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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균태 신부의 오늘 미사 (15.08.09)
  • 이균태 신부
  • 등록 2015-08-10 17:03:54
  • 수정 2015-08-10 17:0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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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계속되는 더위와의 전쟁 속에서 살아남아서, 오늘도 주님의 날을 기념하기 위해 성당을 찾고, 미사에 참례하고 계시는 여러분들에게 시원한 폭포수와도 같은 하느님의 축복이 흠뻑 내리시기를 기도한다.


오늘 독서와 복음을 읽고 묵상하면서, 어린 시절 내 출신 본당인 밀양성당에서 일어났던 아주 유별한 일 하나가 생각났다. 미사 중에 골마루로 되어 있던 성당 바닥을 뜯어낸 일이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이렇다.


1926년, 초대 주임 신부님이셨던 권영조 마르코 신부님부터 시작해서 내년 2016년이 되면, 밀양성당은 본당 설립 90주년을 맞이한다. 1964년에 이르러서는 우리 복산 성당에서도 주임 신부님으로 계셨던 백응복 스테파노 신부님이 새 밀양성당을 세우셨는데, 그 성당은 밀양시장통 한가운데에 있었고, 바닥이 골마루로 되어 있었다. 그래서 미사에 참례하려면, 반드시 신발을 벗어야 했다. 겨울엔 발이 참 많이 시렸고, 여름엔 미사에 참석한 신자들의 발 냄새 때문에 이만저만 힘든 게 아니었다.


1984년경, 지금은 작고하신 김태호 알로이시오 신부님께서 주임신부님으로 계셨을 때에, 미사 중에 큰 일이 생겼다. 갑자기 미사가 중단되고, 골마루의 일부분이 뜯겨져 나갔다. 누군가가 영성체 때에, 성체를 바닥에 떨어뜨렸는데, 그 성체가 골마루 사이에 빠지는 바람에 일어난 일이었다.


떨어진 성체를 주우신 신부님께서는 먼지 가득한 그 성체를 고운 천으로 싸서는 제대 위에 올려놓으시고, 그 천으로 먼지를 닦아 내신 다음 그 성체를 몸소 영하셨다. 그리고 다시 미사가 재개되었다. 나는 태어나서 그런 일을 처음 보았다. 그 때 마침 복사를 서고 있었기 때문에 그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볼 수 있었다.


그 일을 계기로 나는 성체를 거룩하게 모시는 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첫 번째 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초등부 아이들과 함께 어린이 미사를 드릴 때에, 아이들이 떠들거나 장난을 치더라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이들이 영성체 때에 장난을 치거나, 성체를 받아 모실 때에 경건하게 성체를 받아 모시지 않고, 마치 네 맛도 내 맛도 없는 밀떡 한 덩어리 먹듯이, 그렇게 성체를 영하면, 그런 행동만큼은 엄하게 꾸짖는다. 그러한 행동들이야말로 성체를 모독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체를 모독하는 행위는 이에 그치지 않는다.


오늘 제 1독서와 복음은 한결같이 하늘에서 내려온 빵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차 있다. 결국 성체 성사에 대한 이야기이다. 빵이 미사 성제를 통해서 거룩한 분의 몸이 되고, 그 몸을 받아 모시는 사람들도 거룩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제1독서에서 언급되는 천사가 준비해놓은 뜨겁게 달군 돌에다 구운 빵과 물 한 병은 엘리야에게 힘을 주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그 음식으로 힘을 얻고, 밤낮으로 사십일을 걸어, 하느님의 산 호렙에 이르게 되었다. 복음에서 예수께서는 당신 자신을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라고 소개하시고, 자신을 먹으면, 생명을 얻게 된다고 말씀하신다.


우리는 성체성사가 단순히 빵과 포도주가 하느님의 몸과 피로 변하는 사건을 기념하는 성사가 아니라고 교리시간에 배웠다. 그 빵과 그 포도주를 먹고 마신 사람들의 몸과 피도 하느님의 몸과 피로 변하는 사건을 기념하는 성사가 바로 성체성사라고 배웠다. 이러한 배움을 토대로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그 성사를 통해서 하느님은 사람이 되고, 사람은 하느님의 생명을 받아 먹음으로써 하느님과 함께 하는 삶에 동참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미사에 참례하고 있는 우리들은 성체를 영하게 됨으로써,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성체가 된다. 그렇다면, 지금 내 옆에서 내 앞에서 내 뒤에서 나와 함께 미사를 드리고 있는 사람에게 내가 혹시라도 잘못한 게 있다면, 혹시 그에게 미운 마음을 품고 있거나, 그에 대해 좋지 않은 생각들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바로 성체가 될 그를 미워하는 것이고, 성체가 될 그에 대해 좋지 않은 생각들을 갖는다는 것이다. 이는 또한 다음의 사실도 포함한다. 성체가 훼손된다는 것은 하느님이 훼손된다는 것이며, 그 성체를 먹게 되는 사람들이 훼손된다는 것이다.


성체가 훼손되는 일은 우리들 삶의 생생한 자리에서뿐만 아니라, 이 나라 이 땅에서 너무나도 많이, 너무나도 자주 일어나고 있다. 생명이 경시되고, 사람으로 났지만, 사람으로 대접받지 못하고, 가장 기본적인 인권마저도 무시되는 일들이 모두 다 성체가 훼손되는 일이다.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 훼손당하고 있는 일들이 버젓이 일어 나고 있다.


바로 하느님이 훼손당하고 있고, 하느님이 고통을 겪고 있으며, 그 빵을 먹으며 생명을 키워나가던 피조물들이 훼손되어 가고 있는 현실을 우리는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를 모른 체 하고 살아간다는 것은 성체 모독, 성체 훼손의 범죄에 침묵으로 동의하고 있다는 것임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된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 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 사랑 받는 자녀답게 하느님을 본받는 사람이 되십시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또 우리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하느님께 바치는 향기로운 예물과 제물로 내놓으신 것처럼, 여러분도 사랑 안에서 살아가십시오 ».


이 말씀대로라면, 하느님이 고통을 당하고 있다면, 우리도 고통을 당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고통을 당하고 있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길이고, 우리가 사랑 안에서 살아 가는 길이기 때문이다. 고통 받는 피조물과 함께 아파하고, 그들과 함께 눈물을 흘리면서도, 그들과 함께 어깨동무를 하고 그들의 길을 함께 걷는다는 것, 그것이 바로 늘 피조물과 함께 계시는 하느님, 이 미사 때마다 빵이 되어 우리에게로 오시는 하느님을 받아 모시는 우리들이 걸어가야 할 길인 것이다.


살인적인 뙤약볕 쏘여 가면서 안그래도 말 잘 안듣는 몸뚱아리 끌고 이 자리에 모여 있는 이유는 오직 하나, 성체를 받아 모시고,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성체가 되기 위해서이다. 신앙인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그래서, 내가 예수가 되는 것이고, 내가 마리아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지금 여기 계시다면, 나에게 무엇을 원하실까를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성모님이 지금 여기 계시다면, 나에게 무엇을 원하실까를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예수인데, 내가 마리아인데, 내가 지금 여기 이 나라 이 땅에서, 내 삶의 자리에서 무슨 말을 해야 하는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고민하는 것이 신앙인인 것이다. 내가 예수가 되고, 내가 마리아가 되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세례식 때에 들었던 « 참 하느님을 알고, 그분이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안다는 것 »이다.


그런데 하나 물어보자: 예수를 알고, 마리아를 알고, 예수가 되어 살기 위해, 마리아가 되어 살기 위해, 내가 하고 있는 일이라는 것이 정녕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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