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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부활 제3주간 금요일 (2025.05.09) : 사도 9,1-20; 요한 6,52-59
미국 출신으로 페루에서 사목 활동을 해온 로버트 프랜시스 프레보스트(69) 추기경이 8일 제267대 교황으로 선출되었습니다. 새 교황은 즉위명으로 ‘레오 14세(LEO XIV)’를 택했습니다. 이는 새 교황이 레오 13세의 노선을 계승하겠다는 취지로 읽힙니다.
레오 13세는 1891년, 그러니까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열리기 반세기 전에 '새로운 사태'라는 사회 회칙을 반포함으로써 가톨릭 교회의 노선을 전환시킨 교황입니다. 이후 후임 교황들은 '사십주년'(비오 11세, 1931), '어머니요 스승'(요한 23세, 1061), '지상의 평화'(요한 23세, 1963) 등 연이은 사회 회칙을 반포함으로써, 레오 13세가 시작한 사회 복음화의 노선을 계승하였습니다.
반세기에 걸친 이러한 노력 끝에 가톨릭 교회를 초대 교회 시절의 복음화 열정을 재현하고자 하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열렸고, 이 공의회가 천명한 교회 쇄신의 길을 바오로 6세, 요한 바오로 2세, 베네딕도 16세 그리고 전임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어 받았습니다. 공의회 이후 재임한 네 교황의 공통 노선은 '새 복음화'입니다. 새 교황도 역시 이 노선을 따라서 가톨릭 교회를 이끌 것으로 예상합니다. 이는 부활 신앙의 바탕 위에 새로운 세계를 건설하는 노선일 것으로 조심스레 내다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 교회가 선포하는 부활 신앙은 위기에 봉착해 있습니다. 하느님을 믿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바라지도 않는 무신론자들이 세상에는 대단히 많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을 믿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고백하는 그리스도인들 가운데에도 예수님의 살을 먹고 그 피를 마시지 않는 사람들이 제법 많기 때문에 더 그렇습니다. 성체성사에 참여하는 가톨릭 그리스도인들도 예수님의 살인 성체를 영하지만 그 피인 성혈을 영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도 부활 신앙의 위기를 초래한 원인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내 살을 먹지 않고 내 피를 마시지 않으면, 너희는 생명을 얻지 못한다."(요한 6,53)
부활 시기의 전례는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셨음을 선포합니다. 그리고 이 선포는 예수 부활에서 시작된 이 복음이 우리의 부활로 이어져야 함을 강조합니다. 우리가 부활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힘만으로는 어림없고, 반드시 예수님의 힘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분은 당신의 살과 피를 우리에게 주심으로써 우리를 부활시키고자 하셨습니다. 사기지은으로 나타나는 영원한 생명은 그분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심으로써 비로소 가능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이 그 보증입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 나도 마지막 날에 그를 살릴 것이다.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요한 6,54-55)
부활 신앙의 위기 현실 앞에서 다시 한 번 우리 교회가 선포하는 신앙 진리를 근본부터 살펴볼 필요를 느낍니다. 그리스도 신앙은 창조의 신비와 부활의 신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부활은 창조를 파괴하지 않으며 완성합니다. 창조의 신비를 밝혀내고자 하는 인류가 이룩한 문명의 업적이 자연과학을 비롯한 인문 사회과학으로 그 이치를 알아내고 그 이치로 문명을 건설했다면, 부활의 신비를 선포하고자 하는 그리스도교가 이룩한 교회의 업적은 신학으로 그 이치를 알아듣고 그 이치로 신자들의 영성을 키워서 문명과는 대조적인 공동체를 건설함으로써 문명사회를 완성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창조의 신비에 바탕하여 자연을 교과서로 삼아서 이룩한 인류 문명의 결실이 자연을 극복한 인간 사회라면, 부활의 신비에 바탕하여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을 교과서로 삼는 교회 영성의 결실은 인간 사회를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좋도록 완성하는 성숙한 인간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삶은 부활 사건에서 절정에 달하였으며 이는 하느님 나라의 실체입니다. 인류가 하느님 나라에로 초대되었음을 알리신 예수님께서는 이 소식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이들도 부활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당신 자신을 내어주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래서 당신의 살을 먹고 당신의 피를 마시는 사람들이 하느님 나라의 생명, 즉 부활의 삶을 살 수 있다고 가르치셨고, 이 살과 피는 예수님 자신이며 또한 그분이 몸소 못 박히신 십자가를 뜻합니다. 그 십자가에서 그분의 몸이 못 박히셨고, 그분의 피가 흘러내렸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이 가르침을 알아듣지 못하고, “저 사람이 어떻게 자기 살을 우리에게 먹으라고 내어줄 수 있단 말인가?” 하며 투덜거리다가 떠나간 사람들이 많았지만, 사울 같은 유다인은 일련의 체험을 겪은 후에 예수님의 십자가를 뜻하는 살과 피를 먹고 마시며 소아시아 일대와 그리스에 살던 사람들에게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는 부활의 삶을 살았습니다. 열성적인 바리사이로서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던 사울이 바로 그 열성으로 복음을 선포하는 사도요 선교사인 바오로로 거듭 태어난 것입니다.
