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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규) 죽음의 시학 : 피어라 수선화
  • 김창규
  • 등록 2015-11-09 09:5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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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어라 수선화


죽음이 그렇게 빨리 올 줄

봄이 아직도 수십 번은 왔다가야 하는데

소나무 밑에 다섯 사람 중 한사람의 시인이

대밭의 부는 칼바람에도 견디어 냈는데

감옥 밖의 세월은 더 어둡고 서러운 봄

수선화가 막 피기 시작했는데

그는 하늘 길을 먼저 떠났다


고정간첩단 오송회 군산제일고등학교 교사들

민주화의 봄을 노래한 역사를 이야기하고

이광웅 선생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들이 복사해서 돌려본 시집은 오장환 시인의 시집

‘병든 서울’을 보았다 

하늘의 흰 구름 담배연기 퍼져나갈 때

징역7년을 살았다


오룡동 천주교 언덕의 수선화

종로의 선술집에서 만난 선생은

내가 죽어 민중이 산다면 또 한 번 갇힐 수 있지

간첩은 무슨 막걸리 반공법 같은 것이야

그가 떠나던 날의 군산은 추웠고 

주막 길에 눈발이 날렸다


십자가 눈물로 빛나던 날

복음 교회 둔율동 아리랑 고갯길에서

이광웅 시인과 채규구 선생은 이 풍진 세상을 노래하였다

전두환, 노태우를 살인마라고 했다

박창신 신부가 만날 때 마다 막걸리를 샀다

수선화 술잔에 피기 시작하는데

대밭의 바람 소리도 시원하던 그날 밤

우리는 함께 울었다


군산 앞바다 봄바람 이어오면

수선화는 가슴 떨리게 피어 일어서는데

저기 저 푸른 바다 온통 수선화

댓바람은 수런거리고

피어라 수선화 



[필진정보]
김창규 : 1954년 충북 보은 출생으로 한신대학교를 졸업했다. 분단시대문학 동인, 한국작가회의 회원이며 시집 <푸른 벌판> 외 2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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