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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합의성과 신앙 감각을 존중하는 가톨릭 민주주의
  • 이기우
  • 등록 2020-10-23 18:0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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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9주간 금요일(2020.10.23.) : 에페 4,1-6; 루카 112,54-59


▲ (사진출처=CNS photo/Paul Haring)


 프란치스코 교황은 즉위 첫 해에 전 세계 가톨릭 신자들에게 보내는 사도적 권고 「복음의 기쁨」을 통해서 복음화의 교회적 차원과 사회적 차원을 다루는 가운데, 교회적 차원 속에 강론에 대한 권고를 비중있게 다루었습니다. 


강론은 미사를 비롯한 전례 안에서 행합니다. 전례에서는 독서와 복음 등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므로, 이를 해설하기 위한 강론이나 이를 실천하는 데 도움을 주는 기도들, 즉 본기도와 예물기도와 영성체 후 기도 등에서도 모두 사람의 말이 하느님의 말씀으로 거룩하게 변화되는 속성을 지닙니다. 말씀 전례에 속하는 강론은 성찬 전례가 지향하는 삶의 거룩한 변화에 기여해야 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독서와 복음으로 제시된 성경 본문이 하느님의 뜻을 알아듣고 전달해 주는 메시지이기 때문에 강론의 기반이 됩니다. 강론자는 성경 기록자가 과연 어떠한 관점과 상황에서 하느님의 뜻을 어떻게 알아 들었는지를 살펴야 합니다. 계시 진리를 수용하는 작업이 여기서 이루어집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는 강생의 국면이 여기서 펼쳐집니다. 

 

강론을 듣는 신자들을 위해서는 땅에 내려온 말씀이 신자들의 실천을 거쳐 하늘로 올라갈 수 있도록 승천의 국면을 전개해야 합니다. 성경 본문에 담긴 말씀도 결국 어느 특정한 시공간에서 수용한 하느님의 뜻입니다. 그리고 이제 신자들의 삶을 통하여 특정한 시공간에서 그 말씀이 실천되어야 합니다. 그러자면 신자들이 처해 있는 시대적 상황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입니다. 땅과 하늘에 나타나는 징표만 보고도 날씨를 미리 예측할 수 있듯이, 시대의 상황이나 사건 그리고 사태 등을 관찰하여 판단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말씀이 여기에 적중합니다. 


너희는 땅과 하늘의 징조는 풀이할 줄 알면서, 이 시대는 어찌하여 풀이할 줄 모르느냐?


시대의 징표를 식별함에 있어서 관찰 단계는 우선 하느님의 눈으로 사태를 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하느님의 뜻과 구별되고 심지어 어긋나는 사회악 현상을 가려낼 수 있습니다. 그 다음 판단 단계는 무릇 모든 악은 선의 결핍일 수 있기 때문에 관찰된 사회악 현상이 과연 무슨 공동선이 결핍되어 일어난 것인지를 알아내는 것이 필요합니다. 마지막으로 실천 단계는 판단된 공동선 안에서 우리가 실제로 해 낼 수 있는 역량과 한계 안에서 실천 가능한 활동을 골라내는 일이 필요합니다. 지속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활동이라야 사도직이 될 수 있습니다. 


강론에서는 시대의 징표를 식별함에 있어서 관찰과 판단 단계가 주로 포함되고, 실천은 강론을 듣는 신자들의 몫으로 열려 있습니다. 그런데 교구나 본당 또는 수도회 등에서 사도직 활동을 결정하기 위하여 시대의 징표를 식별함에 있어서는 공동으로 식별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각자에게 주어진 신앙 감각에 따라서 공동으로 논의하고 합의하는 과정이 요구되지요. 


“하느님 백성이 토의하고 대표가 결정한다.”는 원칙 하에서 서로가 각자의 의견을 인격적으로 존중하는 절차가 교회적 요체입니다. 흔히 시노드라고 부르는 교회적 회의도 시대의 징표를 하느님 백성이 공동으로 식별하는 특별 과정의 하나이며, 참사회의나 평의회 등은 일상적인 과정에 해당합니다. 


공의회 이전에는 군주제나 봉건제의 영향으로 가톨릭교회에서도 공동합의성의 원칙과 절차가 무시되기 일쑤였습니다만, 공의회는 공동합의성의 원칙과 절차를 사회의 민주주의보다 더 인격적으로 준수하도록 요청하고 있습니다. 특히 프란치스코 현 교황은 이것이야말로 공의회가 천명한 교회 쇄신의 완결점이라고 보고, 국제신학위원회를 통해서 「교회의 삶과 사명 안에서 공동합의성」, 「교회 생활에서의 신앙 감각」이라는 두 문서를 발표하게 했습니다. 한국 가톨릭교회에서는 작년에 한글 번역을 마치고 출판한 바 있습니다. 


이 두 문서에 담긴 공동합의성과 신앙 감각에 대한 이해가 우리 교회 안에서 공유되고 폭넓게 실천되는 일이 향후 교회 쇄신의 분수령이 될 듯합니다. 사도적 권고 「복음의 기쁨」에 나오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관점에 따르면, 성직주의 병폐에 대한 특효약은 공동합의적 과정이고, 영적 세속성에 대한 특효약은 신앙 감각을 존중하여 반영하는 절차입니다. 


이제 “민주주의는 가톨릭교회와 맞지 않는다”는 말은 천동설처럼 사라져야 할 듯합니다. 오히려 가톨릭교회야말로 세상의 민주주의보다 더 민주적인 절차와 논의과정을 통하여 인격성을 더하되, 일단 결정된 사항에 대해서는 서로가 순명함으로써 그 결정에 담긴 가치를 공유하고 더욱 승화시키는 모범을 보여 주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부정과 부패에 노출되어 있는 시장 민주주의를 성화시킬 수 있는 세상의 빛, 그러니까 복음적 민주주의의 빛을 보편적으로 즉 가톨릭적으로 우리 교회가 비출 수도 있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가톨릭 민주주의입니다. 


오늘 사도 바오로가 에페소 교우들에게 권고하는 바에 따라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가르침을 새겨 보겠습니다. 


공동합의성과 신앙 감각에 대하여 존중하되, 겸손과 온유를 다하고, 인내심을 가지고 사랑으로 서로 참아 주며, 성령께서 평화의 끈으로 이루어 주신 일치를 보존하도록 애쓰십시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현재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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