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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양 한 마리
  • 이기우
  • 등록 2023-12-12 15:3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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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 제2주간 화요일(2022.12.12.) : 이사 40,1-11; 마태 18,12-14


“너희가 나의 사랑과 자비, 보호를 증거하기 위해 이곳에 성당을 세우길 바란다.”


이 말씀은 오늘 교회가 기념하는 과달루페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서 목격자 후안 디에고를 통해 말씀하신 메시지입니다. 이는 스페인 정복자들이 남아메리카 대륙 원주민을 무자비하게 살육하던 당시에 성모 마리아께서 역사상 처음으로 발현하신 사건이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1531년 12월 9일부터 12일까지 네 차례에 걸쳐 역사상 최초로 발현하신 성모님께서 내리신 메시지이며, 이로써 1492년 콜럼버스가 남아메리카 대륙을 침공한 이래 원주민 8백만 여명을 죽이는 등 스페인 가톨릭 정복자들에 의해 자행되어 온 학살이 즉시 멈추었고, 뱀의 여신을 숭배해 오던 멕시코 아즈텍 문명의 원주민 8백만 여명이 집단으로 7년여 동안 개종하는,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성모님께서 인류의 역사를 유심히 지켜보신다는 증거가 이로써 드러났고 인류의 행태가 위험수위를 넘어서면 인류 역사에 개입하실 것임을 경고하는 시대의 징표였습니다.


1531년 12월 9일 집에서 수km 떨어진 수도원 경당에서 거행되는 미사에 참례하기 위해 테페약(Tepeyac) 산을 넘던 후안 디에고(Juan Diego. 당시 57세)에게 아름다운 옷을 입은 여인이 나타났습니다. 멕시코 원주민의 모습을 한 여인은 당시 멕시코인들이 사용하던 토착어인 나후아틀어로 “나는 하늘과 땅을 만드신 하느님의 어머니, 성모 마리아다. 나는 나를 사랑하고 믿으며 내 도움을 요청하는 지상의 모든 백성의 자비로운 어머니”라고 자신을 소개하고 주교를 찾아가 자신이 나타난 장소에 성당을 세우라는 전갈을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디에고는 주교관을 찾아가 스페인 출신의 후안 데 주마라가(Juan de Zumaraga) 주교에게 전했지만 주교는 디에고의 말을 믿어주지 않고 증표를 요구했습니다.


그래서 디에고는 다시 그 장소를 찾아가기 시작했는데, 드디어 나흘 뒤인 12월 12일 테페약 산에 다시 발현한 성모님께서는 디에고에게 “자신과 처음 만났던 언덕에서 장미꽃을 모아오라.”고 명하고, 디에고가 자신의 망토에 장미를 모아오자 장미를 가지런히 다시 놓으셨습니다. 성모께서 발현한 테페약 산 정상은 꽃이 자랄 수 없는 바위 언덕이었을 뿐 아니라 그 시기는 장미가 피지 않는 한겨울이었습니다.


더군다나 그 장미는 주교의 고향인 스페인 카스티야에서만 피어나는 장미였습니다. 디에고는 다시 주교를 찾아가 망토에 담아온 장미꽃을 펼쳐보이자 장미꽃들이 바닥에 폭포처럼 흩뿌려지면서 그 망토에 성모의 형상이 나타났습니다. 이를 본 주교는 즉시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성모님의 메시지를 믿지 않은 자신을 반성하고 용서를 구하는 기도를 바쳤습니다. 당시의 멕시코에는 인쇄 기술이 없었고 더욱이 천에 사람의 얼굴을 그릴 수 있는 사람도 없었으며, 또한 후안의 망토는 선인장 실로 짠 거친 직물이어서 섬세한 그림을 그려 넣을 수도 없었는데 성모님께서는 그 망토자락에 실물처럼 섬세하게 찍혀서 나타나셨던 것입니다.


과달루페의 성모 발현에서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성모님께서 스페인 백인이 아니라 현지 원주민의 모습으로 발현하셨다는 점이었고, 그것도 아기를 잉태한 여인의 모습으로 발현하셨다는 점이었습니다. 또 성모 발현 장소인 테페약 산 정상은 원주민들이 숭배하던 아즈텍 토난친(Aztec Tonantzin) 여신의 신전이 있던 곳이었기 때문에 성모발현 이후 전 멕시코의 원주민들이 토속신앙을 버리고 세례를 청했고, 인신을 공양하는 우상숭배 풍습에 젖어 있던 죄인들은 줄을 지어서 고해성사를 청했습니다.


또한 과달루페 성모가 허리에 맨 검은 띠는 임신한 여성을 나타내는 원주민들의 전통이었는데, 이는 스페인 정복자들이 무차별로 죽이던 생명을 수호하라는 강력한 메시지로 이해되었습니다. 멕시코시티 테페약 산에서 발현한 성모님께서는 자신을 ‘과달루페(Guadalupe)의 영원하신 동정 마리아’로 불러주길 원했습니다. ‘과달루페’는 ‘뱀을 물리친 여인’이라는 뜻입니다.


