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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인 잔치의 예복’은 가난한 이들에 대한 사랑과 사회정의
  • 이기우
  • 등록 2023-10-14 23: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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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8주일(2023.10.15.) : 이사 25,6-10ㄱ; 필리 4,12-14.19-20; 마태 22,1-14


말씀의 흐름과 초점


일찍이 이사야 예언자는 인류의 미래를 이렇게 내다보았습니다. “만군의 주님께서는 이 산 위에서 모든 민족들을 위하여 살진 음식과 잘 익은 술로 잔치를, 살지고 기름진 음식과 잘 익고 잘 거른 술로 잔치를 베푸시리라. 그분께서는 이 산 위에서 모든 겨레들에게 씌워진 너울과 모든 민족들에게 덮인 덮개를 없애시리라. 그분께서는 죽음을 영원히 없애 버리시리라. 주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의 얼굴에서 눈물을 닦아 내시고 당신 백성의 수치를 온 세상에서 치워 주시리라. 정녕 주님께서 말씀하셨다”(이사 25,6-8).


예수님께서도 하늘 나라를 혼인잔치에 비유하시면서 모든 민족이 하느님께 초대된 잔치 손님임을 가르치셨습니다. 손님은 마땅히 혼인잔치에 어울리는 예복을 입고 잔치에 입장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예복도 입지 않고 마구잡이로 잔치상을 받으려는 무뢰한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죄다 쫓겨났습니다. 부르심을 받은 이들은 많았지만 막상 뽑힌 이들은 적었습니다.


하늘 나라의 혼인잔치에 참석할 손님들을 부르러 선교사로 나선 사도 바오로는 이 무뢰한들한테 환난과 고초를 많이 겪었지만, 그는 비천하게도 풍족하게도 살 줄 알았기에 하느님께서 주시는 힘을 듬뿍 받아서 기운차게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오늘 연중 제28주일이어서 가려지기는 했지만 본래는 15세기 스페인에서 사도 바오로에 못지않게 오직 하느님으로만 만족하며 살았던 봉쇄수녀원의 관상수도자가 하늘나라의 잔치에 입장한 날입니다. 아빌라의 데레사로 알려진 그는 자신의 일기장에 이런 메모를 남겼습니다.


아무것도 너를 슬프게 하지 말며

아무것도 너를 혼란케 하지 말지니

모든 것은 다 지나가는 것 다 지나가는 것

오 하느님은 불변하시니 인내함이 다 이기느니라

하느님을 소유한 사람은 모든 것을 소유한 것이니

하느님만으로 만족하도다

네 소원이 무어뇨 네 두려움은 무엇이뇨

네 찾는 평화는 주님께만 있으리

주님 안에 숨은 영혼이 무얼 더 원하리

오 사랑하고 사랑하여 주님께 모든 사랑 드리리

주님만을 바라는 사람은 모든 것을 차지할 것이니

하느님만으로 만족하도다


무뢰한 자들이 하늘 나라 잔치에 초대받은 역사


인류는 지구라는 별의 곳곳에 흩어져 살면서 여러 문명을 일으켰고 그 안에서 수없이 많은 나라가 생겨나고 사라졌습니다. 원시 시대로부터 인류는 막연하나마 죽음 후의 내세를 믿었고 따라서 사람이 죽으면 동물처럼 내버려두지 않고 땅에 묻는 매장 풍습을 발달시켰습니다. 


이집트 문명을 일으킨 파라오들은 죽은 후에 다시 살아날 것을 희망하면서 왕위에 오르는 즉시 자신의 무덤을 거대한 피라밋으로 만들기도 했습니다. 다시 살아나려면 영혼의 거처인 육신이 썩지 않고 있어야 한다고 믿고는 내장을 모두 걷어낸 미이라를 만들기도 했고 다시 살아났을 때 부릴 신하와 하인이 있어야 한다고 믿고는 산 사람들을 함께 순장시키기도 했습니다. 이 모두가 인간 세상을 다스리는 하느님이 계시다고 믿어온 흔적들입니다. 우리 민족도 사람이 죽으면 반드시 머리를 동쪽으로 하여 매장을 했는데 이는 해가 떠오르는 동쪽에 하느님께서 오신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원시 시대부터 인류가 막연하게 믿어온 하느님께서는 그 많은 민족 가운데 단 하나의 민족, 즉 이스라엘 민족에게 당신을 드러내셨습니다. 달리 보자면 이스라엘 민족 중의 한 사람인 아브라함만이 하느님께서 건네시는 말씀을 알아 들었습니다. 믿음의 조상으로 일컬어지는 아브라함은 하느님께 향한 신앙을 인격적으로 여러 사건들을 통해서 체험했고 그 신앙은 자신의 아들 이사악에게 충실히 전수했고, 이사악은 야곱에게 역시 충실하게 전수했으며, 열두 아들과 한 딸을 낳기까지 온갖 시련을 겪은 야곱 역시 자신의 아들 딸들에게 하느님 신앙을 충실히 전수함으로써 오늘날 창세기라는 성경책을 남아있게 했습니다. 창세기는 세상과 인류의 기원을 비롯하여 죄악의 기원까지도 알려주고 있지만, 아브라함 이후 하느님의 집안이 생겨나게 된 내력을 소상하게 밝혀주고 있습니다. 


