 이를 믿는 사람도 없고 그렇게 한 사람도 볼 수 없다”며 “불교에서 말하는 깨달음이 도대체 어떤 것이기에 평생을 노력해도 성취할 수 없는가?”를 물었다.


다음은 발제의 주요 내용이다.



깨달음은 불교도에게 선결과제이자 기본요건이기 때문에 깨달음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다른 문제에는 진지한 관심을 기울이기 힘들다. 한국불교를 변화시키기 위한 현실적인 목적에서 ‘깨달음’을 이해하고자 했다.


깨달음이란 화두를 반복적으로 성찰하다 보면 마음과 참 나를 알게 된다는 것인가? 깨달음을 이렇게 모호하게 설정해선 이를 얻기 위한 노력의 방법도 불분명하고, 깨달음의 성취 또한 어느 수준의 어떤 것을 말하는지 제대로 알 수 없다.


한국불교의 깨달음이 몸과 마음의 완성된 경지이자 모든 번뇌를 끊고 고매한 인격을 이룬 높은 경지로서 표현된다면, 선정과 삼매로서 마음을 닦아 얻는 깨달음은 연금술을 닮았다. 마음의 연금술은 판타지는 될 수 있어도 그 대가가 크다.


부처님이 5명의 비구에게 자신의 깨달음을 설명해 이해시키는 데 불과 며칠이 걸렸을 뿐이며, 그 방법도 밤낮 없는 대화와 토론이었다. 부처님은 깨달음을 고도로 수련 된 높은 정신세계를 이루는 것이라 하지 않고, ‘잘 이해하는 것’이라고 했다.


깨달음은 이해의 영역이었기 때문에 설법, 토론, 대화를 통해 얻을 수 있었다. 부처님은 설법했고, 듣는 이는 질문과 대화를 통해 마침내 깨달음에 이르곤 했다. 그러나 불교는 ‘이해하는 깨달음’에서 ‘이루는 깨달음’으로 변화해 갔다.


깨달음은 이해하는 정도의 수준인데 수행자의 기대가 깨달음의 수준을 상향시켰고 수행자도, 수행집단도 통제 불능한 권위가 됐다. 불교 수행자들이 깨달음을 얻지 못하는 것은 깨달음을 잘못 설정한 까닭이다.


만일 깨달음을 ‘올바른 이해’라고 한다면 그러한 깨달음을 얻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깨달음과 역사는 분리돼서는 안 되며 오히려 다른 차원의 두 영역을 하나의 삶에 결합해야 한다.


‘이루는 깨달음’을 얻은 사람은 실제에서 곧바로 괴로움을 없애버리고, 모든 중생의 괴로움도 없애버릴 것이다. 그런 경우를 보지 못했다. 그런 깨달음을 이룬 사람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


윤리, 정의, 평화 같은 자비의 영역인 ‘사트바’와 깨달음인 ‘보디’가 결합했을 때 이를 보디사트바(보살)”라며 연기와 공에 대한 이해(깨달음)을 바탕으로 이를 실천해가는 보살이 불교적 이상형이다.


‘이해하는 깨달음’을 얻은 사람이 현실 역사에서 괴로움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더라도 그의 깨달음은 훼손 받지 않는다.


초기불교 경전을 통해 연기에 대한 부처님 가르침을 직접 공부하라. 이어 반야부 경전이나 중관사상을 공부하면 금상첨화다.



이날 법석에는 조성택 고려대 교수와 홍창성 미네소타주립대학 교수, 정경일 새길 기독사회문화원장, 김근수 가톨릭프레스 편집장 등이 참석했다.


조성택 고려대 철학과 교수는 “이제 오랜 침체에 빠져 있는 한국불교의 전통을 새롭게 갱신하고자 하는 열망이 바로 이해하는 깨달음이요, 깨달음과 역사가 둘이 아님을 재확인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조 교수는 “현응 스님의 글은 불교 밖에서 불교를 바라보고 전통의 바깥에서 전통을 바라본다”며 “사물을 투철하게 보는 것이 깨달음으로, 이 깨달음을 실천하는 것이 나와 세상을 구제하고자 하는 보살행”이라고 말했다.


홍창성 미네소타주립대학 철학과 교수는 “현응 스님이 말하는 깨달음이란 사실에 대한 진리인 연기의 법칙을 이해하는 것이다”며 “나 자신도 깨달음이 역사와 자비의 영역과 만나야 하며 자비가 깨달음의 연장선에서 이뤄지는 행위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정경일 새길 기독사회문화원 원장은 “현대화의 핵심은 당시 시대적 문제를 연기의 지혜와 자비로 철저히 사유하고 행동하는 것”이라며 “불교의 깨달음이 현대적 상황에 충실히 참여하고 응답해야 모든 인류에게 선물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근수 가톨릭프레스 편집장은 “불교의 깨달음처럼 그리스도교에서 비중 있는 단어는 사랑이다. 깨달음이나 사랑은 설명하기도 실천하기도 어려운 개념이다”며 “예수는 사랑을 정의하지 않고 사랑의 사례를 보여주었을 뿐이다”고 말했다.


김 편집장은 “예수는 깨달으라고 말한 적은 거의 없고, 따르라고, 따라 하라고 요구했다”며 “깨달음과 역사는 건물의 1층과 2층같이 서로 분리된 것처럼 그동안 여겨졌다. 불교나 그리스도교에서 철학은 과잉되고 역사는 빈곤해졌다”고 주장했다.


그는 “종교에서 깨달음이라는 철학보다 기억이라는 역사가 어서 회복되어야 하겠다. 깨달음과 역사 중 한 단어만 골라야 했다면 예수는 역사를 선택했을 것이다. 깨달음보다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은가”고 말했다.


이어 “불교는 그리스도교의 형님이요 누님”이라며 “불교가 품위를 지켜서 민족에게 희망을 주기 바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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