선교를 명분으로 내세운다고 해서 학살이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무조건 신자가 늘어나는 일이 하느님께 영광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따라서 남아메리카 대륙 정복자들이 자행하던 대량 학살에 대해 항의하기는커녕 이를 기화로 선교하려던 스페인 교회, 이러한 선교활동으로 결과적으로 학살을 정당화시켜준 스페인 교회를 꾸짖지도 못했던 교황청을 대신하여 성모님께서 직접 나서셔야 했던 이 발현 사건은, 다시는 이렇게 교회의 예언직이 온통 마비되어 버린 사태가 발생해서는 안 된다는 준엄한 꾸짖음인 동시에 모든 시대 모든 지역의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에게 복음에 대한 기억을 상기시켜 주고 사랑의 교회에 대한 상상력을 회복시켜 주시려던 메시지였습니다.


발현은 부활의 징표입니다. 예수님이든 성모 마리아든 부활하신 존재만이 사람들 앞에 발현하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발현을 목격하고 그 메시지를 듣도록 선택된 사람 이외에는 발현 체험이 불가능합니다. 나머지 사람들은 목격자의 증언을 통해서만 메시지를 들을 수 있고 이를 믿고 안 믿고는 전적으로 그들의 자유와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발현은 부활 신앙에 대한 강력한 희망의 근거이면서도 동시에 믿음에 관한 도전이 됩니다.


과달루페 발현(1531년) 이후 프랑스 파리 뤼드박(1830년), 프랑스 라 살레뜨(1846년), 프랑스 루르드(1858년), 프랑스 풍맹(1871년), 아일랜드 녹(1879년), 포르투갈 파티마(1917년), 벨기에 보렝(1932년), 벨기에 바뇌(1933년), 필리핀 리파(1948년) 등 근현대사에서 일어난 모든 성모 발현이 다 그러했습니다.


그리고 성모 마리아께서 발현하시지 않으셨어도 성모 신심이 돈독한 신자들이 기도하는 곳마다 기적들이 일어나서 해마다 많은 신자들이 순례하러 오는 성지들도 많은데, 중국 서산, 스리랑카 마두, 인도 바일란카니, 파키스탄 마리아마바드, 방글라데시 노바이 봇톨라, 베트남 라방 등 입니다. 이 모든 성모 발현과 기적의 원형은 카나의 혼인잔치에서 보여주신 성모 마리아의 역할입니다. 그 잔치에서 마리아께서는 혼인잔치 도중에 포도주가 떨어져서 난처해질 뻔한 혼주를 대신해서 예수님께 기적을 청하셨는데, 이 때에 하신 말씀이 이러했습니다: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요한 2,5). 이 말씀이 모든 성모 발현과 기적에 공통된 메시지입니다.


사실 예수님의 말씀 즉 복음 메시지를 존중하지 않고 그와 정반대로 죄악이 저질러지고 불신과 의심이 팽배한 위기 상황에서마다 성모 마리아께서는 발현하셨습니다. 이는 십자가 죽음 사건 직후 역시 불신과 공포, 의심과 불안 속에서 숨어 지내던 제자들을 찾아가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발현하신 일과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자 눈앞에서 예수님을 목격한 제자들은 용기 백배하여 믿음을 되찾았고 스승의 가르침을 확신하고는 신자들에게 기적들도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굳은 확신으로 복음을 선포하는 사도가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열두 사도들은 요한만 제외하고는 모두 일생을 바쳐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하였고, 요한도 백세 넘는 늙은 나이까지 에페소를 비롯한 초대교회에서 복음을 전하였으니, 이들은 예수님을 위하여 일생과 목숨을 바쳐서 복음을 증거한 셈이라고 하겠고 그래서 이들은 ‘부활의 증인들’(사도 4,33)로 불리고 있습니다.


십자가가 강생의 절정이라면, 부활은 강생의 완성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요한 11,25-26)이라고 보증하셨습니다. 부활은 본시 하느님 곁에서 태초 이전부터 계시던 분이 원대복귀하신 것이므로, 인간의 구원은 부활 때에 이르러 완성됩니다(1코린 15,35-58 참조). 강생의 신비가 지닌 의미는 물론, 십자가의 영성이 지니는 가치 역시 부활의 빛에 의해 조명될 때라야 비로소 온전히 밝혀집니다.


그러므로 오늘 독서에서 이사야가 내다보는 미래는 모든 이들이 참여하는 부활의 현실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광야에 주님의 길을 닦고, 사막에 길을 곧게 내며, 골짜기가 메워지고 산과 언덕이 낮아지는 꿈은 부활의 사회적 메시지를 시적으로 묘사한 말씀입니다. 거친 곳이 평지가 되고 험한 곳은 평야가 됨으로써 드러나는 주님의 영광 역시 모든 사람이 부활의 광채를 보게 되는 벅찬 영적 현실을 묘사한 말씀입니다. 이것이야말로 교회가 전해야 하는 기쁜 소식입니다.


그런데 만일 이 부활의 복음을 듣지 못하고 도리어 소외되거나 상처받은 이들이 있다면 부활 신앙을 믿는 이들은 당연히 그들을 찾아가서 감싸안고 위로해 주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공생활은 대부분 이런 부활의 행동 일색이었고, 이것이 오늘 복음에 ‘잃어버린 양 한 마리의 비유’로 발설된 것입니다. 부활의 메시지가 지닌 사회적 영향력은 부활의 행동으로 더욱 강화됩니다. 모든 종교적 진리가 사회적 영향력을 지니게 되는 조건이 바로 이것입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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