이에 비해 탈출기는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의 하느님께서 어떻게 당신의 백성을 일으키셨는지를 알려줍니다. 이 책에는 인류 역사상 전무후무하게 극적이고도 역동적인 역사 드라마가 펼쳐져 있습니다. 야곱의 신앙을 충실히 받아들였던 요셉이 형제들의 질투로 이집트에 팔려가지만 그의 성실함을 눈여겨본 파라오 경호대장이 자신의 심복으로 삼게 되고 그런데 또 그 경호대장 부인의 꼬임에 빠져 억울한 옥살이를 하게 되지만 요셉은 그 어느 순간에서도 하느님을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하느님의 섭리가 자신을 보호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과연 그는 머지 않아 옥살이에서 풀려났을 뿐만 아니라 파라오의 눈에까지 들어 이집트 재상의 자리에까지 오르게 됩니다. 그렇게 되자 그는 아버지 야곱과 자신의 형제들을 불러 극적으로 화해하고 이집트에서 가장 비옥한 땅 중의 하나인 고센 땅에 자리를 잡게 하지요. 이 땅에서 야곱의 후손들은 근 사백 년이 넘는 기간에 육십만 명이 넘는 큰 무리로 늘어났습니다. 


요셉은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지혜로 이집트의 기근에 대비하여 파라오의 창고를 넉넉하게 만드는 공을 세웠지만 이를 잊어버린 후대의 파라오에 의해서 야곱과 요셉의 후손들은 이집트의 노예로 전락하고 맙니다. 만일 적군이 이집트에 쳐 들어올 때 야곱과 요셉의 후손인 히브리들이 적과 내통하여 이집트를 치려고 하면 큰 일이라는 근거 없는 의심 때문이었습니다. 


역대 파라오들은 히브리들의 노동력을 이용해서 피라밋과 같은 거대한 석조건축물을 수도 없이 세워 왕궁과 도시를 장식했습니다. 그 바람에 고대 이집트의 천문학과 기하학, 수학과 건축술이 발달한 것도 사실이지만, 그 속에는 히브리 노예들의 눈물과 한숨으로 얼룩진 인권 침해가 들어 있었습니다. 노예살이하던 히브리들의 울부짖음을 들으신 하느님께서 이들을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끌어내기 위해서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당시 모세는 미디안 광야에서 양치는 목동이었지만, 전에는 이집트 왕실에서 최고의 엘리트 교육을 받으며 왕자로 자라난 몸이었습니다. 왕자로 자라면 파라오의 후계자로까지 뽑히던 그가 우연히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면서 왕자의 신분을 포기하고 미디안으로 숨었습니다. 탈출기의 기록을 분석해 보면, 모세가 이집트에서 왕자로 자라나 활약하던 기간이 사십 년, 미디안 광야에서 목동으로 살던 기간이 또한 사십 년입니다. 


그래서 여든 살이 되던 해에 그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다시 이집트로 건너갔습니다. 한때는 자신과 왕위를 놓고 경쟁하던 파라오에게 그는 지팡이 하나만 들고 가서 하느님의 명령을 전달했지만, 완고한 파라오는 고분고분하게 듣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결국 열 가지에 이르는 재앙으로 위협한 끝에 히브리들은 홍해를 마른 발로 건너서 미디안 광야로 탈출하게 되었고 호렙 산에서 하느님과 계약을 맺고 그 증표로서 십계명을 삶의 지침으로 받았습니다. 


사막에는 길이라는 것이 따로 없습니다. 그래서 인도자가 꼭 필요합니다. 인도자를 사람들이 따라가다 보면 그 것이 길이 됩니다. 십계명은 하느님의 백성이 된 이스라엘이 따라 걸어야 할 정신적인 길이었습니다. 여기에 담긴 계약 정신을 오늘 독서에 나오는 이사야 예언자가 이렇게 표현하였습니다. “만군의 주님께서는 이 산 위에서 모든 민족들을 위하여 살지고 기름진 음식과 잘 익고 잘 거른 술로 잔치를 베푸시리라. 그분께서는 이 산 위에서 모든 겨레들에게 씌워진 너울과, 모든 민족들에게 덮인 덮개를 없애시리라.” 즉, 십계명을 잘 지켜 하느님의 빛을 만방에 비춤으로써 이스라엘 민족을 도구로 삼아 인류를 구원하시리라는 청사진이었습니다. 


