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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하는 법
  • 이기우
  • 등록 2023-10-10 20:2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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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7주간 수요일(2023.10.11.) : 요나 4,1-11; 루카 11,1-4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당신을 닮도록 창조하셨으므로, 그들이 당신과 소통하기를 간절히 원하십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으로 삼으신 유다인들이 왕정이 어느 정도 안정되자 하느님과 소통하지 않아도 자신들은 구원될 수 있으리라는 자만심에 빠져 있었습니다. 요나 예언서는 이런 터무니 없는 선민의식에 사로잡혀 있던 유다인들의 의식을 계몽하고자 쓰여졌습니다.


니네베로 파견된 요나가 보여준 태도는 매우 변덕스러웠습니다. 선교사로 파견된 사람이 기껏 아주까리 잎사귀가 뜨거운 햇볕을 가려주면 좋아하다가 벌레들이 그 잎사귀를 갉아먹어 다시 뜨거운 햇볕을 받게 되면 짜증을 부렸습니다. 요나는 선교사의 모범으로서가 아니라 반면교사로 제시된 셈입니다. 


유다인들의 편협한 선민의식은 바로 저 앗시리아에 의해 나라가 멸망당하고 백성이 포로로 끌려갔다가 다시 돌아온 후에도 고쳐지지 못했습니다. 제사를 독점했던 사두가이들과 율법 해석을 독점했던 바리사이들은 물론,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고 기적을 목격했던 벳사이다와 코라진과 카파르나움의 평범한 백성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목자 노릇을 해야 할 엘리트들이 방향감각을 잃어버리는 바람에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해 헤매고 있었고, 이렇게 되자 양떼인 백성들도 따라서 신앙 감각이 마비된 채로 제각기 흩어져 이기적인 처신에 머물러있었던 것입니다. 하느님 없이 스스로 지혜롭고 슬기롭다고 자처하던 자들이 자초한 이른바 정체성의 위기였습니다. 


지혜와 슬기는 하느님께로부터만 나옵니다. 지성적 자만과 윤리적 독선으로는 리더십을 발휘하기는커녕 정체성을 차리기도 어렵습니다. 이를 눈치 챈 제자들이 스승이신 예수님께 청했습니다. “주님,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가르쳐 준 것처럼, 저희에게도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루카 11,1). 이것이 예수님께서 ‘주의 기도’를 가르쳐 주시게 된 배경이자 까닭이었습니다. 주의 기도 안에는 예수님의 가르침이 녹아 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 나라가 다가왔다고 선포하셨던 바를 따라서 그 나라를 받아들이도록 기도하라고 가르치신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를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하느님과 소통해야 합니다. 기도하지 않고서는 하느님과 소통할 수 없습니다. 기도하되 깨어있는 신앙 감각으로 기도하지 않고서는 하느님의 영을 받아 우리네 영혼이 생기를 얻을 수도 없습니다. 특히 선교 마인드는 우리네 영혼들이 하느님의 영을 받고 있다는 가장 뚜렷한 징표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하느님 나라는 폭행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그 표현이 이렇습니다: “세례자 요한 때부터 지금까지 하늘 나라는 폭행을 당하고 있다. 폭력을 쓰는 자들이 하늘 나라를 빼앗으려고 한다”(마태 11,12). 이러한 현실은 오늘날에도 현재진행형입니다. 마음 속 생각이 교만한 종교인들, 지식인들, 언론인들이 사람들의 생각을 어지럽히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분께서는 당신 팔로 권능을 떨치시어 마음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실 것입니다”(루카 1,51). 


세계 패권과 지역 패권을 장악하겠다고 골몰하는 통치자들이 세계 평화를 어지럽히고 있지만, 하느님께서는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실 것입니다”(루카 1,52). 날이 갈수록 커져가는 빈부격차 사태 속에서 10:90의 사회에서 1:99의 사회로 절망스럽게 빈부양극화 현상이 커져가고 있으나, 하느님께서는,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실 것입니다(루카 1,51-53).


성모 찬송에서 확인되고 있는 바와 같이, 성모 마리아와 같은 가톨릭 아나빔들의 기도와 처신이 관건입니다. 하느님께서 당신 나라를 인류 사회 안에 심으시려는 그 섭리를 믿는 이들이 교만한 종교인들, 지식인들, 언론인들을 능가하는 의롭고 거룩한 처신이 관건입니다. 한반도를 비롯한 전 세계 분쟁지역에서 패권 추구에 골몰하는 사악한 정치인들을 능가하는 의롭고 거룩한 처신이 가톨릭 아나빔들에게 필요합니다. 빈부양극화 현상 속에서도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들과 함께 그 고통과 가난을 나누면서 그들의 기쁨과 희망, 슬픔과 번뇌를 함께 공감하고자 하는 가톨릭 아나빔들의 회개가 요청되고 있습니다.


주의 기도에서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가장 우선적인 회개는 하느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일입니다. 무릇 부모는 자녀를 사랑으로 낳아서 헌신하여 키웁니다. 그렇게 하여 장성한 자녀가 부모를 몰라보지 않듯이, 인류는 하느님을 아버지로 부르며 공경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온 세상에서 만연된 사조는 하느님을 아버지로 부르기는커녕 아예 믿지도 않는 무신론 풍조입니다. 그러니 이 풍조에서 벗어나는 회개가 가장 근본적인 의무입니다.


교우 여러분!


무신론자들과 냉담자들이 시급히 회개하도록 기도바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믿는 이들이 더욱 뜨겁게 하느님을 아버지로 부르며 흠숭할 회개도 아울러 필요합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하는 법입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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