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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지요하] 망둥이의 망각과 인간세상의 망각 현상
  • 지요하
  • 등록 2015-09-04 09:54:26
  • 수정 2015-10-30 16:3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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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중반 <망둥이를 아시나요?>라는 단편소설을 발표하여 평론가들로부터 호평을 받은 바 있다. 아, 벌써 20여 년 전 일이구나. 나이 먹어가면서 옛날 일도 자주 얘기하게 되니, 그게 조금은 무안하기도 하다.


어느 가을날 또 한 차례 망둥이낚시를 갔다. 내가 사는 고장(충남 태안)에서는 흔하고도 수월한 일이다. 허리춤까지 갯물에 담그고 낚시를 하는데, 팔뚝만한 놈이 내 낚시에 걸려들었다.


너무도 신이 나서 주변 낚시꾼들에게 자랑이라도 하듯 호기롭게 두어 바퀴 돌리다보니 망둥이가 그만 뚝 떨어져 버렸다. 망둥이 아가리가 찢어져 버린 건 아니었다. 낚싯바늘이 줄에서 분리되어 버린 것이었다.



▲ 망둥이 낚시 / 몇 해 전 어느 가을날, 태안군 남면 진산리 ‘장명수’에서 망둥이 낚시를 했다. 밀물 때는 망둥이가 정신없이 나온다. ⓒ 지요하


너무도 허망하고 아쉬웠다. 원래 놓친 고기는 크게 느껴지는 법이지만, 정말 굵은 놈이었다. 그런데 예비낚시가 없었다. 예비낚시도 준비하지 않은 내 소갈머리를 한탄하며 멀찍이에서 낚시에 여념이 없는 친구에게 예비낚시가 있느냐고 소리쳐 물었다.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나처럼 준비성 없는 친구일 줄은 몰랐다. 아쉬움을 삼키며 물 밖으로 나가려고 걸음을 떼는데, 멀찍이 있는 친구가 날 불렀다. 낚시가 있다고 가지러 오라는 것이었다.


방금 예비낚시가 없다고 했던 친구가 갑자기 마음을 고쳐먹었나 생각하며 그 친구에게로 물을 헤치고 갔다. 그 친구가 다래끼 안의 큼지막한 망둥이 한 마리를 들어 올리더니 아가리에서 낚싯바늘을 빼내어 내게 주는 게 아닌가. 그 친구에게 없던 낚싯바늘이 갑자기 생겨난 이유가 확연히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내 낚싯대에서 떨어져버린 망둥이가 그 친구에게로 가서 아가리에 낚싯바늘이 달린 채로 다시 미끼를 문 것이었다. 정말로 머리가 나쁜 생물이군. 이렇게도 망각이 빠를 수 있나. 나는 혀를 차지 않을 수 없었다.


낚싯바늘에 아가리가 꿰어 물 밖으로 나왔다가 첨벙 떨어져서는, 5분도 되지 않아 낚싯바늘이 달린 입으로 또다시 미끼를 문 망둥이의 완벽한 ‘망각’이 순간적으로 내 정수리에 꽂혀 파장을 일으켰다. 나는 그 ‘사건’을 잊지 않았다. 잘 간직하고 있다가 얼마 후 <망둥이를 아시나요?>라는 단편소설을 지어 한국소설가협회 기관지 <한국소설>에 발표했다.


국민대중의 망각증이 최대로 발휘되는 선거


내가 망둥이의 ‘망각’을 소재로 삼은 소설을 지은 때는 지방선거 무렵이었다. 지방선거에 나선 수많은 후보자들 중에는 이런저런 허물을 지닌 인사들도 끼어 있기 마련이었다. 그들은 망둥이의 속성을 지닌 사람들이었다. 망둥이의 완벽한 망각 속성으로 자신의 허물을 철저히 망각하거나, 아니면 스스로 과감히 무시하거나 분식하는 위인들이었다.