이렇게 이스라엘 민족은 하느님의 선택과 사랑을 받았습니다. 이 세상 어느 민족의 역사에서도 볼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이사야뿐만 아니라 모든 예언자들이 이스라엘 민족에 대한 하느님의 선택과 사랑을 상기시켜 주었습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의 지도자들과 백성이 배은망덕하게도 하느님의 선택을 곡해하고 그분의 사랑을 저버린 일은 인류 역사상 최대의 수수께끼입니다. 


혼인잔치의 비유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역사의식을 담아 혼인 잔치의 비유를 당시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들인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늘 나라는 자기 아들의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에 비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임금은 혼인 잔치에 초대받은 이들을 불러 모았으나 그들은 오려고 하지 않았다는 언급에서 우리는 한 마디로 간추린 이스라엘의 역사를 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하느님의 선택을 받았으나 하느님의 사랑어린 초대를 거절하였습니다. 거절하였을 뿐만 아니라 임금의 초대를 전하러 간 종들로 비유되는 예언자들마저 붙잡아 때리고 죽였습니다. 


이런 절망스런 상황에서 예수님께서는 병든 이들을 고쳐주시고 마귀 들린 사람에게서 마귀를 쫓아내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가시는 곳마다 무언가 도움을 받고 싶은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 들었습니다. 그것이 비유에서, “아무나 만나는 대로 잔치에 불려온 사람들”(마태 22,10)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뜻은 하느님의 선택과 사랑을 반영하고자 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하느님의 사랑을 받기만 해서는 안 되고 받은 사랑을 나누어야 하고, 특별히 더 가진 것이 없는 이들에게 반드시 그 사랑을 나누어야 한다는 조건이 철칙처럼 붙어있었습니다. 그것이 혼인 잔치에 초대받은 사람이 반드시 갖추어 입어야 할 ‘예복’(마태 22,11)이었습니다. 가난한 이들에게 하느님의 사랑을 나누어주는 데는 자기 희생이 수반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가난한 이들을 위한 사랑은 십자가이기도 합니다. 이 십자가를 짊어지지 않고서는 예수님을 따를 수 없다고 그분도 못 박아 말씀하셨습니다. 


예복을 입지도 않고 혼인 잔치에 참석한 사람이 인정사정 볼 것 없이 쫓겨나듯이, 가난한 이들과 약한 이들에게 자기가 받은 하느님의 사랑을 베풀지 않았던 사람들은 하늘 나라에서 쫓겨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부르심을 받은 이들은 많지만 정작 마지막까지 선택된 이들은 적다는 말씀이 현실이 된 것입니다. 


혼인잔치에 예복을 갖추어 입기


이어지는 교회의 역사에서 그리스도교는 마치 구약의 이스라엘 민족이 그러했듯이, 분열과 갈등의 질곡을 겪었습니다. 정교회와 프로테스탄트교회가 갈라져 나갔고 공공연히 무신론을 주장하는 공산주의가 그리스도교 문화권 안에서 태동하여 인류를 분열시켰습니다. 이제는 지구상에서 공산주의로 인해 분열된 마지막 국가가 우리나라입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 가톨릭 교회는 정통 노선을 걸어왔다고 자부하고 있지만, 갈라진 교파들과 공산주의 세력집단은 참이스라엘로서 부르심을 받은 가톨릭교회를 하느님께로 돌아서게 하는 회초리 구실을 했습니다. 무신론을 내세워 공산주의를 신봉하는 집단에 대해서는 물론, 자본과 권력을 우상으로 섬기는 집단들에 대해서 한국의 가톨릭 신자들은 이중으로 정통 신앙을 실천함으로써 증거해야 할 역사적 초대를 받고 있습니다. 


이 역사적 소명을 실현함에 있어서 우리 가톨릭 신자들이 반드시 차려 입어야 할 ‘혼인 잔치의 예복’은 가난한 이들에 대한 사랑과 사회정의입니다. 이를 위해서 어떻게 십자가를 짊어져야 하는지 그 할 태도에 대해서 오늘 둘째 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이렇게 권고하고 있습니다. “비천하게 살 줄도 알고 풍족하게 살 줄도 알아야 하며, 우리에게 힘을 주시는 분 안에서 우리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으로 귀결된 이스라엘의 실패는 세계 평화의 마지막 고리가 되어 있는 우리 한민족 안에서 한국 가톨릭 그리스도인들이 ‘예복’을 제대로 갖추어 입음으로써 민족의 복음화라는 혼인 잔치로 극복되어야 하리라고 믿습니다. 


그날에 이렇게들 말하리라.

“보라, 이분은 우리의 하느님이시다.

우리는 이분께 희망을 걸었고 이분께서는 우리를 구원해 주셨다.

이분이야말로 우리가 희망을 걸었던 주님이시다.

이분의 구원으로 우리 기뻐하고 즐거워하자.

주님의 손이 이 산 위에 머무르신다”(이사 25,9-10).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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