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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나라의 행복 누리기 위한 교회 사용설명서
  • 이기우
  • 등록 2023-10-27 16: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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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30주일(2020.10.29.) : 탈출 22,20-26; 1테살 1,5ㄴ-10; 마태 22,34-40

 

말씀의 흐름과 초점


오늘 미사의 말씀은 모세 이래 이스라엘 백성이 지켜온 율법과 여러 예언자들이 전한 예언을 종합하신 예수님의 가르침, 즉 하느님 사랑과 인간 사랑의 계명에 초점이 있고 그 목표는 하느님 나라의 참된 행복으로서, 이것이 우리가 교회 생활을 하는 이유입니다. 


이방인, 과부, 고아는 그 당시 대표적인 사회적 약자였는데, 이들을 보호하는 일이 하느님을 섬기는 일만큼 중요했습니다. 하느님께서 친히 내리신 명령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한동안 잊혀졌던 이 점, 즉 약자를 보호하는 일이야말로 하느님을 섬기는 일임을 예수님께서 오늘 복음에서 일깨워 주셨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다. 둘째도 이와 같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온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 이 두 계명에 달려 있다”(마태 22,37-40). 이것이 종교의 역사에서 유다교로부터 그리스도교가 그 정체성을 획득하게 된 분수령입니다.


오늘 제2독서는 테살로니카 공동체의 교우들이 사도 바오로의 복음 선포를 듣고 나서 우상들을 버리고 하느님께 돌아온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는데, 이는 그들이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일을 한 가지 계명으로 삼고 살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이렇듯 오늘 말씀의 흐름은, 하느님께서 사회적 약자를 우선적으로 이웃으로 선택하는 정신으로, 그 이웃을 하느님을 섬기듯이 진정성 있게 사랑하라고 말씀하셨고, 이 사랑을 외면하는 우상숭배로부터 하느님께로 돌아옴으로써 그리스 지역의 복음화가 시작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십계명 上三戒(1-3계)


십계명은 일종의 권리장전입니다. 십계명을 받기 전에 이스라엘 백성은 ‘히브리들’이라고 불리며 이집트에서 종살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집트 사람들은 태양신을 섬기면서 사자의 신체에 사람 여성의 머리, 그리고 새의 날개와 뱀의 꼬리가 달린 스핑크스 같은 상상 속의 동물의 상도 만들어 놓고 이것이 파라오가 묻힌 피라밋을 수호하는 신이라며 숭배했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은 신을 섬기는 신성한 예배를 드려야 하니 천하게 노동할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히브리들에게만 강제로 노동을 시켰습니다. 그 노동의 강도가 워낙 센 고역이었기 때문에 모세와 히브리 백성은 휴식을 요구하며 자신들이 섬겨온 하느님께 예배를 드리겠다고 요구한 데에서 이집트 탈출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 예배를 드린다는 것은 인간답게 노동하며 휴식할 권리와 관련되어 있었습니다. 엿새 동안 일하고 이렛날에는 노동을 쉬고 하느님께 예배를 드리라는 안식일 계명이 그래서 생겨났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히브리들을 노예로 부리던 이집트 사람들이 자신들은 그 어떠한 노동에도 종사하지 않는 핑계로 짐승의 상 앞에서 우상 숭배한 것을 배격하시면서, 그 어떠한 상도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엄하게 명령하셨습니다. 그리하여 하느님께 예배드릴 권리가 제1계명으로, 상을 만들어 우상을 숭배하지 않을 권리가 제2계명으로, 그리고 일주일에 하루는 쉬면서 하느님께 예배드릴 권리가 제3계명으로 규정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인류 역사 최초로 노동의 존엄성과 안식의 권리를 천명한 것으로서, 오늘날 인류는 그 혜택을 무상으로 받고 있습니다. 십계명의 첫 세 계명, 즉 상삼계(上三戒)는 하느님 사랑에 대한 계명입니다.


십계명 下七戒(4-10계)


또한 이집트에서는 나이가 든 노인도 쉬지 못하고 강제로 노역을 해야 했기에 해방된 이스라엘에서는 노인의 쉴 권리와 더불어 젊은 시절에 힘든 노동을 하며 자녀들을 키운 부모를 공경해야 한다고 하느님께서 가르치셨고 이것이 부모를 공경하라는 제4계명입니다. 


그리고 이집트에서 히브리들은 노예였기에 인권을 보장받지 못했고 감독관들의 자의대로 착취당하다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함부로 목숨을 빼앗았습니다. 그렇게 억울하게 당하더라도 히브리 노예들은 항변조차 할 수 없었기에 하느님께서 해방된 이스라엘에서는 생명을 존중해야 한다고 가르치셨는데 이것이 사람을 죽이지 말라는 제5계명입니다.


