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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바빌론, 냉전의 땅 한반도에서
  • 이기우
  • 등록 2023-10-06 16:4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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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6주간 금요일(2023.10.6.) : 바룩 1,15ㄴ-22; 루카 10,13-16

 

아직 냉전이 한창이던 1970년대에 미국을 비롯한 자유진영 세계에서 성경을 주제로 만들어진 팝송이 유행한 적이 있었습니다. 미국 시카고 대학의 흑인 대학생 그룹(보니 M)이 부른 노래로, ‘바빌론 강가에서(By the rivers of Babylon)’라는 곡입니다. 바빌론에서의 유배생활을 노래한 시편 137편을 가사로 만들어졌는데, 미국 내 흑인들의 처지가 또한 바빌론에서 포로생활을 하고 있는 히브리인들과 비슷하다는 역사의식을 담아 흑백차별 문제를 고발한 노래로 유명했습니다.


오늘 독서에서 들으신 바룩 예언서도 바빌론에서 쓰여진 기록입니다. 남북으로 갈라져 우상숭배를 일삼으며 하느님의 뜻을 저버렸던 과거를 참회하면서 예지가 없어 망하였고 생각이 모자라 망하였음을 하느님 앞에 백성을 대신해서 참회합니다. 바빌론 유배 직전에 활약했던 예레미야 예언자의 비서 겸 친구로서 유다 왕궁의 서기로 활약했다고 알려진 바룩은 그 유배생활은 선조들이 하느님 앞에 지은 죄의 벌임을 알리고 비록 유배생활이 어렵더라도 하느님께 다시 희망을 두라고 위로하며 권고하였습니다. 


바룩 예언서가 과거를 참회와 희망으로 회상하는 예언 기록이라면, 오늘 복음인 루카 복음서 10장의 본문은 세 고을의 미래에 대한 심판의 진술입니다. 코라진과 벳사이다 그리고 카파르나움은 갈릴래아 호수 인근에 위치해 있고 예수님께서 자라신 고향 나자렛과도 가까워서 자주 들르셨고 그래서 치유의 기적도 많이 일으켜 주신 고을들입니다. 


그런데 그 고을 사람들은 고향 나자렛 사람들처럼 예수님을 인간적으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기에 그분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기적 사건들을 보고도 그 안에 담긴 뜻을 생각할 엄두도 내지 못했고 결국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매우 서운하게 생각하셨고 급기야 그 세 고을 사람들에게 가혹한 심판의 말씀을 내리심으로써 이를 전해 듣는 이스라엘 백성이 진정으로 회개하기를 바라셨습니다. 


‘바빌론 강가에서’라는 노래를 부른 미국 흑인 여대생들의 뜻은 바빌론 유배에 담긴 역사적 교훈을 되새겨 흑백 차별이라는 못된 사회악 현상이 없어지기를 바라는 것이었습니다. 바룩 예언자가 전하는 참회와 위로의 예언 말씀과 예수님께서 세 고을에 대해 심판하시는 말씀을 듣는 우리에게는 이 말씀들이 어떤 의미로 다가올 것인지를 생각합니다. 


우리 민족의 근현대사는 고난의 역사입니다. 유럽 여러 나라들과 미국 같은 서양 크리스챤 나라들이 서로 힘을 키워 힘 약한 나라들을 정복할 무렵, 주자(朱子)를 숭상하던 성리학(性理學)의 나라 조선은 소중화(小中華)를 꿈꾸며 나라의 문을 꽁꽁 닫아 걸어 잠그는 쇄국정책(鎖國政策)을 고수했고 바다를 통한 출입을 일체 금하는 봉금정책(封禁政策)을 고집했는가 하면, 백성의 소리에 대해서는 일체 귀를 닫았으며 만일 조정에 비판적인 소리를 내는 학자가 나타나면 사문난적(斯門亂賊)으로 몰아서 가문의 대를 끊어 버렸습니다. 


이른바 멸문지화(滅門之禍)였습니다. 그리하여 일어났던 사화(史禍)가 1498년(연산군 4년)의 무오사화(戊午士禍), 1504년(연산군 10년)의 갑자사화(甲子士禍), 1519년(중종 14년)의 기묘사화(己卯士禍), 1545년(명종 즉위년)의 을사사화(乙巳士禍) 등 무려 네 차례나 되고 총기를 발했던 숱한 조선의 별들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야 했습니다.


그 결과 우리 민족은 우리보다 먼저 문호를 개방하고 힘을 키운 이웃 나라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배를 반 세기 가까이 받았고 그것도 모자라서 나라가 분단되고 동족상잔의 전쟁까지 치르고 나서도 민족대결의 시대를 반 세기 넘게 겪고 있습니다. 유럽에서 전쟁을 일으킨 독일이 분단된 것과는 달리 아시아에서는 전쟁에 아무 책임도 없는 한국이 분단되었습니다. 


