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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남편 가질 사람 있으면 당장 줄 게, 한 푼도 안 받구...
  • 전순란
  • 등록 2015-08-27 11: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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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8월 25일 화요일, 맑음


복덕방에서 오늘도 우리가 묵는 집을 보러온다고 안나마리아한테서 연락이 왔다. 9시 30분! 전번에 아들을 데리고 왔던 아줌마가 오늘은 딸과 남편까지 데리고 그러니까 온 가족 네 명이 다 왔다. 마음이 동하나 보다. 온 가족이 방방이 돌며 “여긴 딸 방”, “여긴 아들 방”, “식당이 커서 좋은데 화장실에 비해 부엌이 너무 좁다.”는 얘기를 나누면서 둘러본다.


나야 다음 주에 이곳을 떠나지만 사람들이 자꾸만 보러오니까 은근이 불안한 마음이다. 그러니 세 사는 사람이라면 집주인이 집을 내놓았다면서 집보러 오는 사람들이 수시로 들여다볼 경우 은근이 불안하고 은근히 화가 나고 은근히 심술도 나서 “이 집은 다 좋은데 이런저런 점이 험이고 이런저런 게 불편해요.”라면서 훼방도 놓을 듯하다.


방을 둘러보는 틈틈이 초딩 3학년쯤 되었을 딸이 자꾸 내 얼굴을 쳐다보면서 1학년쯤 되었을 남동생에게 뭐라고 수근거린다. “나 외국여자이지만 이상한 사람은 아니란다(Sono una straniera ma mica una strana)."라고 하자 깜짝 놀라 엄마 뒤로 숨는다. 우리나라에서도 세를 살다가 아이들이 딱 저만할 때에 집을 사는데... 우리가 우이동 집, 첫 집이자 마지막 집을 산 게 빵기 나이 다섯 살 때였지....






요즘은 젊은 부부들이 집 살 생각을 안 해서 여기서도 전에 비해서 집값이 30% 이상 떨어졌다는 게 주변 얘기다. 오늘 몸바로네산으로 함께 산행을 하면서 옆집 치과의사 루카가 하는 말이 집값만 떨어진 게 아니고 의사에게 오는 환자 숫자도 예전과 다르단다. 그렇다고 치아가 더 건강해진 건 아닐 테고 아파도 참고 사는 처지란다.


아침 10시 30분에 티찌아나가 운전하는 루카네 차를 타고서 몸바로네산 알페피아네티 산장까지 산행을 하였다. 왕복 세 시간 반의 거리니까 좀 아쉬운 거리지만 그래도 보스코를 걸릴 수 있어서 다행이다. 




어제 온 비로 아직도 산에는 물안개가 산허리를 감고 있고 자작나무 잎들은 아직도 빗물을 머금은 채로 햇살에 찬란한 은방울들을 흔들어 보인다. 보스코와 루카는 앞서 가고 나는 티찌아나와 길가의 신기한 돌멩이들을 주우면서 걸었다. 별것 아닌 돌에도 놀라운 찬사를 보내며 줍는 티찌아나는 모든 사물에 감탄을 보내는 순수한 소녀 같다. 내려오는 길에 정말 예쁜 돌이 있어 보스코가 루카에게 “이 돌 티찌아나에게 주우라고 알려줄까?” 했더니만 “걍 둬. 주워가도 다 버려둘 뿐이야.” 하더란다.





산장에서 남편이 장의자를 펴 몸을 눕게 해 주자 티찌아나가 하는 말. “참 착한 남편이야. 정말 사랑스러워. 누구 가질 사람 있으면 당장 줄 게 가져가. 일도 잘하고 돈도 잘 벌고 집안일도 잘 도와 준다구. 한 푼도 안 받구 공짜로 줄게 그냥 가져가라구. 더구나 치과의사니까 이빨도 공짜로 해 줄지 몰라. 술란, 너 한국에 안 필요하니? 필요없다구? 안 됐다. 그럼 딴 데 알아봐야겠구나.” 저게 이탈리아식 남편자랑이구나. 부부마다 주고받는 사랑의 농담이 따로 있구나 하며 참 듣기가 좋다.



("보스코라면 정말 데려갈 사람 없을 텐데.... 저렇게나 ‘마누라 의존증’이 심한 남자를 어떤 여자가 데려가서 고생팔자를 뒤집어 쓰겠나?" 티찌아나의 농담을 들으며 슬쩍 지나가는 속 생각 한 가닥....)


산장에서 점심을 먹고(이번엔 보스코가 쐈다) 하산하는 길에 잠간 한눈을 파는 사이에 보스코가 앞서 가는 바람에 루카가 보스코를 놓쳤다. 다혈질의 티찌아나가 “당신 당장 올라가서 보스코 찾아와! 말도 않고 어디로 갔담? 보스코 만나면 죽여버릴 테야.”라는 말을 스스럼없이 내뱉아서 깜짝 놀랐는데 여러 해 전에 어떤 산에서 함께 산행하던 친구가 “잠깐, 요기 좀 돌아보고 올 게.”하고는 영영 사라지고 몇 달 뒤 시체로 발견된 비극을 겪었단다.


하여튼 ‘이웃사촌’으로 지내다보니 스스럼없이 심한 말도 주고받고, 동서 흉도 스스럼없이 보는 처지가 되어 기쁘다. 귀국해서도 많이 생각날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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