▲ 망둥이 낚시 / 가을 한철에는 굵은 망둥이들이 낚시에 잘 걸려든다. 배를 갈라 내장을 빼고, 소금을 뿌려 얼간을 한 다음 햇볕에 잘 말리면 좋은 반찬이 된다. 구워 먹기도 하고 쪄 먹기도 하는데, 단단히 마른 망둥이를 방망이로 적당히 두들겨서 양념을 넣어 졸이면 연하고 맛이 일품이다. ⓒ 지요하


그런데 선거에 나선 후보자들보다 유권자들의 ‘망둥이 속성’이 더 문제였다. 나는 후보자들보다 유권자들 쪽으로 망둥이의 완벽한 망각을 대입시켰다. 국민대중의 망각증이 실로 큰 문제였다. 망둥이의 망각을 대입시켜도 좋을 정도로 심각한 대중의 망각증세는 유권자들의 가장 큰 약점이며, 어쩌면 극복이 불가능한 것일지도 몰랐다.


망각은 당연히 기억해야 할 것들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 과거지사들을 깡그리 잊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기억과 연관하는 성찰 능력까지 앗아 가버리는 것이 망각이다. 기억한다는 것은 생각한다는 것이고, 생각의 영역을 확대시켜 주는 것인데, 기억력과 인식 능력이 아예 마비된 상태이니 옳은 판단이 자리할 수 없다. 그것은 사리분별력의 약화로 노정된다.


국민대중의 망둥이 속성에 힘입어 허물이 분명한 부적격자도 너끈히 선거에서 당선될 수 있다. 국민의 최대 정치행사인 선거는 그런 약점을 지니고 있다. 대중의 망둥이 속성이 가장 극명하게 발휘될 수 있는 것이 바로 선거인 것이다. 공약의 무분별한 남발과 파기와 망실, 공약(公約)이 곧 공약(空約)이 되어 버리는 현상도 국민 대중의 망각 관성 속에서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다.


박근혜 정권이 반환점을 돌아 내리막길로 접어든 시점에서 벌써부터 선거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내년 4월의 제20대 국회의원 총선이 8개월밖에 남지 않았다. 다음해인 2017년 12월에는 제19대 대통령 선거가 실시된다. 선거 때문에 세월은 좀 더 속도가 붙을 것이다.


지금 또다시 우리 고장은 망둥이 철이 돌아왔다. 가을로 접어들면서 한해살이 생물인 망둥이들은 제법 굵어졌다. 갯물이 들고 나는 바다 곳곳에서는 망둥이 낚시가 성황을 이룰 것이다.


그러면 또 누군가의 낚시에서 분리된 망둥이가 아가리에 낚싯바늘을 단 채로 곧바로 다시 미끼를 물어 물 밖으로 올라오는 ‘사건’도 생겨날 것이다. 또 그러면 낚시꾼은 망둥이의 완벽한 망각을 실감하며 실소를 머금기도 하겠지만, 그가 망둥이의 그 망각과 관련하여 자신이나 인간 세상의 망각증세를 유추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다시 말하지만 망각이란 기억의 실종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기억과 관련하는 성찰 능력이 삭제되거나 감소되는 현상도 망각이다. 내가 ‘망둥이 속성’으로 규정한 국민대중의 망각증세를 극복하지 못하는 한 우리는 민족정기를 바로 세울 수 없다.


국민대중의 망둥이 속성으로부터 연유하는 민족정기의 실종 속에서 광복군을 때려잡던 일본군 장교의 딸이 대통령이 되고, 1997년 제15대 대선 때 북한에 대해 휴전선에서 총을 쏘아달라고 부탁했던 ‘총풍사건’의 주범이 현재 청와대 비서실장 자리에 앉아 있고, 친일파의 아들이 집권여당의 대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현상도 생겨나는 것이다.



[필진정보]
지요하 : 1948년 충남 태안 출생. 198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소설 <추상의 늪>이, <소설문학> 신인상에 단편소설 <정려문>이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지금까지 100여 편의 소설 작품을 발표했고, 15권의 저서를 출간했다. 충남문학상, 충남문화상, 대전일보문화대상 등을 수상 하였다. 지역잡지 <갯마을>, 지역신문 <새너울>을 창간하여 편집주간과 논설주간으로 일한 바 있고, 향토문학지 <흙빛문학>과 <태안문학>, 소설전문지 <소설충청>을 창간히였다. 한국문인협회 초대 태안지부장, 한국예총 초대 태안지회장, 태안성당 총회장을 역임했고, 현재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충남소설가협회 회장, ‘정의평화민주 가톨릭행동’ 공동대표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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