바오로는 그 자신이 겪은 그 엄청나고 극적인 체험을 숨기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부끄러운 약점인 과거의 행실을 자랑스럽게 고백하며 이 또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룩하신 업적임을 떳떳하게 밝힙니다. 이처럼 박해자였던 사울을 돌려세우시어 사도요 선교사인 바오로로 변화시키시는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 바람도 잠재우시고 풍랑도 고요하게 만드시며 물 위도 걸으시는 등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는 듯한 기적도 행하셨지만, 이는 자연의 이치를 무력화시키신 것이 아니라 그 자연의 이치도 넘어서는 하느님의 능력을 당신께서 지니고 계심을 믿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병자나 장애자도 고쳐주시고 마귀 들린 사람을 자유롭게 해방시키거나 죽었던 사람마저 살려내시는 기적도 행하셨지만, 이 역시 생명의 이치를 무력화시키신 것은 아니었고 육신적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생명의 이치를 넘어서서 영적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생명의 이치를 믿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기적은 자연의 이치를 생명의 이치로 이끌고, 육신 생명의 이치를 영적 생명의 이치로 이끄시려는 뜻에서 일으키신 것이고, 따라서 기적을 통한 복음선포의 목표는 어디까지나 자연과 생명과 영원한 생명을 모두 다스리시는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불러일으키자는 데 있습니다. 그리고 이 목표는 부활에서 그 정점에 달했습니다. 바오로의 극적인 생애는 이 점에 있어서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님에게서 인류 문명을 이끄시려는 하느님의 자비를 보면서, 또한 부활하신 예수님을 따라 성숙한 인격으로 복음을 전한 바오로에게서 예수님의 뜻을 봅니다.
오늘날 인류 문명은 놀라운 가능성과 뚜렷한 한계를 동시에 보여주고 있습니다. 의료기술과 의학이 아무리 발달해도 질병을 없애지 못하고, 교육이 보편화되고 법률이 정교하게 제정되어 있어도 범죄를 막지 못합니다. 언론 환경이 옛날과는 비교할 수도 없이 좋아졌는데도 진실이 퍼져나가기보다는 거짓과 가짜 뉴스가 판을 칩니다. 그래서 이러한 인간의 업적인 문명에 대해 그리스도교의 세례를 주는 일은, 다름 아니라 인간에게 주어져 있는 양심을 신앙으로 강화시켜서 바른 이성과 바른 의지를 갖춘 성숙한 인격자를 출현시키는 일입니다. 또한 거센 세파 속에서 상처를 입고 저항을 받으면서도 흩어져있는 채로 그래도 양심을 지키며 사람답게 살아가려고 애쓰는 착하고 의로운 개인들에게 그래도 세상은 아직 살만하다는 희망과 위로를 주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예수님의 살과 피로 주어지는 성찬의 전례에 참여하는 우리는 빵과 포도주가 어떻게 살과 피로 변할 수 있느냐고 물을 것이 아니라, 우리도 어떻게 예수님처럼 살과 피를 내어줄 수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하고 물어야 합니다. 자연의 이치에 따르고, 자연과도 같은 인간 본성에 따라 양심에 충실하려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 자연과 본성의 이치를 넘어서는 영원한 생명의 이치를 믿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자연과 본성의 차원 안에 머물러 사는 이들과 공동선의 이름으로 소통하고 연대하며 그들의 희망을 더 큰 희망으로 키워주어야 합니다.
교우 여러분!
가톨릭 교회의 새 교황이 선출됨으로써 새로운 리더십이 발휘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 한국 사회도 새로운 리더십을 선출하기 위한 대통령 선거 기간 중에 있습니다. 오는 6월 3일에 선출될 새 대통령은 실종되었던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민생과 경제를 되살리며, 안보와 국방 그리고 외교를 튼튼히 하면서 국민 여망에 따라 대한민국의 국운을 다시 상승시킬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아울러 교회와 나라의 새로운 리더십이 인류의 평화는 물론, 한반도의 평화와 민족의 복음화를 촉진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대로, 그분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는 가톨릭 그리스도인들이 영원한 생명을 얻기를 바랍니다. 그 영원한 생명의 역사적이며 사회적인 실체가 바로 평화와 복음화이리라고 믿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