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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역사적 엇박자와 보조성 원리
  • 이기우
  • 등록 2020-12-11 15:3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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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 제2주간 금요일 (2020.12.11.) : 이사 48,17-19; 마태 11,16-19



역사에서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이 보여준 엇박자는 하느님께는 크나큰 실망을, 백성에게는 재앙을 안겨 주었습니다. 오늘 독서가 그 내용인데, 이사야는 하느님께서 여러 예언자들을 보내서 이스라엘이 지켜야 할 계명을 가르치고 가야할 길을 인도했지만, 백성의 지도자들이 우둔했고 백성들도 분별없이 부화뇌동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나라가 멸망하고 백성이 또 다시 종살이를 하게 되어 버린 비극적 운명을 한탄하고 있습니다. 


만일 이스라엘이 하느님께 귀를 기울였다면 평화가 강물처럼, 의로움이 바다 물결처럼 넘실거렸으리라는 안타까운 심경을 토로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심경이 널리 퍼져서, 이렇듯 절망적인 상황에서 하느님께서 직접 오셔야만 한다는 메시아 대망 사상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메시아로서 이스라엘 백성을 찾아오신 예수님께 대해서 이스라엘의 지도자와 백성들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고 어깃장을 놓기 일쑤였습니다. 요한이 임박한 파국에 대해 경고하며 회개하라고 외쳤어도 마이동풍(馬耳東風)이었고, 예수님께서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백성을 섬기는 활약을 펼치셨어도 우이독경(牛耳讀經)이었습니다. 하느님과 당신 백성 사이에 엇박자가 여전히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었던 겁니다. 절망적인 이런 상황이 지속되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를 불러 사도로 양성하시고 그들을 새롭고 참된 하느님 백성의 향도(向導)로 삼으시게 된 것입니다. 


공생활 동안 예수님께서 스승으로서 제자들에게 본을 보여주시기도 했지만, 임박한 죽음을 앞둔 최후의 순간에 그분은 다시 한 번 당신이 받으신 하느님의 뜻을 유언으로 남기셨습니다. 그것이 성체성사입니다. 그런데 이를 네 복음사가가 다 보도하고 있지만, 공관복음의 보도들과 요한복음의 보도 사이에 결이 다릅니다. 


공관복음은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님께서 행하신 빵과 포도주의 축성과 그분의 말씀을 상세하게 보도하고 있으나(마르 14,17-21; 마태 26,26-30; 루카 22,14-20), 요한복음은 이 모든 절차와 말씀을 모두 생략하고는 그에 앞서 예수님께서 행하신 행동(요한 13,1-20)과 바치신 기도(요한 13,31-35; 14-17장)를 더 상세하게 보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행동이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발을 씻어주신 세족례이며, 그 기도란 대사제의 기도입니다. 세족례에서 그분은 당신이 스승이시면서도 종이 주인에게 하듯이 발을 씻어주시면서 제자들더러도 서로 발을 씻어주어야 한다고 다짐을 받으셨고, 이 성사적 행동의 의미를 밝혀주시기라도 하듯이 대사제의 기도에서는 당신이 제자들을 사랑해 준 것처럼 서로 사랑하라(요한 13,34; 15,12)고 새로운 계명을 내려 주셨으며 그리하여 하느님 앞에 하나가 되라(요한 17,11)고 신신당부하셨습니다. 이것이 새로운 하느님 백성으로서 교회가 나아가야 할 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 교회의 역사는 마치 구약의 하느님 백성인 이스라엘이 보인 엇박자를 방불케 하는 시행착오를 반복하여 보여주었습니다. 제국 교회적 면모라든지, 동서교회의 분열,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의 분열, 십자군 전쟁, 종교재판, 공산주의 운동과 시민혁명이 일어나도록 방치한 가난한 이들의 처지와 인권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아메리카 대륙에 선교를 하면서 원주민들을 대량으로 학살하도록 방치한 점, 아시아 대륙에 선교를 하면서 동양의 고유한 문화에 대한 무지로 무수한 신자들이 치명하도록 박해를 자초한 점 등을 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제2차 바티칸 공의회와 대희년은 가톨릭교회로 하여금 새로운 성령 강림의 은총을 내려주었습니다. 그리하여 과거 역사에 대한 반성과 새로운 각오로 교회 쇄신의 기운을 불어 넣고 있습니다. 현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 각오와 기운을 ‘공동합의성’과 ‘신앙감각 존중’으로 해석합니다. 그리고 복음의 기쁨으로 세상의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들에게 봉사하면서 공동의 집인 지구를 살려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습니다. 


내부적으로는 서로 발을 씻어 주는 상호 섬김의 정신으로 교회 내부의 논의 구조를 공동합의적으로 쇄신시켜 나아가야 하며, 대외적으로는 성령께서 이끄시는 평신도들의 신앙감각을 존중하는 가운데 복음적인 가톨릭교회로 변화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섬김의 질서를 사회교리에서는 보조성이라고 부릅니다. 가난한 사회적 약자들이 공동선의 책임을 차지하는 몫에서는 비록 정부보다 보조적일지 모르지만, 그 수효로 보면 정부가 감당해야 할 몫보다 더 클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작은 단체에 대해 큰 단체, 평신도들에 대해 성직계급, 그 중에서도 고위 성직자들의 관계에서도 어김없이 마찬가지로 적용됩니다. 그래서 그들이 공동선을 자각하고 자율적으로 기여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이 보조성 원리입니다. 발을 씻어주는 섬김의 정신을 사회적으로 구현하는 방법론적 원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발만 씻어주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당신이 찾아가 만나신 가난하고 아픈 이들의 자존심을 배려하셨고, 그들이 저지른 잘못보다는 그들이 하느님께 돌아옴을 더 크게 기뻐하셨습니다. 늘 그들에게 물어보시고 인격적으로 대해 주셨으며 그들의 원에 따라 치유와 구마의 기적을 일으켜 주신 것도 이에 해당됩니다. 


한 마디로 예수님께서는 마치 하느님 아버지를 섬기듯이 가난하고 보잘 것 없는 이들을 섬기셨습니다. 이 섬김의 질서가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가야할 길이고 최후의 심판에서 구원받을 수 있는 길입니다. 보조성의 원리에 담긴 섬김의 질서로써 우리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더 이상 하느님과 엇박자를 내지 말고 제대로 된 정박자를 구사하여 아름다운 화음을 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현재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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