6.25 전쟁으로 일본은 기사회생(起死回生)하는 행운까지 얻는 동안 우리 민족은 엄청난 인명 희생을 치루어야 했고 국토는 폐허가 되는 불행을 겪었습니다. 전쟁까지 치루는 분단 역사 70 년 동안 대한민국은 경제를 눈부시게 발전시켜서 선진국 반열에 올라섰지만, 지난 정권 시절에 남북한이 급속도로 가까워지자 언제나 한반도를 위기 상태로 만들어 관리하던 미국이 막아섰습니다. 


한반도를 자신들 인도 태평양 전략에 따라 대륙세력을 봉쇄하는 전초기지로 관리하고자 함부로 분단시킨 책임에 대해서는 일체 함구한 채, 또 다시 통일하려는 움직임에 대해서는 촉각을 곤두세우는 수퍼 갑질을 일삼고 있는 형편입니다. 


그런데도 대다수 국민 여론은 한미동맹을 구세주처럼 여기고 거의 종교 수준으로 굳건하게 지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미국민들은 일부의 반미여론이나 남북 화해 여망 따위는 발톱의 때만큼도 신경쓰지 않습니다. 당연히 현 교황의 방북 의지를 탐탁치 않게 생각할 것은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아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심지어 우리 교회 내에서도 친미적인 교회 관료들은 소리 없이 이에 조응(調應)하고 있기도 합니다.


근대화 이전 백 년 동안 무죄하게 정치권력의 박해로 당해야 했던 천주교 신자들의 희생에는 과연 어떠한 역사적 의미가 있는 것일까요? 백 년 박해의 희생으로도 모자라 식민통치와 분단으로 말미암은 희생까지 치루고 있는 우리 민족의 죗값은 언제까지 치루어야 하는 것입니까? 참회와 희망으로 백성을 위로하는 바룩 예언자의 심정으로 우리 역사의 앞날에 대해 묻게 됩니다. 


분명한 사실 중의 하나는 우리 민족이 하느님께 감히 대적했던 코라진이나 벳사이다나 카파르나움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마도 미국과 북한의 대결은 갈 데까지 간 다음에야 끝날 것입니다. 동아시아에서 자신의 패권을 유지하는 것이 최고의 관심사인 미국과, 정권과 체제의 안전보장이 최고의 관심사인 북한이 머지않아 평화협정과 상호수교가 이루어지고 미국 패권의 보루로서 주한미군이 계속 주둔하는 선에서 타협이 이루어질 공산이 제일 큽니다. 국제정치를 게임이론으로 연구하는 학자들의 표현을 빌자면, 한반도를 둘러싼 북미 대결은 그 결과가 뻔하게도 소모적 양상으로 전개되는 치킨 게임일 뿐 세계 평화를 위한 역사적 대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미국이 압도적인 군사력과 경제력으로 주도하는 동아시아 질서를 거스를 수 없어서 사드 배치를 마지못해 허용하면서 따라가는 전 정권의 자세는 매우 유감스러우면서도 안쓰러웠습니다. 하지만 핵을 개발하고 미사일로 도발하는 북한 정권을 국제사회와의 공조 아래 압박하면서도 궁극적인 목표로는 대화와 타협임을 내세우는 전 정권의 대북정책은 정당했습니다. 


이 평화 노선은 극우적이고 호전적인 일부 세력의 집요한 도전을 받아 기어코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공동선을 위한 모든 주장과 노력을 종북 논쟁으로 몰고 감으로써 국정을 마비시키고 국력을 소진시킨 정치적 책임을 져야 했던 세력이 겨우 0.7%라는 근소한 표 차이로 정치 권력을 차지하더니 대북 대결과 대중 대결 그리고 한미일 동맹을 추진하고 있는 중입니다. 


21세기 한반도는 세계 최강국인 미국과 최약체국인 북한이 핵무기를 매개로 대결하는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지만 사실은 대륙세력인 중국 및 러시아와 해양세력인 미국과 일본이 진영을 이루어서 패권을 다투고 있는 마지막 냉전의 대결장입니다. 


향후 한민족의 운명과 한반도의 평화가 좌우될 이 대결장에서 하느님의 섭리가 어떻게 나타날른지 알 수 없습니다만,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없다는 면에서 지금의 한반도는 또 다른 유배지 바빌론과도 비슷합니다. 바빌론에서 고난과 시름에 빠진 동족을 향해 바룩 예언자가 외쳤듯이, 과거 근대사에서 저지른 우리 민족의 죄를 참회하며 평화를 위한 예지를 구하는 일은 한국 교회의 몫입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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