이집트에서 히브리 여성들, 특히 젊은 여성들은 감독관들의 노리개감이었습니다. 아무런 의사표시도 할 수 없이 히브리 여성들은 성적으로 희롱당하고 성적 착취를 당하기 일쑤였습니다. 그 때문에 하느님께서 해방된 이스라엘에서는 여성에게 성적인 자유와 정절을 지킬 권리를 존중해야 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이 규정이 간음하지 말라는 제6계명입니다. 


이집트에서 히브리 노예들은 아무리 힘든 노역을 해도 재산을 모을 수 없었습니다. 노동의 양과 상관없이 먹고 살기에 빠듯한 최소한도의 식량만 배급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는 노동하는 이들의 임금을 착취하는 도둑질이었습니다. 더 가진 자가 권세를 부려 가지지 못한 자의 것을 훔치는 도둑질입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해방된 이스라엘에서는 다른 사람의 소유를 존중해야 한다고 가르치셨고 이것이 도둑질을 하지 말라는 제7계명입니다. 


이집트에서 히브리 노예들은 아무리 억울한 일을 당해도 정당한 재판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이집트인들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재판이 이루어졌기 때문이고, 이집트인들끼리 거짓증언을 해 가며 히브리들을 억울하게 죄인으로 낙인찍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하여 하느님께서 해방된 이스라엘에서는 재판에서 거짓 증언을 하지 말며 오직 진실한 말만 하도록 가르치셨습니다. 이것이 제8계명입니다. 


그 다음 제9계명과 제10계명은 7계명을 더욱 강조하고자 덧붙여진 계명입니다. 그 당시에는 아내도 남편에게 제일 소중한 재산으로 여겼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해방된 이스라엘에서는 남의 아내도 또 남의 재물도 탐내지 말아야 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이집트에서는 히브리들의 재산은 이집트인들에게 쉽사리 빼앗기기 일쑤였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십계명의 나머지 일곱 계명 즉, 하칠계(下七戒)는 이웃 사랑에 대한 계명입니다.


십계명에서 산상설교에로!


이상과 같이 십계명은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느라고 감독관들의 죄악에 억울하게 희생당하며 인권을 유린당하던 히브리들이 이제 해방된 이스라엘에서 자유롭게 살아가도록 하느님께서 모세를 통해 가르치신 최소한의 권리장전입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산상설교의 가르침을 통해서 더욱 적극적으로 나아가야함을 강조하셨습니다.


그 최대한의 목표로서 하느님 나라의 참된 행복 여덟 가지를 제시하신(마태 5,3-12) 예수님께서는 이 행복을 누리기 위하여 제자들로 하여금 서로 사랑하며 선행을 하라고 가르치셨고, 그 사랑과 선행으로 참된 행복을 누림으로써 하느님을 드러내 보여주어야 세상 사람들이 비로소 하느님을 알게 될 것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마태 5,14-16). 우상숭배를 금지하고 그 어떠한 하느님의 상도 만들지 말라던 십계명의 가르침이 하느님 나라의 참된 행복으로 비로소 본 뜻을 얻게 된 것입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예수님께서는 살인, 간음, 거짓말 등을 금지한 십계명에 그치지 말고 더욱 적극적으로 사랑과 선행을 행하면서 행복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가르치셨습니다(마태 5,17-48). 예수님께서는 인간이야말로 하느님을 닮은 존재이므로 보이지 않는 하느님께 대한 예배는 보이는 인간에 대한 존중으로 나타나야 한다는 뜻에서,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레위기 19,18을 상기시키신 것입니다. 사랑과 선행을 통한 참된 행복, 이것이 산상설교로 밝혀진 우상숭배 금지와 하느님 숭배의 진실입니다.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일


인간을 존중하고 사랑함으로써만 우리는 하느님 사랑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그 인간 사랑이 가정의 질서, 생명의 질서, 성의 질서, 경제의 질서, 언론과 사법 질서 등 인간 생활의 모든 분야에서 드러날 때에 우리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삶을 살아가면서 사랑의 문명을 이룩하게 되는 것이며, 이로써 우리가 참으로 하느님 안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약의 예언자들은 불공정하고 불의한 세상을 두고 우상을 숭배하는 소행이라고 질타했습니다. 


