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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루를 작은아들 곁에서...
  • 전순란
  • 등록 2015-08-25 16: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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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8월 23일 일요일, 흐리다 비옴


비가 소리 없이 하루 종일 내린다. 며칠 전 돌로미티 산골의 비는 천둥번개와 함께 소란했는데 비엘라 평야에 내리는 비는 누렇게 가을이 들어가는 벼이삭이라도 떨어뜨릴까 조심조심 얌전하기만 하다.


아침 9시에 그랄리아를 떠나 관자테에 있는 아들이 드리는 11시 미사에 참례하려고 차를 몰았다. 액설을 자꾸만 밟자 “아들이 그리도 빨리 보고 싶어?”라며 보스코가 놀린다. “당신은 열 달을 몸에 품고 몇 해를 젖 물려 키웠으니 아비로서 돈이나 벌어오고 귀엽다고 간혹 안아주며 어르기나 했던 나와는 차원이 다르겠지.”라며 어미의 심정을 인정해 주기도 한다.



빵고는 제 형과는 달라 태어날 적부터 이 엄마가 워낙 부잡해서 만삭에도 이층계단을 두 칸씩 뛰어오르며 잠시도 가만있지 않아서 산부인과 선생님의 염려대로, 8개월 조금 지나 2.4킬로 몸으로 세상에 태어났다. 어려서는 하도 약하고 병치레도 많아 너덧 살까지는 늘 배가 아프다며 밥을 안 먹어 유치원에서도 제일 작은 키였다.


어느 날 딸기를 먹고 싶다 해서 사다주었는데 맛있게 먹던 딸기를 갑자기 토하고 말았다. 때마침 빵기가 내과의사에게 예약되어 있던 터라서 큰아들 대신 작은아들을 의사에게 데려갔다. 이탈리아 의사들이 ‘성하은’인지 ‘성하윤’인지 구분할 리 만무했으니까... 그리고 내과의사의소견서를 갖고 산카밀로병원 아동병동으로 빵고를 데려갔다.


선생님은 아이의 증상을 물었고 자꾸만 배가 아프다 하고 음식을 자주 토한다고, 밥을 잘 안 먹고 몸이 마른다고 했더니만 자기 보기에 만성맹장염 같다면서 엑스레이를 찍어 보잔다. 의사의 추측대로 애의 맹장은 많이 붇고 크게 화농해 있었다.


고 작은 생명이 그 오랜 세월 동안 얼마나 고생을 했을까? 어미의 걱정과 가슴앓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수술을 하고서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또래친구들과 소풍 온 듯 놀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30년 전 일이다. 





오늘 점심은 돼지갈비 김치찌개와 녹두로 기른 숙주나물을 반찬으로 쌀밥을 먹었다. 서두르느라 다른 반찬을 챙기는 일을 잊어서 못 가져왔는데 그것도 얼마나 맛있게 먹는지 나는 먹지 않아도 배가 불렀다.



아들신부의 주일미사 강론을 듣는 기분....


빵고신부가 와선지 주일미사에 청소년들이 전보다 훨씬 많아져 보인다


11시 미사시간에는 한복을 입고 그 위에 제의를 입었는데 고유의상이 있다면서 꼭 입어보라는 본당신부님의 권유에 따랐겠지만 아이들이나 할머니들 눈에는 알록달록 중국인형으로 보이지 않았을까?


비가 내리는 눅눅한 날씨에도 집에서 가져온 시트를 빨았다. 그랄리아 집에 세탁기가 없어 이렇게 빨래동냥을 하고 다닌다. 옆집 티찌아나가 자기 집 세탁기를 쓰라지만 멀어도, 비가 와도 아들네가 편하다. 다음 주면 제네바로 떠날 테니까 올여름 마지막으로 작은아들을 보는 날이어서 저녁에는 냉면을 삶았다. 내가 만든 음식을 아들에게 먹이는 일은 정말 여자의 커다란 행복이다.




내일 새벽에 동구지방으로 순례를 떠나는 본당신부님에게 작별인사를 하러 밤 9시에 집무실로 갔다. 한 주간 동안 빵고신부에게 본당을 맡기고 안심하고 떠난다면서, 내년에도 빵고신부더러 관자테에 오라고 초빙했으니 부모님도 같이 오셔서 한여름 사제관에 살다 가시라는 친절한 초대도 하셨다.



마오로 신부님의 초대로 우리가 묵는 그랄리아 가까운(왕복 300km) 곳에 작은아들이 있어서 몇 번이나 보러오고 함께 지내고 해서 이 어미로서는 올여름 커다란 기쁨이고 소득이었다. 한국에 있으면 주변의 눈치 보느라 아들 있는 집에 찾아가고 옆방에서 자고 내 손으로 음식을 해 먹이고... 언감생심이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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