특히 이 불공정과 불의로 말미암아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크게 희생당하는 사회적 약자들의 권리를 보호해주어야 한다고 강조하였습니다. 그 약자들의 대표적인 사람들이 이방인이었습니다. 사실 이스라엘 백성도 이집트에서는 이방인이었음을 상기시켜 주는 오늘 첫째 독서의 취지를 예언자들은 매우 소중하게 여기고 계승하였던 것입니다. 


인간 존엄성과 하느님을 믿을 자유


그런데 이러한 성서의 진실이 보편적으로 공유되는 데에는 오랜 세월이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유감스럽게도 자유롭고 평등하며 연대해야 할 인간 존엄성의 진리를 시민들이 혁명을 일으켜 외침으로써 비로소 실현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오늘날에는 국제연합에서 세계인권선언으로 회원국들이 합의하여 전 세계에 반포하였고, 대부분의 문명국가에서 이를 헌법에 규정하여 보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진리가 교회 안에서가 아니라 교회 바깥에서 시민혁명을 통해 이루어지다보니 교회가 수호해온 종교와 신앙의 자유마저 상대화되고 말아서 인간 존엄성 진리에 따른 권리와 의무의 균형이 무너지고, 자유와 책임의 조화도 깨져버렸습니다. 


물론 아직도 신장되어야 할 인권의 영역이 남아 있기는 합니다. 즉 정치적 인권뿐만 아니라 경제적, 사회적 그리고 문화적으로도 인권이 신장되어야 할 바는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도 인간 존엄성을 가능하게 한 가치 및 원리로서의 하느님이 잊혀진다면 인간 존엄성 진리에 따른 권리와 의무의 균형, 자유와 책임의 조화를 이룩하기는 어려워집니다. 


하느님을 믿지 않는 이들이 너무나 많고 믿는 이들 안에서도 그 열성이 날로 식어가고 있는 작금의 현실이 그래서 우려스럽습니다. 그러나 신앙 박해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참으로 어렵사리 얻은 종교 및 신앙의 자유가 남용되고 있는 이 현실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본시 종교와 신앙의 자유는 믿는 이들이 목숨 바쳐 얻어낸 인간 존엄성의 근거로서, 믿지 않을 자유와 맞먹는 가치가 결코 아닙니다.


믿는 자유가 발휘되어야 할 영역


그래서도 믿는 이들이 더욱 열성적으로 하느님을 증거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이 증거의 활동은 대외적으로는 불균형하고 부조화스러운 사회 현실이 빚어내는 온갖 부조리와 사회악을 직시하는 데에서 시작하지 않을 수 없고, 대내적으로는 교회가 더욱 복음적으로 쇄신되도록 노력하는 데에서 시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회 현실에서 발견되는 시대의 구조악에 대해서는 상식적으로야 죄를 저지른 자들이 회개해야 마땅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죄인들이 죄를 저지른 줄도 모르거나 또는 애써 거짓말로 죄를 감추려들기 일쑤이기 때문에 믿는 이들이 이 죄를 보속하는 것으로써 회개하고 믿음을 증거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세상의 죄를 없애시기 위해서 구세주께서 세상에 오셔야 했던 이유, 우리가 구세주를 따라 살아야 하는 대속(代贖) 신앙의 이유와 근거가 여기에 있습니다. 


즉, 믿는 이들이 사회적 애덕을 실천하기 위한 관찰-판단-실천의 삼 단계에서 실천은 그저 공동선의 한 일부만을 지키는 데서 그치지 않고 최고선을 지향할 수 있고 또 지향해야 하며, 그러할 때 세상에는 아직 사회악이 판을 치고 공동선이 위협받고 있어도, 최고선을 지향하며 실천의 희생을 봉헌하는 우리는 이로써 하느님과 합일을 이룰 수 있는 것이고, 이것이야말로 예수님께서 가르치시고 당부하신 바, 근본적인 회개입니다. 


우리가 교회입니다


서로 섬김으로써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유언은 복음적인 가톨릭 민주주의를 이룩함으로써 교회를 쇄신하라는 길이며, 이는 성직주의를 공동합의성으로 극복하고, 영적 세속성을 신앙 감각을 존중함으로써 극복하는 일입니다. 이 근본적인 교회론적 회심을 거치면, 하느님을 흠숭하되 하느님께로부터 나오는 최고 가치, 즉 사랑과 진리, 자유와 평화를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구체적인 사회 현실에서 온 하느님 백성이 증거하고자 함께 나아갈 수 있게 됩니다. 


이는 결국 사회적 약자들을 우선적으로 보호하는 십자가를 짊어지고 역사의 수레바퀴를 밀고 나아갈 수 있게 하는 일입니다. 이것이 하느님 나라의 참된 행복을 누릴 수 있게 해 주는 교회 사용 설명서입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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